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가 에스더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스더라고 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을 아주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아주 참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냈던 민족의 영웅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유관순 열사가 있고 프랑스에는 잔다르크라고 하는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에는 이런 에스더와 같은 여성이 있었던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이 몰살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그 유다 민족을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낸 사람이 에스더인데요.
이 에스더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우선 여성이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여성은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여성으로서 아주 놀라운 일을 해낸 것이죠. 당시는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였기 때문에 별로 여성들이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누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냈는가 그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 모든 민족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낸 그런 위대한 인물이 여성이었던 에스더라고 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에스더는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낼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 에스더라고 하는 여인이 “나는 커서 위대한 인물이 돼야 되겠다” “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낼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을까요? 그게 아닐 겁니다. 선거에 나가서 내가 좀 당선이 되고 그래서 어떻게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했던 여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소망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어느 날 그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내가 해야 할 그 사명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 소명에 응답한 여인이 바로 이 에스더라고 하는 여인이고, 그렇게 응답하게 되었을 때 놀랍게도 유다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여인이 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것이죠. 선한 사마리아 사람도 어디 강도 만난 사람 없나 하면서 찾아다닌 게 아니에요. “내가 좀 누구를 도와줘야 되겠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그 목적을 가지고 달려간 사람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이고 여행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강도 맞는 사람을 보게 되었을 때, 모른 척하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의사가 아니었어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한 생명을 살리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에스더는 자기 자신이 처한 그 상황 가운데서 유다 민족의 어려움이 처하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외면하며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 아니라 그 사명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여인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 바사라고 하는 나라에서 포로로 살아가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바사 나라라고 하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잘 아는 세계사적인 이름으로 본다고 한다면 페르시아 제국인 것이죠. 그 페르시아 제국에서 포로로 살아가고 있을 때 그 나라의 이인자였던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자신에게 예의를 예를 갖추지 않는 모르드개를 보면서 화가 잔뜩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만은 그 모르드개 한 사람만 없애버리거나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모르드개가 어느 민족 사람인가 알아봤더니 바로 유다 민족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유다 민족 전체를 죽이려고 하는 음모를 꾸미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왕 앞에 나아가서 거짓말로 유다 민족을 모함하는 말을 했습니다. 에스더서 3장 8절에서부터 9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하마니 가짜 뉴스로 유다 민족을 고발하는 것이죠.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다”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유다 민족을 죽이기 위해서 없애기 위해서 엄청난 금액을 왕에게 드려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경비로 쓰게 자기가 돈을 내겠다는 겁니다. 1만 달란트를 들여서 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만들겠다고 하고 왕이 법만 정하셔서 내리시기만 한다면 명령만 하신다면, 저 유다 민족 왕의 법률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는 “이런 위험한 민족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입니까? 거짓말입니까? 약간의 진실이 있지만 약간의 사실이 있지만 잘못된 가짜 뉴스거든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는 다를 겁니다. 다른 모든 민족과는 다를 겁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사실을 가지고 확대 과장 포장해서 가짜 뉴스로 왕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들고 그래서 이 유다 민족을 죽이게 만드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버린 것이죠.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왕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왕은 하만의 그 음모에 속아 넘어가서 결국 유다 민족을 완전히 몰살시키라고 하는 명령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과대 포장해서 자꾸만 전달하는 거죠.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가짜 뉴스를 통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죠. 상대방을 죽이고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가짜 뉴스들을 자꾸만 만들어내는 것인데요.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가 분노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가짜 뉴스를 통해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데 분노하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그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그 사람들의 말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노예의 상태, 정신적인 노예의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오늘 이 아하수에로 왕이라고 하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왕이지만 자신이 제대로 잘 판단해서 옳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만이 분노하게 만들고 이 민족은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거짓말로 왕에게 고발해서, 왕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어 결국 그 왕이 하만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고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정신적 노예의 상태로 들어가 버리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항상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거짓말일 수가 많고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아요. 