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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업적 (왕상 9:15-28)

솔로몬이 많은 성을 건축했습니다. 성전과 왕국만 건축한 게 아니라 여러 도시들을 세웠다고 여러 성읍들을 세웠다고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9장 15절에 보면 밀로, 예루살렘 하솔 무기도 게셀 성을 건축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17절에서는 베토론을 건축했다고 했고, 18절에서는 바라 다드몰, 19절에서는 국고성, 병거성 마병의 성 레바논을 건축했다고 했고, 26절에는 배도 건축했다고 했고, 또 바로 왕이 왔을 때는 밀로를 건축하고 있다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으니까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많은 곳에서 성전과 왕궁과 여러 성읍들을 짓는 그야말로 건축 왕다운 그런 행보를 보인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건축 사업을 진행하게 될 때 수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수많은 인력들을 어떻게 동원했는가? 아모리 사람, 햇사람, 브리스 사람, 히윗 사람, 여부스 사람들을 동원해서 건축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죠? 아모리 사람 햇사람 브리스 사람, 히윗 사람 여부스 사람들이 누가 누구인가요? 원래 가난에 있던 종족들이었습니다. 원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었는데 원래 하나님의 명령은 어떤 명령이었죠?
그 가나안 민족들을 다 몰살시켜버려라 다 죽여버려라 남기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멸하지 못하고 가나안 땅에 여전히 가나안 민족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서 일을 시켰다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부리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가나안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려서 이런 커다란 건축 일을 하게 만들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그들을 감독하기도 하고 고관들로 사용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열왕기상 9장의 말씀은 다른 곳에 있는 성경 말씀과 약간 배치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려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와서 요청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노역을 좀 감해달라 솔로몬 왕이 너무나도 많은 짐을 우리들에게 부과해서 우리가 그것을 감당하느라고 너무나도 힘들었다. 엄청난 일들을 우리가 해야 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래서 우리들의 그 노역을 좀 감해달라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중에 여로보암 르호보암이 등극할 때 그렇게 요청한 걸로 보면, 그러면 사실 오늘 이 표현 열왕기상 9장의 말씀의 표현과는 약간 상이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열왕기상 12장 4절의 말씀이죠.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명예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매운 무거운 멍예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 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고 요청했던 것이죠.


