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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하나님

– 이국진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선 그 의미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이다. 부부 사이에 정절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신부인 우리가 정절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하는 것이다. 내 아내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허락지 않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죄악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서 안타까워하신다는 말이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질투하지 않는다고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기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서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시기하면서 눌러버리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 안에서 아름답게 세워지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분이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려는 모습을 볼 때 즐거워하시는 분이다.

시기하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는 사랑을 우리는 부모에게서 발견한다. 아이가 태어나 방긋 웃는 그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기뻐한다. 그 아이가 기어 다니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는 즐거워한다. 그 아이가 총총총 걸어 다니는 모습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부모는 행복해 한다. 그 아이가 “엄마, 엄마, 아빠, 아빠”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좋아라하며 까무러친다. 아들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웃집 사람은 시샘을 할지 모르지만, 하버드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아버지는 한 없이 기쁘기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시기하지 않는 사랑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시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다. 믿음으로 살려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흔히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 보고 신앙생활 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말은 100% 옳은 말이다. 신앙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해 보려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돈 좀 벌었나보지? 시간이 좀 남나 보네? 잘난 척 되게 하는 군!” 하면서 비꼬거나 시샘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가 온전히 헌신하려고 하는 그 모습을 보고 대견해 하시며 기뻐하신다. 죄악에서 떠나는 그 모습을 보고, 사랑하신다. 스바냐서에 하나님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바냐 3:17)

하나님은 성도들의 온전한 삶을 보시고 진정으로 함께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순종의 길을 가실 때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복음 3:17)

놀랍게도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하겠다는 변명을 듣는다.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헌신의 길을 가지 못하겠다는 변명을 듣는다. 그러한 핑계가 잘못된 핑계이긴 하지만,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우리가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헌신의 길을 가려고 발길을 떼려는 사람들에게 격려는 하지 못하고 짓밟아 버리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자들을 비꼬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교회 안에서 더 많은 격려의 박수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두 명이 함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기독교는 그들이 각자 따로 있을 때보다 두 배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열여섯 배로 커질 수 있습니다”라고 했던 C.S. 루이스가 말이 사실로 다가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1

생각해볼 문제 / 토론 문제

1. 시기를 할 때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런가?

2. 선한 욕심과 악한 욕심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기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3. 시기심이 생길 때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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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2001),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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