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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생각인가 하나님의 뜻인가?(삼상 14:35-37)

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36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이스라엘 민족이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사울 왕은 계속해서 전투를 해서 블레셋 민족을 완전히 물리치고 싶었습니다. 허기진 상태에서 제대로 전쟁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 배를 채웠으니 마지막 힘을 다해서 완전히 블레셋 민족을 박멸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사울은 명령했습니다. 밤새도록 전쟁을 해서 동틀 때까지 싸워서 단 사람도 남기지 말자고 했습니다. 무리한 명령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금식한 상태에서 전쟁을 해야 했었고, 이제 저녁을 먹었다면 쉬고 정비를 해야 할 터인데, 사울 왕은 밤새도록 전쟁을 하자고 독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욕심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엄청난 결과를 얻을 것처럼 생각해서 쉬는 것을 포기합니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장사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 중에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공부를 하면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쉬는 것을 포기합니다. 사실 안식의 법은 우리를 옭아매기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법입니다. 적절한 브레이크 없이 마구 달리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따라, 밤새도록 전쟁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사실 제대로 된 판단만 잘 내렸어도 밤새도록 전쟁할 이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 금식을 명령할 것이 아니라, 먹으면서 전쟁을 했었더라면 전쟁은 이미 끝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금식이라는 종교적 도구를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했고, 결국 전쟁을 효과적으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밤새도록 싸워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사울은 또다시 정상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립니다. 밤새도록 싸우겠다는 결정 말입니다.

그때 백성들은 대답합니다.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이 대답은 사사기에서 자주 보던 표현입니다. 사사기 시대는 영적인 암흑기였는데, 그때에 사람들은 왕이 없어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었습니다(삿 17:6; 21:25). 그런데 그때에는 왕이 없어서 그랬는데, 왕을 뽑은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왕의 생각대로 따르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안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했는데(마 15:14), 사울은 제대로 된 인도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생각 대로 아무것도 먹지 못해 피곤한 상태에서 전쟁을 해야 했었는데, 이제 다시 사울 왕의 생각 대로 밤새도록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게 인간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안타깝게도 지도자가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오늘날의 영적인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사울 왕처럼 성도들을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정치적인 집회에 동원되는 경우도 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사람도 우리들의 구세주가 될 수 없기에 관원들을 신뢰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늘날의 목회자들 중에는 마치 어떤 정치 집단이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는 것인 양 정치 집단에 결탁해버리고 이 세상의 정치를 위해 열정을 내는 것을 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사장이 사울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견에 옳은 대로, 전문가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람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듣기 위해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습니다. 제비뽑기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아직 완전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된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방법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그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하고도 최고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지성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제비뽑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주장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점은 하나님의 뜻을 어떤 방법으로 구했는가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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