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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함의 비결 (잠 12:11-14)

오늘 말씀의 주제는 “풍성함의 비결”이라고 하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풍성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풍성함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안 그러신 분 계신가요? 나는 싫다. 풍성해지는 거 싫다. 이러신 분 계십니까? 아마 그런 분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가능하면 넉넉했으면 좋겠고, 풍성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데요.

이렇게 풍성함을 누리고 싶어 하는 그러한 욕구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허기가 진다면, 그 무엇인가를 먹어서 그 허기를 충족시키고, 그 허기를 해소시키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데, 그렇게 허기를 느낄 때 그 허기를 해소하려고 하는 그 갈망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기왕이면 풍성했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넉넉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악하거나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종교에서는, 그리고 그런 종교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풍성함을 가지려고 하는 것 자체를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욕심들을 다 내려놓아야만 한다고 하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경우들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사실 이렇게 우리가 무엇인가 부족한 것보다는 넉넉해지기를 원하고 풍성함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이 정당하다고 해서, 무한대로 정당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욕구가 아주 쉽게 잘못될 가능성이 많은 겁니다. 우리의 그 정당한 갈망, 정당한 욕구들이 아주 쉽게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이 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가능성들이 많은 것이라고 하는 점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될 가능성은 이런 물질적인 욕구에서만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잘못될 가능성들이 항상 있는 것이죠. 모든 정당한 것들, 모든 좋은 것들이 지나치게 되면, 잘못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면 악하게 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선한 동기도 사실은 잘못되고 악하게 사용될 그런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하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런 풍성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잘못되는 경우는, 언제 그런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는 부당한 방법을 사용할 때입니다. 우리가 많은 소유를 얻고 싶어 하고 풍성함을 얻고 싶어 하는데, 그 풍성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바른 방법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남의 것을 탈취하는, 그런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그런 풍성함을 추구하려고 할 때, 그것은 악한 일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도둑질하는 것이죠. 내가 땀을 흘리고 수고해서,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면서, 도둑질하면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정말 마음 아프게 하고, 그래서 잘못된 방법으로 풍성함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재물을 추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재물에게만 의존하는, 마치 재물이 나를 살리는 것인 양,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돈만 있으면 된다. 풍성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는 그런 잘못된 마음을 가질 때, 잘못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족을 모르게 된다고 하면 잘못되는 것이죠. 우리가 주어진 것을 만족해하고,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늘 생각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늘 불평과 불만 가운데,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것을 아주 아주 싫어하면서, 아주 너무나도 괴로워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만족함을 모른다고 한다면, 기쁨을 잃어버리고 절망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욕구는 잘못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어떤 물질을 많이 가지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청지기로서의 사명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망각해 버리는 경우도 역시 잘못된 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은 다 목적이 있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저 나 혼자 잘 먹고 나 혼자 편안하고 나만 행복하게 누리라고, 우리에게 주신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주시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옆에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웃들에게 널리 전파하라고 하는 그런 사명으로 주신 것일 텐데, 그러한 사명들을 망각해버린다고 하면, 역시 이러한 정당한 욕구가 잘못된 것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잘못들을 피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풍성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며 정당한 것이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풍성함을 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다 풍성해지고 싶고, 모두가 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일 텐데,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는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인가요? 오늘 잠언서 12장 1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보십시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먹을 것이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이야깁니까? 어떻게 해요? 자기의 토지를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경작하라. 이 말이에요. 땅이 있는데도 경작하지 않고 놀려두면,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고, 수고하며, 땀을 흘리고 물을 주고 식물을 심고 그리고 많은 곡식이 맺어지게 하기 위해서, 많은 열매가 나오게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하게 된다고 하면,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노력하면,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이 있으면, 그 땅을 경작하게 된다면 많은 수확을 얻을 것이지만, 아무리 땅이 주어져 있는다고 할지라도, 그 땅을 경작하지 않고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수확을 얻을 수 없다.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이죠. 당연한 말씀입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풍성해질 것이지만, 게으르고 나태하면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땅이 없으면 어떡하죠? 땅을 경작하면 풍성해질 거라고 하는데, 그렇게 경작할 땅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이야기는 땅을 경작하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땅을 경작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제유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땅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땅을 열심히 경작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그 표현은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한 말씀인 것입니다. 땅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닌 거예요.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땅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죠.

