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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4)

오늘 설교를 하려고 그랬는데, 우리 찬양대가 설교를 다 해버렸어요. 그래서 상당히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간단하게 말씀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소식들은 언제나 이중적이고 상대적인 소식들입니다. 누구에게 기쁜 소식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슬픈 소식인 것이죠. 어떤 사람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하는 너무나도 좋고 기쁜 소식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눈물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던 소식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승진하고 진급했다고 하는 소식은 어떤 사람은 그 진급에서 누락되었다고 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드는 것이죠.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그 선수들이 국가로 되돌아오는 그날을 국경일로 만들면서까지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반대로 프랑스는 2 연속 우승을 하는 기회를 놓쳐버린 너무나도 안타까운 경기였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소식들은 다 이중적이고 상대적이어서, 누구에게는 기쁜 소식인 반면에 그 기쁜 소식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슬픈 소식 너무나도 좋지 않은 소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고 하는 이 소식은 어떤 소식인가? 오늘 천사들이 나타나서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해 주었던 말씀이 누가복음 2장 10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은 소수에게만 좋은 소식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슬픈 소식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씀해 준 것입니다. 왜 이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좋은 소식입니까? 그것은 바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죽음에서부터 생명을 얻게 되는 그런 놀라운 기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소식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열심히 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다는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점수를 잘 따면, 그러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열심히 하지 못해서 중간에 아프거나 여러 가지 힘든 일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면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월드컵의 그 멋진 그 컵을 누가 만질 수 있느냐? 오로지 그 우승한 선수들만 만질 수가 있고, 키스를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아무리 뛰어난 셰프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만질 수 없는 것이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종교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도를 닦으면 당신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당신이 열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열심히 선을 쌓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수고하면, 그러면 당신은 높은 경지에 올라갈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그렇게 열심히 해서 저 높은 단계에 올라가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무소유의 삶을 살면 행복해질 거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성탄절이 되면 성탄절을 기쁘게 하고 즐기고 누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그중에 산타 클로스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전혀 성탄절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일 겁니다. 왜냐하면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는 아이는 누구에게 선물을 줘요?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는다고 해요. 나쁜 아이는 받을 수가 없다고 그래요. 그러기에 나도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나도 좀 선물을 받고 싶은데, 그런데 1년 내내 내가 착한 일만 할 수 있는가 하면 착한 일을 하지 못해요. 부모님의 말도 안 들었고 울었고 떼를 썼고 장난을 쳤고, 나쁜 짓을 많이 한 우리들에게 과연 선물을 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성탄절의 메시지와 가장 정반대 되는 메시지가 산타 클로스의 메시지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을 해서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하나님에게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세상에 오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자격이 없고,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 바로 성탄절에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 이야기가 복된 소식 모든 사람들에게 복된 기쁨의 소식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주님께서 돈 많이 가지고 온 사람만 내가 구원해 주겠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가운데서 선착순으로 1등 한 사람에게만 구원을 주겠다고 한다면, 누가 그 선착순 안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복음의 좋은 소식이 무엇이냐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겠다는 것이죠. 누구든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영생의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요. 오늘 성탄절의 메시지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누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고, 병들어서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있는 것이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는 노예들이 있었는데, 노예의 신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 복된 메시지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천사들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저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천사들이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났다고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그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수의 권력 있는 자들을 위해서 소수의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오셔서 그들만을 구원해 주신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저 예루살렘의 헤롯 왕에게나 신하들에게 나타났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최우수 선수들만 만질 수 있는 월드컵으로 오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그 누구도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 저와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오신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나 다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누구나 다 구원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하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문이 열려져 있지만, 모두에게 문이 열려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예수님을 거부하게 된다고 한다면, 아무리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쁨의 소식이라고 할지라도, 그 구원의 그 실제가 우리 자신에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노래합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큰 기쁨의 소식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는데 실제적으로 그 열려 있는 구원의 소식, 평강의 소식 평화의 소식이 누구에게 실제적으로 적용이 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문이 열려 있어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면, 그 문 안에 들어있는 것을 경험할 수 없듯이, 아무리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구주로 오셨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들판에서 양을 치던 그 목자들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 과연 그러한가 하여 예수님을 보러 갔었고, 그리고 주님을 목격하면서 경배하는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 옛날 이천 년 전 성탄절날 주님께서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찾아오셨듯이, 오늘 또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날마다 날마다 찾아오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12월 25일만이 성탄절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성탄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며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순간에 내가 이것을 선택해야 될 것인가? 저것을 선택해야 되는가? 아주 중요한 그 순간에 육체의 소욕을 내버리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엄청난 은혜의 축복의 잔치가 열려져 있는데,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 오늘만 기쁨의 날이 아니라,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이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기쁨의 날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성탄절만 되면 늘 생각나는 아주 짧은 소설이 생각이 납니다. 오헨리라고 하는 작가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는 짧은 단편 소설입니다. 이 오헨리 작품에 보면 제임스 델링햄이라고 하는 남편과 델라라고 하는 아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오는 겁니다.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오는데, 나는 남편을 위해서 무슨 선물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델라는 돈을 세보니까 가지고 있는 돈이 1불 98센트밖에 없는 겁니다. 아주 적은 금액밖에 없는 것이죠. 가진 게 너무 적어서 남편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뭘 해줄 수 있을까? 해줄 게 없는 겁니다. 그 돈으로는. 그래서 그 델라가 결정한 게 있어요. 자기 머리를 잘라서 팔아버리기로 한 거죠. 아름다운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던 그 델라는 자신의 머리를 잘라서 팔아버렸더니, 이십 달러의 돈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십 달러를 가지고 남편을 위해서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어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우리 남편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 남편이 가지고 있는 애지중지하는 조그마한 시계, 팔에 차는 시계가 아니라, 이렇게 목걸이처럼 차는 그런 시계인데, 시계 알만 있지 그 시계 줄이 없는 그 시계,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그 금시계를 전수받고, 또 유산으로 받아서 가지고 있는 그 남편을 위해서 그 시계에 맞는 예쁜 황금출을 사 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남편이 그 아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 아름다운 머릿결이 어디 갔냐고 그랬더니, 아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자기를 위해서, 내가 선물 사기 위해서 내 머리를 팔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그 남편이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사실 나는 오늘 그 시계를 팔아서, 당신의 그 아름다운 머리에 맞는 최고급 머리 빗을 사가지고 왔다고 하는 것이죠. 어쩌면 서로 사랑하는 그 마음이 정말 잘 드러난 소설입니다.

그런데 바로 성탄절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어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저 죄악에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하시는 가운데, 가장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선물로 마련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성탄의 이야기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그 사랑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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