우리의 신앙을 빼앗아 버린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망가뜨린다고 하는 가짜 뉴스를 통해서 우리들을 망가뜨리고 우리를 노예화시키려고 하는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하만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 너무나도 많이 넘쳐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모든 유대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모르드개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촌 여동생인 에스더에게 가서 에스더에게 말을 전해서 에스더로 하여금 이 상황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낼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이 에스더라고 하는 사람은 유대의 여인이었는데 그런데 왕의 왕비가 폐위되고 새로운 왕비를 구하게 되었을 때 그 당시에 있는 모든 여인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뽑혀서 그래서 유대인이지만 그 바사 제국 왕의 왕비가 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때 이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가서 말을 전해서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고 바로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너를 왕비라고 하는 자리로 세워주신 것인지 누가 알겠느냐? 네가 왕비가 된 것은 바로 이 유다 민족을 구원하라고 하나님께서 너로 그 자리로 가게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에스더로 하여금 이 순간에 일어나서 유다 민족을 도울 것을 요청한 이야기가 오늘 성경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에스더서 4장 13절에서 14절 말씀에 보면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 내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노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내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내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에게 말을 전하면서, 네가 왕비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유다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너를 그 자리에 세워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야기하고 만일 네가 잠잠한다고 한다면, 그러면 우리 민족이 망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된다고요?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리 민족은 구원받을 것이다. 네가 잠잠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네가 아무 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손 못 쓰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는데요.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갑니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이 막히거나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순종하든 순종하지 않든 우리가 어떤 식으로 나오든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있는 것이죠. 모르드개는 어떻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이 민족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만들어 주셨어요. 약속해 주셨어요. 그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하셨고 이삭에게 하셨고 야곱에게 하셨는데, 그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 하만 때문에 그 약속이 깨어지겠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아무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날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에스더가 나서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강하게 믿은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약속을 해 주셨어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해 주시기를 너희들이 비록 죄를 지어서 바벨론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겠지만 70년 뒤에는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어요. 그게 어디에 나옵니까? 예레미야서 29장 10절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회복시키셔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저 이방 땅에서 하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하는 사실을 모르드개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에스더가 순종하든 순종하지 아니하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거라고 하는 사실을 강력하게 믿을 수가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거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었고요.
두 번째로 모르드개가 한 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어떤 핵심의 요지를 말씀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그 사명을 맡기셨다고 한다면, 순종하며 나아가야 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준 거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누구를 사용하시나요? 사람을 사용하셔요. 사람을 사용해야만 해서 사람을 사용하시나요? 그건 아니에요.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도움이 없어도 그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용하시는가 연약한 우리들을 사용하고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저 가나안 땅에 애굽에 있던 그 종살이하고 있는 유대민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셨어요? 모세를 사용하셨어요. 아론을 사용하셨어요. 여호수아를 사용하셨어요. 블레셋 민족이 공격해 올 때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구원해 주실 수도 있지만, 누구를 사용하셨어요? 다윗을 사용하셨어요. 골리앗을 무찌르게 만드신 거죠. 5천 명을 주님께서 그냥 먹이실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누구를 찾으셨어요?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 앞에 내어놓는 한 어린아이를 기다리신 주님이시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누구를 사용하셨어요? 바울 사도를 사용하셔서 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만드시는 그 일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사용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냥 살리실 수도 있지만, 누구를 사용하셨어요? 그 옆을 지나가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사용하게 된 것이죠.
지금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그 자리에 놓으셨고, 그 자리에 있는 에스더로 하여금, 에스더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하고 순종하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모르드개는 예스들을 향해서 도전하는 것이죠. 에스더야 사촌 여동생이거든요. 모르드개가 마치 자신의 딸처럼 키운 사촌 여동생에게, 네가 왕비로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저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끝날 수밖에 없는 너를 하나님께서 왕비까지 만들어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이야기하며, 그 사명에 순종할 것을 요청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는 어쩌다 보니까 재수 없어서 그 상태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죠. 마치 누구와 같아요? 요셉과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이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가는 그런 엄청난 고난을 당했어요. 어느 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것이 재수 없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까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 가운데 이 요셉의 길을 인도하셔서 결국에는 그 구원자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나님께서 그의 발걸음을 하나하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도해 주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도 오늘 우리가 여기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갖고 계시는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 가운데 실패가 있어도 좌절할 게 아니에요. 