어떻게 우리가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이 말을 이해하면 좋을까요? 아마도 이렇게 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노예로 부려서 일을 시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사람들 남아 있던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노예로 부렸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주민들에게는 노예로서 일을 시킨 것이 아니라 아마 우리나라의 징집제도처럼 우리가 군대를 가야 할 때 어느 나이가 되면 군대를 가듯이 이스라엘 민족들도 국방의 의무라든지 이런 노역의 의무를 부과해서 어느 일정 기간 동안 일을 하고 일정 기간 동안은 쉬고 하는 그런 방식으로 노예가 아닌 그냥 국민의 당연한 의무를 행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을 시켰을 거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것이 이전에 읽었던 말씀 열왕기상 5장의 말씀을 보면 그렇게 설명이 되어 있죠. 열왕기상 5장 13절에서 14절 말씀에 보면 이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3만 명이라 솔로몬이 그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냄에 그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랍은 감독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은 어떻게 했는가 두 달은 집에서 쉬고 한 달은 차출되고 하는 방식으로 노예처럼 일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세금을 납부하듯이 노역을 제공하는 그런 일들을 부과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동원이 되고 그리고 가나안 원주민들은 노예처럼 부려서 이런 대단위의 공사를 마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마어마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고 물자가 필요한 것이고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고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고는 우리가 좋은 결과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인데 솔로몬은 그렇게 그 큰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고 거기에 많은 물자를 동원해서 그래서 왕궁도 짓고 성전도 짓고 많은 성읍들을 지어서 그 당시 이 이스라엘 나라가 다윗의 때를 이어서 연이어서 계속 강대국의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이 솔로몬의 모습이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누군가 어쩌면 우리들도 솔로몬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우리는 어디를 다스리고 있나요? 우리의 영역을 섬기고 우리의 영역을 잘 다스리고 그리고 잘 돌보아서 그 부분이 잘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사명이 주어졌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이런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잘 해낼 수가 있겠는가 솔로몬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서 우리가 많은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솔로몬의 강대국을 이루는 그 일이 그냥 가만히 있는 동안에 이루어진 것인가요? 그게 아니에요. 솔로몬 왕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고 수많은 물자를 동원해서 그 나라를 정말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의 가정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는 일들이 어떻게 잘될 수 있겠는가 그냥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수고하지 아니하면 결국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가정이든 우리에게 우리의 영역이 어느 영역이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영역에서 선한 결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그런 귀하고 복된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서 맡은 사역들도 많이 있는데요. 우리 주일 학교면 주일 학교, 톡 그룹이면 톡 그룹 모든 것들이 그냥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애쓰고 많은 노력을 통해서 함께 좋은 공동체로 좋은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서 한 가지 참 신기한 것은 솔로몬이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나안 사람들을 동원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설명드린 것처럼 이 가나안 사람들은 원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신 민족이죠? 다 멸하라. 다 없애버려라. 그들의 죄악을 너희들이 본받을까 봐 본받을까 무서우니 두려우니 그들을 제거해 버려서 그들의 죄악에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명령을 이스라엘 민족이 잘 수행하지를 못했어요. 가나안 민족들을 다 점령하고 그리고 다 없애버리고,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만 남아서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공동체가 돼야 되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가나안 민족들을 다 없애지 못하고 남겨두고 말았습니다. 남겨둔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진 거죠?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그들에게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이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을 섬깁니다. 우상을 섬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우리들도 우상을 섬겨야 되겠다고 하면서 자꾸 동화되어 가는 거예요. 동화되어 가는 거 왜 그럴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반해서 우상은 눈에 보이거든요.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만들어 놓는데 어떻게 만들어 놔요? 정말 장엄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예전에 절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절간에 가보면은 그 들어가는 입구마다 사천왕상이 쫙 있어가지고 막 노려보고 있는데 그 절간에 들어가면서 정말 무섭구나 마음속에 두려운 마음도 생기고 경감도 생기고 하는 그런 마음이 들도록 우상을 만들어 놓으니까 아마 이 이스라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그 신들을 보면서 아이를 낳지 못하면 다산의 신에게 가서 제사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농사를 짓다가 이 풍요의 신에게 가서 제사하면 풍요의 신이 우리를 부강하게 만들어 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자꾸만 이방 신상을 섬기게 되는 그런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왜 망하게 되었는가 아수르 민족과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는데 왜 망하게 되었는가 남겨진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따라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배신해버려서 결국 망하게 되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 그게 가나안 사람들을 남겨놓은 결과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놀랍게도 그 가나안 사람들을 남겨놨던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그 가나안 사람들을 동원해서 노예로 삼아 그들의 인력을 이용해서 무엇을 건축했는가 성전과 왕궁과 여러 성읍들을 건축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그런 선한 일로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다 없애버리라고 했는데 그 없애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남겨두었더니 그 가나안 민족을 이용해서 더 좋은 선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잘 남겨놨습니까? 잘 못 남겨놓은 겁니까?

네 잘 남겨놓은 것 같죠? 잘 남겨놓은 것 같다고 말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결과 그런데 이 사람들을 우리가 노예로 부려서 수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성읍도 건축할 수 있었고, 많은 건축을 할 수 있어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선한 결과를 보면서 남겨놓길 잘했다. 하나님께서 없애라고 했는데 남겨놓길 잘했다라고 말하시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우리들의 불순종마저도 사용하셔서 선하고 좋은 결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간의 불순종을 통해서도 그것으로 완전히 망하고 완전히 폐가 망신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선한 결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 것이죠.

종종 교회가 분쟁이 일어나고 분열이 되면서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의 단점들을 감싸주고 이해하고 여러 가지 잘못된 것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서로 죄를 고백하며 용납하면서 하나가 되는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을 많이 보이는가 분쟁과 분열 싸우고 다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우리 한국 내에 수많은 교회들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분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버리고 신앙을 잃어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싸웠던 두 교회가 갈라져 가지고 원래는 안 싸웠으면 하나의 교회였을 텐데 싸워가지고 둘이 갈라져 가지고 그 두 교회가 또 열심히 전도를 해가지고 교회가 둘 다 다 컸어요. 그래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부흥하게 되는 일이 있어요. 그러니까 잘 싸웠죠? 분열을 잘한 거죠? 교회 역사가들이 우리 한국 교회의 부흥을 연구하면서 한국교회 부흥의 한 측면이 어떤 것이었는가 교회의 분열에 있었다. 교회가 자꾸 분열해가지고 그래서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되게 되었다라고 하는 아이러니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앞으로 더 많이 싸워서 교회를 더 많이 갈라가지고 교회가 부흥하도록 하면 좋겠죠? 할렐루야 아멘 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죠.

