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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지 말라 (롬 11:17-22)

우리가 계속해서 로마서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있는데요. 로마서 1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고, 또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반면에, 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불편한 진실인데요. 그 로마서 11장에서 해주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냥 무위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계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거에 우리가 로마서 11장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 처음 듣습니까? 그건 아니죠? 그렇게 살펴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넘어진 것이 사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길로, 새로운 문이 이방인들에게 열린, 그런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로마서 11장에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1장 17절에서부터 22절 말씀에서는 이제는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서 경고하는 말씀을 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경고하고 있는,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있는 그 메시지가 무엇이죠? “자랑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라고 하는 그런 교훈을 해주고 있는데요. 왜 자랑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방인이 이렇게 유대인의 넘어짐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는 백성이 되었지만, 이것이 끝까지 계속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일 이방인 성도들도 믿음을 저버리게 된다면, 만일 이방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다고 한다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방인 성도들도 구원에서부터 잘려나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접붙임의 비유를 말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원래 선택하신 민족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 그 나무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쳐내버렸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고 있는 그 이스라엘 민족을 쳐내버리고, 대신 그 나무에 이방인을 접붙임해서, 그래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 접붙임의 이야기를 해준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그런데 접붙임을 받은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는가?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접붙임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그 나무를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어떻게 하신다? “잘라내 버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로마서 11장에서 들려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걸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 11장 21절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 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여기서 너는 누굽니까? 이방인이죠. 유대인들을 대신해, 유대인들을 잘라버리고, 그 자리에 이방인을 심어서 이방인으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셨는데, 만일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너희들도 잘라내 버리실 거라고 경고하면서, “교만하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겸손하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하나 떠오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이죠.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의 구원도 잃어버려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도, “우리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질문을 떠올리시게 될 겁니다. 로마서의 표현대로 말하자고 한다면, 우리도 접붙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접붙임을 받게 되었는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우리도 버려질 수 있겠는가? 우리도 잘려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오늘 읽은 로마서 11장에서는 무슨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까? 잘려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절대 잘 잘려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잘려나갈 수 있다.

이러한 로마서의 말씀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배워왔던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가르침과는 상반되어 보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아주 잘 요약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교리, 5대 요점, 그리고 칼빈주의 예정론에 의하면, 우리가 도중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합니까? 없다고 합니까?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게,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듣는 내용입니까? 처음 듣는 것처럼 쳐다보고 계시는데, 한번 복습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칼빈주의 5대 교리 한번 도표를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아주 잘 요약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칼빈주의 신앙의 5대 핵심, 5대 요점을, 5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흔히 튤립(TULIP)이라고 표현을 하죠? 첫 번째는 어떤 내용이냐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 버려서, 스스로의 노력으로서는 아무리 해도 구원을 받을 만한 능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첫 번째 요점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 버려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재간이 없다.” 하는 것이 첫 번째 요점입니다. 두 번째 요점은 무엇이냐면, 그런 인간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아무런 이유 없이 선택해 주었다고 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입니다. 이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냥 일방적으로 선택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들에게 어떤 장점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 똑같이 나쁜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선택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자를 사랑하고, 미워할 자를 미워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아무런 근거 없이 아무나 선택해 주셨다고 하는 것이 두 번째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피를 흘려주신 것이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목적이 있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신 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만을 위한 속죄였을 뿐이고, 네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하나님의 은총의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무조건 그 은총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것이지,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반드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은혜를 받아들이게 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한 그 사람은 도중에 어쩌다 보니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도중에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이 없이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제 좀 생각이 나십니까? 감사합니다.

