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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경기 째 골이 없는 손흥민 선수를 보면서

지난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했던 손흥민 선수가 이번 시즌에는 4경기째 침묵 중이다. 후반 74분에 교체되어 나간 후, 벤치에서 분노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가 분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으니, 저 멀리 떨어져서 TV로만 보고 있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더 뛸 수 있는데, 이른 시간에 교체를 한 감독에 대한 불만이었을 수도 있고, 경기장 내에서 서로 연계 플레이가 잘 되지 않아 답답했던 마음을 토로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토트넘이 완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승격팀과의 경기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완전히 밀리는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시즌 첫 골을 넣고 새 시즌도 멋진 기록을 향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 세계 팬들에게 알리고 자기 자신에게 알리고 싶었을텐 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에 좌절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이겼다. 2골이나 넣고 한 골도 먹지 않으면서 이겼다. 어떻게 이겼을까? 그것은 모든 선수들이 잘 싸워줬기 때문이다. 상대가 전술적으로 토트넘의 공격을 차단하고, 패스길을 차단하고, 강하게 공격을 밀어붙이는 등 철저한 전술적 준비를 해왔지만, 소용 없었다. 토트넘이 그러한 모든 전술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수비와 선방, 그리고 약간의 빈틈을 노려서 골을 넣는 치밀함을 이용해 이긴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지고 있으면서도 꾸역꾸역 이기고 있다고 해서 꾸역승이라고 하는데, 원래 경기는 그렇게 이기는 것이다. 내용이 좋아야 이기는 게 아니고,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대표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오심이니 뭐니 말들도 많았다. 내용상으로 보면 완전히 밀리는 경기였다. 하지만 우리가 골을 넣었고 우리가 이겼다. 왜? 경기는 밀어붙이는 팀이 이기는 게 아니고, 골을 넣는 팀이 이기기 때문이다. 우리 일반인들은 늘 공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래서 상대방의 공세를 막고 도리어 파상공세를 펼치면, 그 팀이 잘한다고 생각한다. 내용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구는 공격만 있는 게 아니라, 수비도 있다. 공격만 잘하는 게 축구가 아니라, 수비도 잘 해야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 수비수들이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그리고 공격수들은 많지 않은 공격 기회에서 점수를 냈다. 그랬기에 이겼다.

이번 경기에 내용적으로 토트넘이 밀렸다고 보는 것은 축구를 공격으로만 이해하는 수준 낮은 평가일 뿐이다. 토트넘은 수비에서 상대보다 월등했다. 모든 공격을 무위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지 않은 공격에서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렸다. 그 골을 넣은 것은 해리 케인 선수지만, 해리 케인이 만든 골은 아니다. 토트넘 선수 전체가 만들어낸 골이었다. 손흥민 선수가 언제나 이긴 후에 인터뷰를 하면, 자신이 골을 넣은 것보다 팀이 승점 3점을 딴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고, 그리고 골은 자기 자신이 출중해서 넣은 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합작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손흥민은 수비수들을 끌고 갔다. 그래서 공간이 생겼고 해리 케인은 쉽게 넣을 수 있었다. 함께 만든 것이다.

손흥민에게 찾아온 몇 번의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한번은 파울 때문에 공격이 이어지지 못했고, 또한 슛이 살짝 빗나갔다. 그것은 손흥민만의 잘못이 아니다. 손흥민을 팀이 도와주지 못한 이유도 있다. 지난 시즌에는 상대팀이 해리 케인이 좀 부진했고 손흥민이 펄펄 날았다. 그랬던 것은 아마도 지지난 시즌에 해리 케인이 득점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지난 시즌의 득점왕 해리 케인에게 집중이 더 되어서 손흥민은 그나마 자유로웠고 지난 시즌의 득점왕이 될 수 있었다. 이젠 지난 시즌의 득점왕 손흥민이 더 자유롭지 못할 것은 뻔하고, 대신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렇다고 손흥민이 못한 게 아니다. 손흥민이 있었기에 해리 케인이 골을 넣는 것이다. 모든 선수들이 있었기에, 팀이 승리한 것이다.

내가 잘 했을 때에 모든 선수들 덕분이라고 말했던 것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내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 같은 때에도 좌절내가 잘 했을 때에 모든 선수들 덕분이라고 말했던 것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내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 같은 때에도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집중 견재를 당하고 수비수를 끌고 다녔기에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팀은 이기는 것이다. 아마도 콘테는 그걸 알고 있지 않을까? 난 축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거다. 잘 안 풀리는 것 같고 내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할 이유는 없다. 잘 나가는 것 같고 내가 드러난다고 해서, 교만해서도 안된다. 그저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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