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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선행을 널리 알리기 조급한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며, 단지 교만과 허식에 지나지 않는다 — 윌리엄 허튼(1723-1815)

– 이국진

자랑하지 않는 사랑의 의미

팔불출이란 말이 있다. 여덟 가지 유형의 못난 인간을 뜻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자식을 자랑하고 아내를 자랑하면 못난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인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자랑하게 된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아내를 자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정의할 때에, 팔불출처럼 자식자랑 하지 말고, 아내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게 되면 자랑하게 되어 있다. 자랑하고 다니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자연적 현상이다. 어느 식당의 음식을 좋아하게 되면, 그 식당을 자랑하게 되어 있다. 학교가 좋으면, 그 학교가 좋다고 떠들고 다니게 되어 있다. 나는 미국 보스턴 교외에 위치한 고든콘웰(Gordon-Conwell) 신학교를 늘 자랑한다. 왜냐하면 그 학교가 좋기 때문이다. 마치 수도원과 같은 분위기의 멋진 캠퍼스와 훌륭한 교수진, 그리고 신학교다운 분위기를 갖춘 신학교이기에, 늘 좋아하고 자랑한다. 나는 어떤 목사님을 존경하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하고 자랑한다. 자기 교회가 좋으면, 자기 교회도 자랑할 수 있다고 본다. 예수님이 좋으면, 예수님을 널리 알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자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을 소개했다. 사랑하는 대상을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결코 금할 것이 아니다.

노인정에서 노인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를 보내는데, 그 대화의 주제가 모두 자식 자랑 손주 자랑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는 한 가지 법칙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절대 자식이나 손주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 만일 자랑한다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 법칙이 만들어진 후로, 아무도 자식과 손주에 대한 자랑이 끊어졌는가? 놀랍게도 서로 벌금을 물어가면서, 자식과 손주들 자랑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자랑하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며, 그 자체로서는 잘못될 게 없다. 물론 이러한 자랑이 교만으로 연결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멸시로 연결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랑이 교만함이 되지 않도록 절제할 필요도 있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긴 이 세상의 모든 장점과 모든 자연스러움은 항상 사탄의 손에 들려 악용되지 않을 것이 없다. 성경말씀도 사탄이 이용하는 판이니(cf. 마태복음 4:6), 그 어떤 것이든 사탄의 손에 붙들려 악용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을 자랑하는 마음 그 자체만 본다면, (교만으로 연결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물론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 사랑의 4번째 정의는 사랑을 베푸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며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사랑(자선)의 행위를 널리 드러내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2-4)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지적하신 말씀이다. 이들은 사랑을 베풀었다. 1세기 유대인들의 신앙의 척도는 구제, 기도, 금식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되곤 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구제도 많이 했고, 기도도 정기적으로 했고, 금식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구제하는 사실을 떠벌리길 좋아했다고 비판하시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란 말씀은 사랑을 베풀 때, 떠벌리어 알리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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