어부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열심히 고기를 낚아야 되는 거죠.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열심히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이죠. 땅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농부가 아닌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기에게 맡겨진 그 땅, 자기에게 주어진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고, 그리고 땀을 흘리며 수고하게 될 때 많은 수확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스포츠 선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스포츠 선수라고 한다면 빨리 가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고, 뭘 해야 돼요? 자신의 기량을 키워야죠. 시즌이 끝나고 휴식기가 있으면, 그 휴식기 기간 동안에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휴식기간에 자신의 몸을 벌크업시키고, 자신이 부족했던 기능들은 더 닦아서 연마를 하고, 자신의 장점들은 더 많이 연마를 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을 더 키워나가야 그래야 풍성해진다 이 말이에요.

이강인 선수가 그랬다고 그래요. 이번에 이강인 선수가 우리 동양인이라서 키도 작고 스페인 라리가(LaLiga)에서 축구를 하는데, 거기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면서 많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번 쉬는 기간 동안에 어떻게 했는가? 자신의 장점을 더 개발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어필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 시간에 열심히 노력했다는 거예요.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될 때, “이번 시즌은 좀 더 기대하고 봐야 되겠구나.”라고 기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만일 학생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학생이라고 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 거죠. 놀고 싶어도, 딴짓하고 싶어도, 재미가 없어도, 내가 좀 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거예요.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다하게 되는 자들이 풍성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죠.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마음 한가운데 질문이 떠오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기를,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경작하면 풍성해질 거라고 하는데, 그런데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하는 것이죠. 성경을 보면 그 성경의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우리의 현실 세계 속에 들어가 보면 과연 이 말이 맞는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누가 풍성함을 누리고, 누가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열심히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아도, 부모 잘 만나서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꿈이 뭐냐면, 건물주 자녀가 되는 게 꿈이래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서 미치겠대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수고해서 좋은 성적 올리고, 좋은 대학에 가고, 그래서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정작 들어간 곳은 어디냐면, 자기 같은 반에서 펑펑 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한량처럼 지냈지만, 부모 잘 만나서 재벌의 아들 네 회사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수고해 주는 그 사람이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게 오늘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떠오르는 거죠. 정말 맞습니까? 하나님. 정말 맞습니까? 열심히 수고하고 경작한 자가 풍성함을 얻을 거라는 게, 이게 정말 맞는 하나님의 법칙입니까?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전혀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사실 오늘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신들이 가난한 이유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정말 열심히 수고하면서,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얻는 것은 겨우 조그마한 돈, 얼마 안 되는 몇 푼 받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게,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벌고 있는 반면에, 그런데 정말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 펑펑 놀고 있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펑펑 놀고 있는데, 그냥 주식 몇 개 사고, 부동산 좀 구입하고 해서, 그리고 부모로부터 이렇게 물려받은 재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겁니까?”라고 하는 질문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솟아오르게 되는 것이죠.

열심히 일하고 수고한 자가 풍성함을 얻는가? 그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 구조적인 문제가 아주 뿌리 깊게 있어서, 그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 가난의 문제, 이런 것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싶다가도, 우리가 발을 내딛고 있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성경적인 원리를 무시하고, 그냥 이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유혹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 모순처럼 보이는 일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지만, 그러나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린 자가 풍성함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며,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한번 그림을 도표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원래 부자가 게으르면, 그 가진 것에서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겁니다. 원래 가난한 자가 게으르면 더 가난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게으르지 아니하고 열심히 경작을 하고, 땀을 흘리고 노력을 하게 되면 원래 가난한 자는 그것보다는 좀 더 나아지는 것이 분명한 것이고, 원래 부자였던 사람도 열심히 경작하고 노력하면 더 많이 얻게 되는 것은 진리인 것이죠.

