이스라엘 민족의 왕 가운데 다윗 왕은 아주 탁월한 왕이었는데요. 다윗의 탁월함은 전투 능력에 있었습니다. 전쟁을 잘하는 왕이 다윗 왕이었기 때문에 다윗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지켜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게 바로 왕이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외적이 침입하여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아니하도록 외적을 물리치는 역할, 그게 바로 왕의 역할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다윗 왕이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외적도 이스라엘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그래서 아주 강대한 나라를 만들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 왕은 어떤 왕이었을까요? 솔로몬은 다윗처럼 전쟁에 능한 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능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혜였습니다.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그 백성들의 문제를 잘 해결해서 그 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잘 다스리는 지혜가 솔로몬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예전에 살펴보았던 두 여인의 재판 이야기였습니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싸우면서 서로가 자기가 진짜 엄마라고 주장했을 때, 솔로몬은 그 진짜 엄마를 아주 지혜로서 구분해 냈습니다. 자신의 권리만 챙기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사실은 아이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진짜 엄마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 준 것이 바로 솔로몬의 지혜였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다스리는 이 이스라엘 민족은 그야말로 복된 나라, 좋은 나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한 나라는 어떻게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겠는가? 한 나라는 어떻게 살기에 좋은 나라가 될 수 있겠는가? 무엇이 좋은 나라죠? 좋은 나라란 공의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될 때, 그래서 공평하게 모든 것들이 처리될 때 그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땀을 흘린 사람에게는 보상이 주어지고,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징벌이 주어지고, 그래서 공평과 정의가 제대로 잘 시행되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데, 솔로몬이 누구였는가? 솔로몬은 이 두 여인의 재판을 통해서 누가 잘못된 사람이고 누가 아이의 진짜 엄마인가를 제대로 정의롭게 판결해 주어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로 만들어 준 왕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정의가 바로 서야 하겠는데요. 그 정의는 누가 만들어 가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다 만들어 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의롭게 행동해야 되는 것인데, 그런데 특별히 더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일까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왕이, 재판관이 바른 판결을 하고 바른 일을 할 때 그때 그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 바른 나라, 좋은 나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솔로몬 왕은 어떤 왕이었는가? 지혜로서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그런 왕이 되었고, 그래서 이 솔로몬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나라는 그야말로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열왕기상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왕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나라는 정말 힘들게 되는 거죠.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죠. 아합 왕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권력으로 자신의 사익을 얻기 위해 부당한 판결을 내린 겁니다.
증거를 조작하고 잘못된 판결을 통해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처형시켜 버리고 그들의 것을 빼앗아 버리는, 사악한 아합과 같은 사람이 다스리고 있게 된다면 그 나라는 정말 고통스러운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늘 반복되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의를 위해 일하고 정의를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이 그 권한을 가지고 악한 일을 하는 그런 나쁜 일들이 언제나 반복되어 왔는데요. 그것이 정치계뿐만 아니라 사실은 교계 안에서도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 모릅니다. 교계 안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른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의해 판결을 하고, 잘못된 판결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이죠.
하지만 솔로몬 왕은 어떤 왕이었는가? 지혜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잘 다스렸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열왕기상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솔로몬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에 있는 이웃 국가들에게까지 많이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소문이 나게 되었을 때, 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한 이웃 나라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 여왕이 누구죠? 스바 여왕입니다. 스바 여왕이 찾아와서 솔로몬을 알현하게 된 것이죠. 솔로몬 왕이 정말 뛰어난 왕인가, 정말 그러한가 해서 솔로몬을 찾아왔는데 솔로몬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정말 감탄하게 되는 겁니다.
질문을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솔로몬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가 너무나도 뛰어나서 그 어느 것 하나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 없이 막힘없이 술술 잘 이야기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스바 여왕은 감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솔로몬이 만들어 놓은 그 결과물들을 볼 때 정말 감탄하게 되는 것이죠. 단순히 머릿속에 있는 지혜만이 아니라 그 지혜가 실제적인 결과물로서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만들어진 그 모든 화려한 모습들을 바라보게 될 때 스바 여왕은 감탄하면서 “내가 당신에 대해서 저 먼 곳에서 소문을 들었는데 그 소문 들은 것보다 직접 와서 보니까 너무나도 뛰어나다” 하면서 솔로몬을 칭찬하고 감탄하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만나면서 솔로몬을 찬양한 것이죠. 열왕기상 10장 8–9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되도다 왕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왕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왕 앞에 서서 왕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왕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 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심으로 왕을 세워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만난 가운데 이 솔로몬이 정말 훌륭한 왕, 지혜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감탄하며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린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정말 바른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스바 여왕은 어떤 점에서 아주 좋았는가, 아주 본받을 만했는가 하면,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보면서 솔로몬의 장점, 솔로몬이 뛰어난 것을 보고 그것을 알아보고 칭찬하고 찬양했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눈을 가진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다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훌륭한 것을 보고도 감탄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 주어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단점을 찾아내어 비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똑같은 것을 보는데 그것을 보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보면서 무시해 버리고 알아주지 않고 비난해 버리고 단점만을 꼬집어내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 성도들이 되어야 되는가? 우리는 어떤 성도들이 돼야 되겠습니까? 좋은 것을 보면 기뻐하고 칭찬하고 찬양하고 박수 치는 그런 긍정적인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좋게 볼 줄 알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좋은 것이 있으면 뭐합니까?
