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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후회 (롬 11:29)

여러분들은 후회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후회하신 적, 아니 인생을 살아오면서 후회했다고 한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었을까요? 어떤 분이 말씀하시는데, “현재 남편하고 결혼하기로 한 게 가장 후회스럽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던데, 아마 농담이실 겁니다.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늘 후회스러운 일들이 있는 것이죠. “아, 내가 왜 그때 그랬을까? 왜 그런 일들을, 그런 결정들을 했을까?” 후회스러운 일들이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많이 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게 있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제게 있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자상했어야 했는데 자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후회스럽고 더 따뜻하고 사랑으로 대해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아직 제가 미성숙했고 모든 것이 부족해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을 마음껏 쏟아내지 못해 버리고,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하고, 그냥 그 시간들을 허비해 버렸던 것이 어쩌면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이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말 소중했던 것이고, 정말 우리 가정을 향해서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한다면, 가장 큰 선물이 있다고 한다면, 아이들을 주신 것이 가장 큰 선물일 텐데, 그 선물들을 그냥 방치해 버리고 외면해 버렸던 것이 어쩌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후회하실까요? 하나님께서도 정말 후회하실 만한 일들이 있으실까요? 하나님은 후회하실 리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기도 하고 전능(全能)하시기도 하시기 때문에, 후회하실 리가 없으신 것이죠. 우리 인간들은 전지하지도 못하고, 전능하지도 못해서,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고,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서 선택했지만, 알고 보면 악수를 둔 것이고, 늘 실패하고 늘 실수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은 언제나 실수가 많고,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미래를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우리가 컨트롤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늘 선택이 실패로 돌아가는 일들이 많고, 따라서 늘 후회할 만한 일들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후회하실 리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미래를 다 꿰뚫어보시고, 미래를 다 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래가 어떠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실수하고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미래에 대해서 정확히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실패할 리가 없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후회할 일들이 없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후회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1장 29절의 말씀에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셔 놓고, “아, 이거 내가 잘못 선택했구나. 아, 이거 잘못했구나. 취소해야 되겠다.” 그렇게 번복하거나, 후회하고 “잘못했다”라고 하는 그런 모습이 하나님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민수기 23장 19절에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아니하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그 인생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셔서, 그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하나님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아니하시고,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은혜를 계속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말씀하시는 것을 번복하지도 아니하시고, 후회하지도 아니하시는데, 바로 그게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변하지 않는 하나님, 불변하는 하나님,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일관적이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가운데 나폴레옹이 병사들을 데리고 적진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공격 앞으로” 해서 “공격 앞으로” 해서 열심히 가서 전투를 벌였는데, 나폴레옹이 그 진지를 점령한 후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 여기가 아닌개벼. 저쪽. 저쪽으로” “공격 앞으로” 해서 또 열심히 그 다른 곳을 향해서, 진지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나폴레옹이 또 그 진지를 점령한 후에 또 이야기합니다. “아까 거기가 맞는개벼.” 그렇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그런 모습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후회함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불변하시고 후회함이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시기도 하고, 변하시기도 하는 모습을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신다고 하는 그런 표현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이 있다고 한다면 창세기 6장 5절에서부터 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사람들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그 인생들이 죄만 짓는 겁니다. 나쁜 짓만 하는 겁니다. 서로 싸우기만 하는 겁니다. 미워하기만 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반응하시는 것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가 인류를 잘못 지었나? 이게 아닌데, 내가 이 인간들을 지은 것을 후회하고” 한탄한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창세기 6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세우셨다고 하는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1절의 말씀에 보면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웠어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그 왕으로서 왕의 일을 잘할 줄 알았는데, 그 사울 왕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겁니다. 순종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한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런데 성경 이곳저곳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후회하시기도 하고 “한탄하신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변함이 없으시고 불변하시다는, 그런 말씀은 사실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변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그 영원한 목적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고 하는 말씀이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이 그냥 모든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하나님, 완고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선으로 반응하시기도 하고, 심판으로 반응하시기도 하는 것이죠. 그냥 한 번 결정했으니까, 지금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현재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한번 결정했으니까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완고한 모습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전체적으로 큰 선함의 목적, 하나님의 계획과 그 모든 목적들이 변하지 아니하시지만, 상황에 따라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반응하시기도 하고 저렇게 반응하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황마다, 다 다른 것일 거니까요. 우리가 볼 때 좀 답답한 사람이 누군가요? 좀 가슴이 콱콱 막히는 사람이 무엇입니까? 누굽니까? 완고한 사람이죠. 상황이 아닌데, 상황이 변했는데, 처음에 계획 세워놨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은가요?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서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번 휴가를 맞이해서 우리가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할 텐데, 여행 계획을 세워놔서 여러분들은 여행 계획을 어떻게 세우십니까? 저는 여행 계획을 아주 잘 짜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뭘 먹고, 점심때 어디 가고 해서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놓는 그런 스타일인데, 그런데 제가 그렇게 여행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중간에 어디 하나가 펑크가 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망가져버리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밀어붙이느라고, 제 아내와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도리 있게 반응을 하는 게 그게 맞잖아요? 지금 가는데, 아이가 힘들면, 지금 아이들이 힘드니까, 그 힘든 상황에 맞게 계획을 수정하고 방향을 바꾸고, 그래서 거기에 맞는 계획을 다시 차선의 방법 그 플랜b, 플랜c를 가동하면서 유도리 있게 움직여야 그게 제대로 된 것이지, 마치 정말 완고한 그런 지휘관처럼, 우리 아이들의 상황이 어떠한지도 전혀 반응이 없이 밀어붙이는 사람과 있다고 한다면 정말 답답할 것입니다.