상대적으로 평가하게 되면, 그러면 원래 가난한 자가 열심히 경작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원래 부자인 사람이 게을러도, 그 사람보다는 더 적게 가지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상대 평가로 하게 되면. 하지만 게으르면 가진 것을 잃게 되고,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맞는 것이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경작하고 노력하면, 원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얻고 더 나아지게 된다는 게 사실인 것이죠. 상대평가에 의해서 우리들의 시각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풍성함의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 이유들이 다 있을 겁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한 가지 대답만을 하기가 어려워요. 종종 무식한 사람들이, 종종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그저 한 가지로만 해석하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수하는가? 어떻게 하면 단명하는가? 어떻게 하면 건강한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지 못한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가? 어떻게 하면 가난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우리의 삶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에 대해서, 보통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한 가지로만 생각하는 것이죠. 말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설명하려고 하고, 그 사람의 삶의 태도, 인사 잘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모든 걸 다 설명하려고 하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들의 삶의 모든 요소들은 단 한 가지 요소로만 설명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풍성하게 되고 풍성하지 않게 되고는 한 가지 요소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말 많은 요소들이 합쳐지고 다 합쳐지고 복잡하게 작용해서, 그래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런데 그 수많은 요소들 가운데서, “이 한 가지만 보자.” 이거예요. 이 한 가지만.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노력하는 자와 게으른 자 사이에, 그 면만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면, 그 면에 있어서는 이게 맞는 이야기다 이 말이죠.

