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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

– 이국진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랑은 자기 중심의 삶이 아니라, 타자 중심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이기주의의 반대이며, 이타주의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정의는 두 번째 정의인 친절을 베푸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랑은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 보면, 가난한 이웃을 향해서 배려하라고 명령한다. 추수할 때에도,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을 다시 줍지 말라고 권고한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9:9-10)

미국 초창기에 하버드 대학에서는 성경을 가지고 경영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과 나눔이 있는 경영학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원리들이 적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크리스천들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이와 같은 원리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사업을 하면서 너무나도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업을 통해 남긴 이득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마저도 드물기 때문에, 사업의 이득을 선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성경적 원리는 이득을 남기는 과정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고, 거래처로부터는 너무나 인색한 거래를 하면서, 이득을 남긴 것을 가지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충분한 사랑이 아니다.

어떤 기독교 사업가는 자신의 회사에서 얻은 순 이득의 일정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직원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바람에 노사분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마음이 무겁다. 그들이 매장을 점거하며 영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항의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한국 사회의 만연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 같아 아쉬웠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 땅에서, 노사가 모두 선택할 길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너무나도 쉽다. 경영상의 이유로 한꺼번에 수백 명, 수천 명씩 해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고되면, 실업보험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또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해고되었을 때 생계 대책도 막막하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래리 버켓이 지은 [성경속의 경영학]에는 “해고결정”이란 장이 있다. 래리 버켓에 의하면, 크리스천 고용주라 할지라도 종업원이 업무능력이 없거나(무능력), 업무태도가 좋지 못하면 (부정직, 불순종, 나태) 해고할 수 있다고 담대하게 말한다. 하지만 해고를 하기 위해선, 시험 교정 기간을 가지고, 해고를 위한 면접을 실시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1 사랑은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추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둘째 딸이 나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가 죽기 전에 가장 보고 싶은 것, 혹은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야?” 이 질문에 대해서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응, 나는 네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빠, 그런 것 말고 번지 점프를 해보고 싶다던가, 아니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가고 싶다던가, 그런 것 말이야!” 그래서 나는 딸의 눈을 보며 다시 대답했다. “아니야, 나는 그런 것들은 별로 관심 없고, 오직 네가 잘 자라주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랬더니, 딸이 말했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는데…”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서 산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는데, 어머니는 아들에게 모든 맛있는 것을 양보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행복의 배를 채우셨다. 적어도 우리는 자녀들에게만큼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베푼다. 하지만 우리는 그 차원을 넓혀 나가야 한다. 가족에 대한 이타적 사랑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이타적 사랑과, 더 나아가 원수에게까지 이타적 사랑을 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로마서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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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래리 버켓, [성경속의 경영학] (엠마오, 1995), 16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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