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왜 사울일까?(삼상 9:15-27)

15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18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22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23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25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사울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선택하셨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성경에서 사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첫째, 그는 베냐민 사람으로 기스의 아들이었습니다(삼상 9:2). 둘째, 그는 준수한 소년이었습니다(삼상 9:2). 여기서 준수하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좋다”는 의미의 “토브”입니다. 도대체 어떤 점 때문에 사울을 “좋은 소년”이라고 평가했는지는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모호합니다. 사무엘상 9장의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아버지의 뜻대로 암나귀를 찾기 위하여 성실하게 찾아다니는 그 성실성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암나귀를 찾다가 아버지가 걱정할 것을 염려하여 돌아가려는 마음에서 그런 좋은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그를 좋은 소년이라고 평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아무튼, 구체적으로 그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좋은 준수한 소년이었습니다. 셋째, 사울은 키가 컸는데 다른 사람들의 키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큰 키의 청년이었습니다(삼상 9:2). 넷째,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베냐민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그의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9:21).

그러나 이러한 점들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키가 크면 좋겠지만 키가 크다는 것이 왕이 될 자격일 수 없고, 겸손도 미덕이긴 하지만 왕이 되기에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필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선택하였을까요? 일부러 실패할 왕을 선택하셨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과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압니다. 사울은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 실패할 왕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추측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은 과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은 언제나 선하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실패를 목적으로 창조한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도 있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불순종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만세 전에 세우셨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실패를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울도 실패했지만, 사울을 선택한 기준이 실패를 목적으로 세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울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무엘서의 기록만으로는 그 이유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볼 만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이 베냐민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20장의 사건과 연루된 지파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어떤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한 지파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온 지파가 일어나 베냐민 사람 만팔천 명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베냐민 지파에게는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하기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베냐민 지파는 파렴치한 지파로 낙인이 찍힌 지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불량배들은 사울 왕을 거부하면서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습니다(삼상 10:27).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베냐민 지파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연약한 자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세우셔서 지도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왕을 세우시기는 하지만, 그 왕에게 소망을 걸 것이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을 통해서, 즉 미약한 숫자를 사용하여서, 미디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사울은 모든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환영할만한 그런 뛰어나고 탁월한 인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고, 일부 백성들은 사울을 거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만큼 왕의 모습으로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다. 물론 약해야만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을 들어 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울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며,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순종하는 데 있었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정말로 겸손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삼상 9:21). 또한, 불량배들이 비아냥거려도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그들을 향해서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삼상 10:27). 자신이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울이 그렇게 계속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순종했더라면, 그는 훌륭한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면 그 누구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마른 막대기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기만 한다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해 할 것이 아닙니다. 절망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폐족이었던 베냐민 지파 중에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도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우리들을 사용하시는 주님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올 것을 미리 사무엘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사무엘은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 앞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베냐민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불쾌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은 가장 선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상석에 앉히고 가장 좋은 음식을 내어주었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무엘은 마음속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잘못된 요구에 따라 왕을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베냐민 지파 중에서 왕을 선택한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확신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 글 읽기 – 사무엘 앞으로 인도되는 사울(삼상 9:1-14)

다음 글 일기 – 메시야 사울(삼상 10:1)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