우리의 인생 가운데 정말 좌절할 만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너무나도 걱정할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는데 그 옛날 요셉처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공의 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교만할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공의 길을 가게 하신다고 한다면,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고 한다면, 그냥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부자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명과 섭리를 외면해버리고 그저 자신의 배와 자신의 평안함을 위해서 살다가 주님으로부터 소리를 듣는 것이죠. 어리석은 자여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목숨을 거두어 가신다고 한다면 내가 쌓은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셨는가를 늘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녀를 주셨다고 한다면 왜 주셨어요? 그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라고 이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우리를 선택해서 우리에게 맡기신 거예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재수 없이 맡겨진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엄마로 가장 좋은 아빠로 사명을 감당하라고 우리에게 그 사명을 맡겨주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나에게 맡겨주셨어요? 실수하셔서! 실수하신 것 같아요. 성격도 안 맞고 어쩜 그렇게 모든 게 안 맞아요? 뭐처럼 안 맞아? 복권처럼 안 맞아. 모든 게 안 맞고, 성격도 안 맞고, 다 안 맞는데, 왜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나에게 맡겨주셨어요? 왜 하나님이 저 사람을 나의 남편으로, 저 사람을 나의 아내로 맡겨주셨어요?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냥 졸고 계셔서 그렇게 맡겨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가 있는 줄로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잊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누가 짝지어주신 것을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해가 안 돼도, 정말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왜 나를 연결해 주셨는지, 기도하며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단점이 있고 약점이 있으면 그 단점, 약점을 미워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바로 그 단점과 약점을 우리가 보완해 주고 덮어주고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어 주라고, 연약한 것이 있으면 싸매어 주고 감싸주어서 온전하게 만들어 주라고. 그래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내게 주신 그 사명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를 하나님께서 왜 신앙의 공동체로 묶어주셨는가?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라고, 힘들 때 지나가면서 한마디 해 주면서 힘내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교사 주일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사로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에요? 이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이 아이를 살리라고 그냥 내버려 두면 말라 죽을 수밖에 없고, 그냥 내버려 두면 그냥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고 돌보며 복음을 그대로 제대로 잘 알려주어서 그 옛날 에스더가 유다 민족을 살린 것처럼, 이 죽어가는 몰살 위기에 처해버린 이 나라 이 민족의 우리 아이들을 우리의 헌신으로 살려내라고 교사로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에스더는 이때 못하겠다고 내빼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에스더 4장 16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더가 대답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다.” 당시 왕비가 오늘날의 왕비 같지 않아요. 오늘날에는 뭐예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당시는 왕비가 함부로 왕에게 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이전 왕비가 왕의 말을 함부로 했다가 안 들었다가 그래서 폐위되고 쫓겨난 거예요. 에스더도 그냥 괜히 나갔다 죽을 수 있어요. 왕비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못 하겠다. 나는 할 수 없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도망간 게 아니라 에스더의 고백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세워주셨다고 한다면 죽으면 죽으리다. 그래서 죽었나요? 아니요. 죽은 게 아니라 살았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유다 민족을 모두가 모두 다 살린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이 자리에 앉혀 놓으셨습니다. 죽는 것 같은 상황에 우리를 넣어 놓으셨어요. 죽을 것 같다.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는 그 상황. 지금 에스터가 바로 그 상황 아닙니까? 내가 이거 하면 죽을 것 같은 그 상황 가운데 집어넣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우리는 죽을 것 같다는 그런 위기감을 느끼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애써와 함께하셨던 하나님 오늘 우리들과도 함께 하시고 죽으리라 생각하고 달려갔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유다 민족을 모두 살리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죽을 것처럼 보이고, 정말 우리의 몸이 바스라지고 완전히 망가질 것만 같은 도무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그런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살리고 변화시켜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그런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에스더는 무엇을 질문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를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이것은 내가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인가를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이것이 재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를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에스더가 물어본 것이 있으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옳은 일인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를 물었고, 그 물음에 응답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왜 기적이 없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전에 스톱하기 때문에 그래 우리를 살리실 준비하고 계시는데 그전에 도망가 버려요. 죽으면 죽으리라고 들어가야 되는데 그래야 살려주시는데 들어가기 전에 도망가 버려요. 멈춰버리고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늘 이 에스더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이 자리에 보내주신 것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다 큰 민족을 살리는 그런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 일은 우리 아이 하나 살리는 일이 될 것이고 어쩌면 우리 배우자 남편이나 아내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작은 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에게 주신 그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런 순종 때문에 우리도 구원을 받아야 받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이 세상에 오셨어요. 십자가가 놓여 있는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피해서 목숨 살리겠다고 도망가신 것이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 놀라운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그 옛날 에스더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왕에게 담대하게 나갔던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로 나가게 되어서,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놀라운 은총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희들도 하나님의 그 소명을 기억하며 신실하게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