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피째 고기를 먹은 죄(삼상 14:31-34)

31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33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는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만일 음식을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는 가운데 전쟁을 했더라면 더 크게 승리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은 과도하게 금식의 명령을 내렸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요나단의 말처럼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했더라면 더 많은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은 전쟁이었습니다. 아무튼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을 쫓아갔습니다. 그 거리는 약 24 킬로미터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심히 피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의 명령과 맹세에서 해제되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에는 피를 먹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레 3:17; 7:26), 그들은 너무나도 배고픈 나머지 율법의 규정 같은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 그들은 피를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선조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피를 다 빼어내고 요리를 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들은 피를 먹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피째 고기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까요? 우선 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한 말씀(잠 29:18)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지 못햇을 것입니다. 선조들이 고기를 준비할 때 언제나 피를 빼고서 요리를 했겠지만, 왜 피를 빼야 했는지 그 이유를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일에는 실패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도록 요구받았지만(신 6:4-9), 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실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민족들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빠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소와 양과 송아지를 잡을 수 있는 큰 돌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 왕은 큰 돌을 준비하여 거기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준비를 하지 않았고, 배가 고픈 나머지 아무런 준비 없이 땅 위에서 고기를 잡아 피가 온전히 다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기를 먹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본질상 악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준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할 때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호장구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위해서,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예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이전에 그러한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급한 상황 가운데 경건의 삶을 무시하고 지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 중에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중에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내가 그냥 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가 형제의 마음을 칼로 난도질 할 수 있으며, 내가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창세기 9:4에서는 노아의 홍수 후에 짐승들도 우리가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양식으로 허락해주셨는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되는 피는 먹지 말라는 조건 하에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3:17과 7:26에서도 반복해서 피를 먹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피를 즐겨 먹어온 문화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순대나 선지를 즐겨 먹는 민족이고, 더 나아가 건강을 위해서 사슴피를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민족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피를 먹지 말라고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구약의 율법을 오늘날에도 지켜야 하는가라고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흔히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와 같은 법은 구약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켜야 하는 법으로 도덕법(moral law)라고 합니다. 이웃 간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은 규정 등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에게 주어진 특수한 법으로 시민법(civil law)이라고 합니다. 번제나 화목제와 관련된 규정 등은 제의(ritual)와 관련된 규정으로 이것을 의식법(ritual law)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도덕법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지만, 시민법이나 의식법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유효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정국가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제의와 관련된 것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다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피를 먹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도덕법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의식법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도덕법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라고 하는 율법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옳다고 결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피를 멀리하라”고 했다는 사실(행 15:20)은 피를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이 여전히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직접적으로 피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먹지 못할 음식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막 7:19).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고전 10:31). 구약 시대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었고 먹어서는 안되는 더러운 것들이 있었지만,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제는 더 이상 더러운 것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행 10:9-16).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기에, 이제는 더 이상 먹고 마시는 것으로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 2:13-16). 그렇다면 예루살렘 공의회가 이방인들에게 피를 금한 이유는 여전히 그것이 신약의 성도들에게 유효한 법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피를 먹는 것을 혐오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을 막히지 않기 위해서 부탁한 권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에 따라서 여전히 피를 먹는 것이 옳지 않다 생각하고 금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예수 안에서 자유로워진 우리가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상에게 바친 재물을 먹어도 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다투고 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준 권면(고전 8:1-13)이 피의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하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전 8:8).

이전 글 읽기 – 피곤한 명령(삼상 14:24-30)

다음 글 읽기 – 왕의 생각인가 하나님의 뜻인가?(삼상 14:35-37)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