이 가운데서 칼빈주의 5대 핵심 교리 가운데서, 예정론 가운데서, 다섯 번째가 무엇이냐면, 성도의 견인 교리예요. 견인이라고 하는 한자 말이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한번 밑에 보여주시죠.) 성도의 견인 교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선택받은 성도가 도중에 은혜를 잃어버리고,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될 일이 절대로 없다”라고 하는 것이 성도의 견인 교리인 것이죠. 이렇게 구원받게 될 성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 성도는 절대로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성경적인 근거가 충분하고,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예를 찾아보라고 한다면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부터 4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의 내용이 뭐예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반드시 100%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시켜 주겠다 하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인 겁니다. 한 사람도 구원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 주님의 약속인 것이죠.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부터 29절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좀 확실하게 확신을 가지고 대답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도중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구원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멸망받게 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게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한다고 한다면 당연한 결론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는데, 그 선택한 사람이 도중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구원을 잃어버려서 멸망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전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아닙니까?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고 작정하시고 구원시키기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정하신 거는 상관없이 그 사람이 결국 멸망해버린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무능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잖아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선택해 놓고 그 선택된 사람을 잃어버릴 리가 만무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고요. 따라서 칼빈주의 5대 교리가 그냥 나온 교리가 아니고, 아무리 성경을 묵상하고 또 분석하고 정리해도, 그것이 정확하게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칼빈의 예정론이 나온 것이고, 칼빈의 5대 교리가 나온 것이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성도의 견인 교리가 나온 것이죠.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연약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인간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내가 해줄 게” 약속을 했지만, 사랑을 안 하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못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잖아요? 못하시는 게 없는 하나님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1장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11장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원 가지들도 잘라내 버리셨는데, 하나님께서 접붙였던 그 사람도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면, 그 가지도 하나님께서 잘라내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헷갈리죠? 하지만 이것을 잘 이해하시면 좋겠는데요.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한번 이해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을 한번 보여주시죠.) 태초에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택, 선택하지 않은, 그래서 선택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택했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잘 걷는 사람도 있을 거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어도 타락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중간에 어중간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는 사람처럼 보이든,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든, 그 어떠한 사람이든지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타락의 길처럼, 타락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예수님 옆에 매어 달렸던 강도처럼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고, 바울 사도처럼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회심에서 다시 돌아와서 결국 구원받게 되는 그런 결과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도중에 믿음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어떤 상황의 모습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인데, 믿음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타락해 버리고, 결국에는 믿음을 잃어버려서,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하는 결과가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이게 바로 칼빈주의 예정론에서 설명해 주고 있는 그런 그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시겠죠? 그런데 오늘 로마서 11장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두 번째 그림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걷는 선택된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았는데 믿음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결국 불신의 길로 가고, 타락의 길로 가다가, 결국에 멸망하게 되겠는데, 오늘 로마서 11장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 빨간색으로 표시된 그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구원받은 것처럼 보였어요. 교회에 다니는 것처럼 보였어요.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사람이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믿음의 길로 가지 않고, 계속해서 타락의 길로 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원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오늘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그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좀 이해가 되십니까?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예정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아주 많이 있어요. 어떤 질문을 던지냐면,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러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라고 결론을 내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멸망받을 것이고, 내가 아무렇게나 망나니처럼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구원받을 거니까, 그러면 내가 할 일은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 분들 만나보셨습니까? 그런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는 것이, 왜냐하면 그것은 오해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 번째 그림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우리가 만일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간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데, 그 사람이 멸망당하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고, 결국 구원받게 되었을 때, 아하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했구나.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었구나를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일이 없습니다.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결국 내가 선택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선택과 우리의 행동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함께 간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타락의 길을 걸어가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정론을 오해해서, 어차피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선택됐다면 구원받겠지. 내가 어떻게 살아도, 내 믿음 생활 잘해도 선택받지 않았으면, “내가 구원받지 못하겠지”라고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믿음의 길을 걸으면 주님 안에서 신앙생활 한다고 한다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구원을 못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없어요. 100% 구원받아요. 그게 무엇의 약속이에요? 성경의 약속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그 가운데 일부는 지옥 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반드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영접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고 그 아들을 믿는 자는 “그 가운데 일부는 지옥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 믿음의 길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렇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러니까 결론은 무엇입니까? 믿음 생활을 잘해라. 교만하지 말아라. 내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미 구원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이라고 교만하게 생각하면서, 아무렇게나 행동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라고 말씀해 주는 것이 오늘 로마서 11장의 말씀이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타락의 길로 걸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이다? “잘려 나가게 될 것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 가지도 잘라내 버리셨는데, 접붙임을 받은 우리가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잘려져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믿음 생활 잘해라”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 가운데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그런 오해입니다.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예요? 구원파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구원파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한 번 구원받았으니까, 나는 구원은 따놓은 혼 당상이다. “이미 구원받았다”라고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아주 따끔하게 경고를 해주고 계시는데, 자랑하지 마라.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망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권면하기를 뭐라고 권면했습니까? 빌립보서 2장 12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미 구원받았으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라고 말씀한 게 아니고, “두렵고 떨림으로” 두렵고 떨림이 왜 두렵고 떨림이에요? 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이러다가 내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노력해야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어요. 그걸 언제까지 해야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부터 14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받은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구원을 완전히 받았다는 거예요? 그 구원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거예요? 노력하고 있다. 내가 저 부름의 상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고백까지 합니까? “내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대답을 해요. 그게 어디에서 나옵니까?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서부터 27절의 말씀 가운데 기록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다듬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지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놀라운 고백이에요. 바울 사도의 고백이 무엇이냐면, 내가 설교해서 성도들을 구원하게 만들고, 내가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받아들이게, 그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정작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정작 내가 지옥에 갈 수도 있겠구나! “내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하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살기 위한 부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는 그런 놀라운 고백인 것입니다.

놀랍죠?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과는 정반대 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 불신자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에요? 괜찮아. 나는 예수님 믿어. 내가 이렇게 뻔뻔하게 나쁜 짓 하고 있지만, 괜찮아. 나는 예수님 믿어도 나는 천국 갈 거야. 나는 괜찮아. 미워해도 괜찮고, 이웃에게 사랑 안 베풀어도 괜찮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살아도 되고, 교회에서 싸워도 되고,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나 예수님 믿으니까, 나 괜찮아. “구원받아”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우리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불신자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해서 역겨움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데, 성경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겁니다. 지금 교회를 다니는 것처럼 보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전혀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악의 길로 가고 있는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잘라내 버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아니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을 얻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부단한 노력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면서 내가 교회 다니니까 구원받을 거야. 내가 교회에서 목사니까 구원받을 거야. 내가 교회에서 장로요 권사고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하니까, 난 구원받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두려워하며 우리의 구원이 잘려져 나갈 수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완벽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벽할 수 없고, 우리는 늘 넘어지고, 또 실수하고, 또 넘어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 때문에, 문득문득 악한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고,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그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문득문득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내 육신의 악한 생각에 이끌려 가려고 할 때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주여, 믿음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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