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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를 구원한 사울(삼상 11:6-11)

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7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9 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선택해주셨지만, 사울은 아직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완전히 그들의 왕으로 받아들여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량배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울을 비난했습니다. “어떻게 사울이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물론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생각의 파급력은 미약한 데 반하여, 부정적인 생각의 파급력은 정말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선한 생각은 쉽게 동력을 잃지만, 나쁜 생각은 점점 더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썩은 사과와 온전한 사과가 한 바구니에 섞여 있으면, 썩은 사과가 온전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했던 사과도 같이 썩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선하게 만드는 노력은 2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불량배의 관점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어머니의 관점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2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곧 불량배의 관점이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섞여 있던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하고 울부짖었는데, 그들의 불평이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이스라엘 전체에 퍼져나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정적인 관점의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독감백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백성들에게 요구되었다면, 사울에게는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리더십은 주어진 권위에만 의존할 수 없고, 획득된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주어진 권위만을 가지고 갑질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 대한 권세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품 안에서 자라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가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녀들에게 막무가내로 순종을 요구한다면 불행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에서의 권위도 마찬가지고, 교회 내에서의 권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내에서 목사이든, 전도사이든, 장로이든, 권사이든, 교사이든, 자신에게 어떤 직책이 주어졌다면 그 권위에 맞게 자신을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불량배와 같은 태도로 그들을 대해서도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겸손함과 섬김으로 자신의 권위를 입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7)

사울은 자신이 왕이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내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이스라엘 12 지파 중에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노예가 됩니다. 암몬 민족은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쪽 눈을 빼고 종으로 삼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런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새로 왕에 선출된 사울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이때 사울은 그 소식을 듣고 수수방관하지 않았습니다. 7시간 30분 동안 자신의 탐욕을 위해 그냥 시간을 허비해 버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울은 분노했습니다. 성경에서 분노는 나쁜 것이며 살인의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분노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노는 의로운 분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의로운 분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쓸데없는 것에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이 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인은 정의가 짓밟히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갈비에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노하는 자신을 한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못하고 그저 나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만 분노하는 게 우리의 단면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제대로 분노했습니다. 불량배들이 자신을 향해서 비아냥거릴 때에는 침묵했던 그가 동족 야베스 사람들이 공격을 당한다는 소식에는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군사들을 모아서 야베스를 구원했습니다.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자신을 따르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두려움이 임하게 하셔서 사울을 따르게 했는데, 33만 명의 군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승리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서도 왕으로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사울 왕을 잘 세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며 구원자가 되신 것은 그냥 하늘 위에 계시면서 얻은 칭호가 아닙니다. 물론 그냥 하늘 위에만 계셔도 주님은 영원히 칭송받으실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친히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사울이 분노한 것은 야베스 사람들이 자신의 동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를 그냥 남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녀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하듯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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