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메시야 사울(삼상 10:1)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삼상 10:1)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붓는 것은 왕으로 세운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니까,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은 일종의 메시야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가 들어있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왕이 어떻게 왕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 들어있습니다.

우선 왕은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입니다. 지금 기름을 붓는 것은 사무엘입니다. 하지만 왕을 세우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이나 왕을 믿고 따르게 될 백성의 눈치를 보면서 왕노릇을 한다면 잘못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롬 13:1). 따라서 왕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왕에게 주어진 권세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왕들이 이러한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큰 바벨론 제국을 건설했다고 생각하며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단 4:30).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위에서 축축하시고 들짐승과 함께 소처럼 풀을 먹는 데까지 낮아지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도행전을 보면 헤롯 왕은 사람들이 왕을 향해서 환호할 때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벌레가 먹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행 12:20-23). 다행히 사울은 이때만 해도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출신이며 가장 미약한 가족 출신임을 알고, 자신에게 왕의 직분이 주어지는 것이 가당치 않은 과분한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삼상 9:21). 자신은 자격이 없지만, 자신을 불러서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로, 왕이 다스릴 대상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점을 사무엘이 선언한 것입니다. 사울에게 속한 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아서 다스릴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은 청지기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주인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습니다(창 1:26).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고, 우리에게는 다스려야 할 영역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9). 부모에게는 가정이 그 영역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업이 영역입니다. 선생님에게는 교실이 그 영역입니다. 자신이 맡아서 일을 하는 그 분야에서는 적어도 자신이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각각의 영역에 왕으로 세우신 것은 우리가 왕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섬김을 통해서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 22:25-26).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각각의 분야의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는 교만하게 되고 섬기기보다는 착취하는 왕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도 안 될 것이고, 우리 마음대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다스려도 안 됩니다. 오직 우리를 왕으로 임명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돈이든, 자녀이든, 기업이든, 능력이든, 그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로 메시야입니다. 즉 사명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어설픈 메시야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도 어설픈 메시야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메시야를 갈망하게 됩니다. 완벽한 메시야, 참된 왕이시며 참된 선지자이시고 참된 제사장이신 메시야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왕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섬김의 왕, 참된 메시야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습니다.

이전 글 읽기 – 왜 사울일까?(삼상 9:15-27)

다음 글 읽기 – 기회를 따라 행하라(삼상 10:2-9)

 182 total views,  1 views toda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