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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는 신발을 신고 있을 동안, 거짓말은 지구를 반 바퀴나 돌 수 있다. — 마크 트웨인 (1835- 1910)

한쪽이 진리에 귀를 닫고, 다른 한쪽이 진리에 입을 다물고 있는 한 진정한 우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 — 키케로 (106-43 BC)

– 이국진

진실을 말한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아주 오래전에 유행했던 신신애 씨의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에서 나오는 말이다.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위가 가짜였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버젓이 활동하던 명사들의 학위가 가짜라는 점이 속속히 밝혀지고 있다. 가짜의 대열에는 연예계뿐만 아니라, 종교계에도 깊게 침투되어 있다는 것이 신문보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의 실체를 확인한 것 같아 마음이 꺼림칙하다.

가짜가 판치는 시대이기에,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사랑의 11번째 정의는 우리의 마음에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랑은 거짓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좋아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과 관련이 있다.

거짓은 사랑을 해치는 가장 큰 적이다. 사랑한다면 솔직해져야 한다. 아내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남편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자녀들에게 솔직해져야 하며, 친구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거짓으로 포장된 관계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거짓은 더 많은 거짓을 낳게 되고, 거짓으로 세운 관계는 어디서든 무너지게 되어 있다. 마치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듯이.

나이를 먹을수록 건망증이 심해져 간다. 하지만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일 진실을 말한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의 말은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11번째 정의를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말을 다음과 같은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1) 사랑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진리를 직시하여야 한다. (2) 사랑은 진실하게 대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고 언제나 진실한 모습으로 대해야 한다. (3) 사랑은 내가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험담이나 스캔들 같은 이야기들을 좋아하기보다, 진리를 사모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4) 사랑은 상대방이 진리 가운데 행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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