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4년의 법칙

– 이국진

부정적인 방법으로 믿어주는 사랑이 의미하는 바가 아닌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믿어주는 사랑의 의미를 밝힐 필요가 있다. 믿어주는 사랑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믿어야 함을 뜻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들이 경찰에 잡혀가는 그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있는 실체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도짓을 해서 잡혀온 아들을 보면서, 그리고 증거들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강도짓을 한 것 자체를 부인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강도짓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제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강도짓을 했다 할지라도,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우등상을 받아올 때뿐만 아니라, 실패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 볼 때에도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는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기초가 된다. 씨를 뿌린 후 물을 주고 가꾸면, 가을이 되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농부는 씨를 먹지 않고 밭에 뿌린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에도 밭에 뿌릴 종자는 먹지 않는다. 하지만 씨앗에 대한 믿음이 없고 추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씨를 뿌릴 수 없다. 믿음이 있는 자가 씨를 뿌릴 수 있고, 믿음이 있는 자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남편을 믿어주어야 하고, 아내를 믿어주어야 하고, 자녀를 믿어주어야 하고, 교우들을 믿어주어야 하고, 지도자를 믿어주어야 한다. 믿어주되 항상 끝까지 믿어주어야 한다.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믿어줄 수 없다면, 적어도 4년은 참고 믿어주어야 한다.

부부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좋지만, 여러 가지 생각의 차이, 문화의 차이, 성격의 차이 등등으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래도 4년은 기다리며 믿어주어야 한다. 신혼여행 가서 싸웠다고 곧바로 이혼하지 말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전에, 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놀라운 신비를 발견하기도 전에, 신혼 초의 조그마한 다툼으로 결혼을 깨트리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4년은 참고 기다리며 믿어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는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 사람이다. 성격차이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성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부부로 맺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의 차이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4년을 참지 못하고 성격이 다르다고 이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내가 어떻게 선택한 남편이고, 내가 어떻게 선택한 아내인데, 4년도 참아보지 못하고, 4년도 믿어보지 못하고 쉽게 이혼하는가? 그래서 적어도 4년은 믿어주어야 한다.

4년을 믿어주면 평생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우리 선조들은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이란 말을 했다. 세상의 지혜도 9년은 참고 믿어주어야 함을 간파한 것이다. 그런데 왜 4년인가? 4년의 기간은 누가복음 13:6-9에 있는 포도원에 심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 왔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고, 3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열매가 없었다. 3년이란 기간 동안 기다려 보았는데 열매가 없을 때, 주인의 생각은 그 나무를 뽑아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원지기가 말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누가복음 13:8-9). 그래서 4년이다. 물론 성경 해석학적으로 볼 때, 4년이라는 기간이 꼭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는 정확한 기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3이 완전수를 나타내므로, 완전수에 1을 더함으로써, 완전히 참을 만큼 참은 이후에도 더 참았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러므로 온전히 참을 만큼 참은 후에라도, 더 참고 믿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나는 적어도 4년은 참고 믿어주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부부 사이의 성격적 차이를 포함하여 모든 차이점들은 지금까지 평생 동안 익숙해져왔던 것이기에, 부부싸움 한번 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3년 정도 지나면서, 상대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인지적인 활동의 결과만이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가 말한 소위 지평의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평융합은 일방적으로 타자(이해의 대상)를 자신의 지평으로 흡수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자신이 타자의 지평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도 아니다. 지평융합이란 자신과 타자가 서로의 전통과 권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영향을 받아가는 변증법적인 과정이다. 1 이러한 변증법적 이해의 과정은 평생을 필요로 하며, 그런 점에서 이해는 차원을 달리해가며 날마다 깊어지게 될 것이다. 믿어주는 사랑으로 서로의 성품들을 이해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배우자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4년이란 이해의 과정을 지날 때,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배우자를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서로가 변증법적으로 지평의 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4년을 믿고 따라가면, 평생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4년의 법칙이라 부르고 싶다. 어디든지 4년의 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지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를 믿어주되, 적어도 4년은 믿어주어야 한다. 항상 믿어주면 가장 좋지만, 항상 믿어주는 첫 단계로 적어도 4년은 참고 믿어줄 것을 권고하고 싶다. 교회에서 새로이 담임목사를 청빙하였을 때, 일반적으로 허니문 기간이 있다. 어떤 교회는 그 허니문 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떤 교회는 그 허니문 기간이 1년 정도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담임목사가 하려는 일들에 대해서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참하게 된다. 약간 의견의 차이가 있더라도, 교우들이 인내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축적되었던 갈등들이 폭발하는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다. 가장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를 담임목사를 청빙하는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에게서 많이 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1년에서 4년 사이에 담임목사와의 목회 방식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 아픔을 가지고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4년 동안 참고 기다리면, 적어도 4년 동안 믿어주면, 이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된다. 담임목사도 교우들을 알게 되고, 교우들도 담임목사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적어도 4년은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 목차로 돌아가기

* 다음 글 읽기 – 믿어준 사람들

* 이전 글 읽기 – 체크 앤 밸런스 시스템이 필요하다

 84 total views,  1 views today

--[註]---------------------------
  1.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I-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 특징들] (문학동네, 200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