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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사탄의 전략

– 이국진

인간은 너무나도 연약하여, 이러한 잘못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란 너무 어렵다. 사람에게는 사랑을 베푼 것을 누군가 알아주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런 못된 심성이 있다. 남이 알아줄 때 사랑을 베푸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번은 예수님께 젊은 부자가 와서 물었다.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 청년 관원에게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당신을 따라 올 것을 요구하셨다. 하지만 그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에 그러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그때 베드로가 나와서 예수님께 한 마디 한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젊은 청년이 하지 못했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베드로였는데, 그러한 결단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베드로에게 있었던 것이다.

마르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분주히 뛰었다. 최대한의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대접하려는 참으로 선한 마음이 그에게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예수님께 나아가 한마디 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는 성경 내용을 잘 알아서, 예수님이 마리아를 두둔하며 마르다에게 충고하는 장면에 익숙하다. 그래서 마르다가 잘못되었고, 마리아는 잘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세기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마르다가 더 잘한 것이 된다. 1세기 상황에서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당시의 여성들은 배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시대였다는 점이고, 둘째는 유대인들 사이의 최고 덕목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문헌을 살펴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도 손님을 대접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 주를 이루는 반면,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은 칭찬된다. 1 1세기의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다가 잘한 것이다.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수고는 알아주지 않으면서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에 골이 난 것 같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말은 자신이 그렇게 애쓰고 있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사랑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네 번째 정의는 규정한다. 사탄의 전략 가운데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전략이 있다. 사탄은 우리의 신앙적 열심에 방해하기 보다는, 그 이후에 자랑하는 마음을 심어 망친다.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리고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면 할수록 넘어지게 되는 부분이 자랑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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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탈무드 산헤드린 편 10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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