따라서 오늘 잠언서 12장 11절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풍성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한다면,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간단합니다. 물론 열심히 사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요소가 더 추가돼야 되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적어도 이 분야, 열심히 해야 되느냐? 그냥 게을러도 되느냐?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게으른 것은 답이 아니고, 열심히 수고하고 경작하고 하는 게, 그게 답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잠언서 12장 11절 하반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겠지만, 그 사람의 대비를 시켜서 그러나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탕한 게 뭐죠? 술 먹고 즐기고 그냥 유흥을 즐기고 하는 것 삶을 허비하는 것, 이것이 방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요.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풍성해지게 되겠지만, 그냥 즐기고 방탕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될 것이다. 지혜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런데 제가 히브리어 원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방탕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다른 말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맞을 것 같아요.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나가는데요. “우메라데프 레이킴 하사르 렙”이라고 하는 말인데, 이것은 뭐냐 하면, 방탕한 것이라기보다는 “공허한 것을 추구하는 자는 마음이 공허할 것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공허한 것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헛된 것을 추구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쩌면 그냥 우리 한국말 성경에서 방탕한 것,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이렇게 표현했지만, 그게 아니라 일확천금을 꿈꾸는 거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서 얻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죠. 이렇게 내가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고, 수고의 땀을 흘려서 그 땀의 대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요행을 바라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그런 삶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오늘날로 치면 어떤 것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카지노에 간다든지, 아니면 로또 같은 거를 한다든지, 그래서 나의 노력이 없이 그냥 어떤 요행을 바라면서, 무엇인가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허망하고 공허하게 될 뿐이다라고 하는 것이 잠언서 12장 11절의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잠언서 12장 12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허망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어떤 것이 될까요? 단순히 요행이나 로또나 복권이나 이런 것들만이 아니라, 더 어떤 것을 추구합니까? 악한 것이죠. 예를 들자면 도둑질을 해서 채우려는 것, 내가 땀을 흘리고 수고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쉽게 사기를 쳐서, 요행을 바라고, 수고와 땀이 없는 상태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그 모든 것들이 잠언서 12장 12절에서 말하는 것이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렇게 풍성함을 추구하는 것은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망하는 길이다.”라고 오늘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쉽게 얻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네가 만일 나에게 경배하기만 하면, 온 세상을 주겠다.”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고, 수고하고 애쓸 필요도 없이, 그냥 눈 감고 경배하기만 하면, 온 세상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제안입니까? 하지만 그것은 잠언서 12장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헛된 유혹인 것이죠. 우리를 망하게 하는 유혹인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유혹들이 있다고 한다면, 거부해야 되는 것이죠.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애써서 내가 노력해서 얻으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잠언서 12장 14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입은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종종 우리 크리스찬인들 사이에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을 표방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방하면서 허황된 꿈을 신앙으로 그렇게 포장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수고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는데요. 그 사람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아주 인기 있는 그런 간증을 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간증하기를 뭐라고 간증했냐면, 시험공부 하나도 안 했대요. 공부를 하나도 안 했대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다 100점 맞게 해 줬대요. 믿음만 가지면, 점수 다 100점 맞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간증을 그런 사람이 하더라고요. 아마 그 사람이 시험공부 안 한 것이 사실일 수 있을 겁니다. 평상시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은 시험공부 안 해도 100점 맞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평상시 갈고닦은 실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워놓은 그 실력이 있기 때문에, 시험공부해야 되는 기간인데, 시험공부 못하고 교회에서 일 있다고 하니까, 시험공부하는 것보다, “주의 일 힘쓰자.” 하면서, 주의 일 힘쓰고 그렇게 했는데도, 100점 맞을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평상시 실력이 그 정도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시험 안 보고 100점 맞은 게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간증을 들은 사람들이 잘못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맞아. 내가 공부 안 해도 돼. 맞아.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돼. 기도하기만 하면 돼.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돼. 내가 열심히 일 안 해도, 헌금만 잘하면 돼. 내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하지 않아도, 내가 주의 일만 열심히 하면, 결국에는 다 될 거야.”라는 그런 허황된 꿈을 심어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간증일 거라고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그런 똑같은 간증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 사람 방법대로 해서, 그렇게 서울대학 간 사람이 없는 모양이에요. 아무튼 크리스천들 중에서 어떤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냐면,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거라고, 그렇게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으면, 그 부부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내 마음을 고쳐먹고, 내 태도를 고쳐 먹고, 내가 좀 더 용납하고, 그래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수고와 애쓰는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 삶의 태도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우리 부부 사이를 좋게 해 주세요.” 그래.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엉터리예요. 공부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 서울대학 가고 싶어요. 나 여기 가고 싶어요.” 기도하면 순 엉터리예요. 장사를 제대로 열심히 하고,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 오늘 대박 나게 해 주세요.”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죠.

그것은 믿음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성경에 분명하게 약속되어 있듯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네 발이 상하지 않게 해 주실 거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니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맞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야. 하나님의 아들이야. 나는 나는 보통 아들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야. 그러니까 내가 떨어지면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줄 거야. 하나님이 진짜 나의 아버지니까, 떨어져도 돼.” 하면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4장 5절에서부터 7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됩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하였으되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주의 일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다가, 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지, 우리가 물속에 뛰어들고, 불속에 뛰어들고, 사람들하고 싸워 들려고 하고, 그 사람들과 칼싸움을 하면서 일부러 나의 목숨이 위험한 상태로 일부러 내 모습을 집어넣으면서,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풍성함을 주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급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만 하면 다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닌 겁니다. 수고하지 않고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시겠지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신앙인 것이죠.

시편 128편 1절에서 2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를 경유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어떻게 한대로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살 것이다. 그냥 하나님만 믿으면, 펑펑 놀아도 괜찮아. “하나님만 믿으면 내가 아무런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어떤 자인가? 수고하고 애쓴 만큼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종처럼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완악해서, 열심히 수고하고 애쓰며 살기보다는 우리들의 시각이 비뚤어져서, 남을 비판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저 일확천금을 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사는, 그런 잘못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들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거룩하게 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해소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결단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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