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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전도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세상의 소금이라고도 하셨다. 우리가 맛을 잃어버리거나 빛을 잃어버리면, 이 세상은 삭막해질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마 5:16).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성도들을 통해서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흙먼지가 가득 차 있는 유리창으로는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도들이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질문한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저런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닐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성도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저렇게 마음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시기하고 불평 가운데 산다. 입으로는 전도하지만, 행동으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더 크게 말하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탄의 전도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거룩하게 살기 이한 부단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그게 전도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완전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아무리 서로 사랑하며 살려고 해도,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 너무나도 커서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전도의 중요한 길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선함을 보여서 전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우리가 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들, 사람들은 우리를 위선적으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에겐 악한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보다는 우리가 연약해서 늘 넘어지고,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고 하였다. 그 말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약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연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 예수님을 소개하려면, 우리의 약함의 고백이 먼저 고백되어야 한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고, 구원해 주셨다. 이게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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