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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준다

– 이국진

만일 사랑이 맹목적이어서 도덕적 가치를 넘어뜨린다면, 잘못된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정치인들을 향한 테러로 나타나기도 하고, 맹목적인 사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사람들을 향한 무조건적 비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점이 되는 맹목적 사랑은 진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진리를 떠나 거짓으로 얼룩질 때, 사랑은 단점이 된다. C.S. 루이스는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하나님이 될 때에는 악마적이 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헌신을 인간적 사랑에 바칠 때 사랑은 악마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1 그래서 사랑이 진리의 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악마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엔 사랑의 이름으로 진리가 무시된다. 사랑은 마치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신처럼 작용한다. 로버트 제임스 윌러가 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란 소설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정당하다는 사이비 종교를 전달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사랑은 진리에 부합해야 한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거짓으로 위장된 사랑은 아름다워 보여도, 항상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한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거짓으로 만들어가는 사랑의 멋있어 보이는 단편만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선악과를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환상을 보여준 뱀처럼. 로맨스로 위장했지만, 불륜에 불과할 뿐이다. 선악과를 먹고 난 뒤에 발생하는 비참한 인류의 현실에 대해서는 미리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거짓 사랑이 가져올 가정의 파괴와 배우자에 대한 배신의 독소 등에 대해서는 소설에서 침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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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C.S. 루이스, [네가지 사랑] (홍성사, 20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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