그것은 우리 결과로 결과로 우리들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고,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한 것마저도 사용하셔서 선한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우리가 모욕하는 방식으로 반응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사실 솔로몬 왕이 태어난 것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나요? 솔로몬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관계 속에서 다윗의 범죄로 인해서 만들어진 아들입니다. 밧세바라고 하는 자신의 부하의 아내를 취한 것이죠. 자신의 부하를 죽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도 악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말 진노하실 만한 그 엄청난 죄를 다윗이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는 당연히 책망받아야 되고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되는 너무나도 큰 죄고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주셔서 다윗이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책망하셨어요. 그리고 다윗이 이 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이러니 하나님의 그 오묘하신 은혜가 무엇인가 그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이라고 하는 왕이 나오는 거예요. 그 솔로몬이라고 하는 왕을 통해서 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되는 메시아의 그 가게가 연결이 되는 그런 엄청난 놀라운 결과가 만들어지는 그 일들을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니까 다윗이 잘했다라고 얘기하면 됩니까? 안 되는 거예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위했습니다.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결국 그를 팔아버려서 애굽 나라의 노예로 가게 만들어 버렸는데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안 그랬으면 기근 때 다 죽었어요. 안 그랬으면 기근 때 견디지 못하고 다 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악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요셉은 애굽 땅으로 가게 된 건데, 이 요셉의 형들이 그렇게 팔지 않았으면 어떻게 가게 되겠어요? 밧세바의 아내가, 밧세바의 아내가 아니고, 보디발의 아내가, 보디발의 아내가 이 요셉을 모함해서 감옥 속으로 쳐넣지 않았으면 어떻게 요셉이 왕궁에 바로 왕의 신하들을 만날 수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잘한 거죠? 아니에요.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까 그들의 행동이 잘 한 것인가?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팔아버려서 우리를 구원 얻게 하게 만든 것이니까. 가롯 유다가 행한 일들이 잘한 것인가 오늘날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우리는 결국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우리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잘못된 거예요.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멋있고 좋은 결과들이 나타나도 그건 잘못한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한 거예요.

우리는 그 결과로서 우리들의 행위를 자꾸만 숨기려고 하는 악한 동기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죠.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악인들 또 선한 그 적당한 때에 사용하셔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겁니다.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나를 나쁘게 만들고 악한 일을 하는 그 사람들의 손길마저도 사용하셔서 결국에는 선한 일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겁니다.

오늘 솔로몬은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해서 없애지 못했던 그 가나안 사람들이 놀랍게도 성전과 왕궁과 또한 여러 성읍들을 건축하는 데 사용되는 선한 결과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결과로 우리들의 잘못된 행위를 변호하면서 잘못된 우리가 마음을 가져야 가져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늘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됩니다. 주님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 저희가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솔로몬은 정말 엄청난 이스라엘의 참 대단한 뛰어난 왕의 역할을 감당했는데요. 이러한 지도자가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지도자가 늘 술만 퍼 마시고 펑펑 그렇게 나태하게 지내면서 그리고 공의와 정의를 일삼지는 않고 오로지 자기 편들만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그런 나쁜 지도자가 아니라 정말 우리를 돌보고 사랑하며 정말 바른 모습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솔로몬처럼 이렇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듯이, 정말 우리의 복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우리에게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런 지도자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누굽니까? 예수님이시죠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들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집을 예배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그 성은 잠시 이스라엘 민족들을 보호할 수는 있었지만 영원히 보호해 줄 수는 없었던 연약한 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완벽한 집을 지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3절 말씀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지난번에 성지순례를 가면서 무깃도라고 하는 지역을 갔었는데 요새예요. 참 그 수천 년 전에 그 요새를 그렇게 잘 지어놓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야 어떻게 이렇게 잘 지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게 솔로몬 때 지었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무기도라고 하는 이름이 나오는데 아마 솔로몬이 지었다고 한다면 정말 잘 지은 그 성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보호해 주는 일들을 했는데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더 좋고 화려한 저 천국을 짓고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길 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의 현장 가운데서 솔로몬과 같은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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