후회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도 말씀하시고 한탄하시기도 하신다고 하는 말씀은 제대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하시고 그냥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후회, 그런 의미에서의 한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하나님이신가? 인간이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부하고 죄악을 하고 죄악을 저지르고 나쁜 짓을 하게 될 때에, 그러한 모습을 보시면서 안타까워하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아무런 감정이 없이 무뚝뚝하게 그냥 밀어붙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서 거기에 적절한 반응을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때로는 계획을 변경하시기도 하고 후회하시거나 한탄하신다고 하는 그런 표현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해야 할까? 시험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 결론이 뭐였죠? 우리는 어떤 시험을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는 그런 선한 시험을 해야 되는 것이죠.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정말 축복을 내려주시는가? 그것을 시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죠. 정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실까? 설마 나를 하나님이 심판할까?”하면서, 계속해서 악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그렇게 시험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한다고 하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시는 것이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죄악을 행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거부했을 때,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스스로 버리시겠다고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 방향으로 반응하신 것이죠. 하지만 그때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청합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민족을 살려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모세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또 계획을 바꾸셔요. 출애굽기 32장 14절의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왜?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기도를 보고 하나님께서 그 화를 낮추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용서하시고 품으시겠다고 말씀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가 회개하고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반응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 왕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야, 이제는 네 생명이 끝났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그 히스기야 왕에 대한 그 계획이 이제는 이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제 그 죽음을 앞두고 내 삶을 정리하라고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아는 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들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렸어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통곡하면서 울었어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통곡하면서 울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히스기아의 생명을 마감시키겠다고 하는 그 계획을 변경시켜서, 기도하는 그 히스기아에게 15년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계획해 버리고 그냥 끝까지 밀어붙이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른 반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이죠.

또한 니느웨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이 너무나도 차서, 이제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을 멸망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40일 뒤에 이 성을 멸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니느웨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울부짖기 시작한 거죠. 죄를 뒤집어쓰면서,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면서 회개하며 돌아오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40일 안에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했던 그 계획을 취소시키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거기에 적절하게 반응하시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선택했던 사람들이 만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시는가? 심판하시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이 후회하셨거나 하나님이 계획을 바꿨다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 불변하세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은 영원 불변하신 것이지만, 후회함이 없이 계속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악의 길로 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애통해하시는 것이며, 노아의 홍수 시절 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거부할 때,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습들을 우리 인간의 차원에서 본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주관도 없이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완벽하신 것이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선을 베푸시고, 악을 행한 자에게 심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3장 12절에서부터 16절 말씀에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심판하기로 했던 그것을 바꾸시고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냥 결정해 놓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고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8장 7절에서부터 10절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에 따라 반응하시기도 하는 하나님이신 것이죠.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목적이 변함이 없으셨는 그런 의미이지, 언제나 우리를 그냥 그냥 밀고 나가신다고 하는, 무대뽀로 밀고 나가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그런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하나님께서 부르심과,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시다고 하는 그런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그 변함이 없으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시죠. 그래서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으셔요. 우리가 악을 행할 때는 때로는 심판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시는 그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고 후회가 없으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에서 내어주신 것이죠.

예전에 지난번에 미국에 있는 우리 딸아이들을 방문하러 갔을 때 우리 아이들은 고양이들을 키우는데요. 한 번은 우리 고양, 우리 둘째 딸아이가 기르는 고양이가 뭐를 잘못 먹은 것 같아요. 자꾸만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정말 힘들게 고통스러워하는 그것을 본 우리 딸아이가 그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하면서 봤더니, 집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던 그 핸드폰의 이어폰을 삼킨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목에 걸려가지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고양이 수술을 시켜줬습니다. 수술비가 얼마 나왔을까요? 혹시 상상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600만 원 나왔습니다. 5천 불이 나온 것이죠. 그래도 우리 딸아이는 5천불을 썼어요. 그 돈으로 여행 가려고 저축해 놓고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모아놓았던 돈인데, 그 고양이 한 마리를 위해서 600만 원을 쓰더라고요. 우리 부모를 위해서 그 정도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우리 아이의 마음에는 후회함이 없어요. 나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너무나도 행복하고, 그 나은 고양이를 껴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시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그리고 우리의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신 그것을 후회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이어폰만 먹은 게 아니라 온갖 죄와 악을 행하면서, 행하는 것이 악하고 모든 것이 더러워서, 우리의 죄를 수술해서 살릴 방법이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에 내어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내어주셔서 그 아들을 희생시키면서 그 값을 치르고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는 가운데 믿음의 결단들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잘못 선택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후회하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선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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