아무리 훌륭한 것이 바로 내 옆에 있고, 아무리 좋은 것이 내 근처에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무시해 버리고,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어요. 정말 좋은 것이 있는데, 그 정말 좋은 것을 외면해 버리고 알아주지 않고 사용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린다면 존재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스바 여왕은 놀랍게도 자신의 옆 나라에 훌륭한 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솔로몬을 찾아가 그 지혜를 들었고, 그것을 보면서 감탄하며 그를 통해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그 당시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곁에 오셨어요. 우리 동네에 오셨어요. 나사렛이라고 하는 동네에 오셨어요. 그때 그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얼마나 축복이에요.
놀라운 일이 자신들의 동네 가운데 일어나게 된 겁니다. 바로 내 옆에 예수님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을 만난 그 고향 사람들이 그분을 외면해 버렸습니다. “저는 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우리가 그 어린 시절을 아는데” 하면서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비아냥거리면서 “저 예루살렘에서 했던 기적을 여기서도 행하라” 하며 무시해 버리고 전혀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죠. 보배로우신 예수님이 계시다면 그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 엎드리고 은혜를 구했다면 그 예수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고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해 버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있어도 예수님이 있다는 혜택을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그런 허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겁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 여왕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복되도다, 당신의 신하들이여.” 솔로몬 옆에 있는 그 신하들이 얼마나 복된가? 솔로몬과 함께 있는 그 신하들이 얼마나 복된 위치에 있는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며 솔로몬의 말을 들으며 그 놀라운 복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축복된 일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께 다가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알아주지 않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냥 배척해 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2장 42절의 말씀에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스바 여왕이 그냥 보통 여인이 아니라, 알고 보니 정말 복된 여인이었던 거예요.
솔로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남방에서부터—그냥 자기 왕궁에 가만히 있으면서 행복하게 살아도 돼요. 굳이 솔로몬에게 찾아가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번 가서 만나 보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의 지혜를 듣고 싶다.” 그래서 저 남방에서부터 솔로몬을 만나기 위해 올라오는 거예요. 신하들을 데리고, 그리고 금은보화를 가지고 예물들을 가지고 솔로몬에게 와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그러한 지혜로운 여인이 바로 스바 여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스바 여왕에게서도 배울 지혜가 있는 것이죠. 사실 스바 여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선민으로 원래 포함된 사람이 아닌 겁니다. 솔로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냥 이웃 나라의 한 왕일 뿐인 것이죠.
그래서 저 멀리서 “그런가 보다” 하고 모른 척하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이 스바 여왕은 찾아가서 지혜를 배우고 교류하면서 놀라운 유익을 누리게 된 줄로 믿습니다. 열왕기상 10장 13절의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만 들었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에게서 규정에 맞는 예물도 받았고, 또 이것저것 많이 받아 냈어요. 자신도 많은 선물을 줬지만, 솔로몬에게 요청해서 “이것도 좀 주세요, 저것도 좀 주세요” 했더니 솔로몬 왕이 스바 여왕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서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었다는 게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김춘수 시인이 쓴 「꽃」이라는 시를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맞아요. 우리가 주님을 부르지 아니하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가 주님을 찾고,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꽃으로 다가오시는 거예요. 은혜로 다가오시는 것이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가 찾아야 하고 만나야 하고, 그냥 단점만 보며 “내가 어울리지 못할 것”만 생각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고 그 생각들을 닫아 버린다면 아무런 유익도 얻을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정말 좋은 장점들이 많이 있는 겁니다.
솔로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 내 옆에 있는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그리고 내 남편에게도, 내 아내에게도, 또 우리 부모님에게도, 우리 자녀들에게도, 우리 친척들에게도—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그 사람들이 다 우리가 눈을 감아 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스바 여왕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그것이 보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 교제의 길을 넓혀 가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12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예수비전교회 성도로서 함께 교제하고 신앙생활하고 함께 만나고 연습하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묵상하고 함께 하는 것이—그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복된 것이에요.
복된 거예요. 솔로몬처럼 그렇게 엄청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복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찾아가서 발견하고 꽃이 되고 마음을 열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놀라운 보화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함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화가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 주변에 사랑이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외면해 버리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사랑의 눈을 열고 믿음의 눈을 연다면 우리 주변에 보화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은 스바 여왕에게 몇몇 물건들만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어요.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계셔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을 부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요엘서 2장 32절의 말씀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복되고, 주님을 찾는 자가 복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원하기는 주님의 그 풍성한 보화를 누리며 복된 삶을 누려 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