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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앤 밸런스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는 말은 교회 내에서 검증 시스템(Check and Balance System)을 갖추지 않고 믿고 맡겨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회계 집사님들의 인격을 믿기 때문에, 그들이 알아서 돈을 관리하도록 아무런 체크 앤 밸런스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가장 성경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정의하면, “죄인”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사업장에서 체크 앤 밸런스 시스템은 필수이지 선택사항이 아니다. 물론 회계부를 복수로 두고 서로 체크하도록 하는 것은 회계부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회계부가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구제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 디도(Titus)라고 하는 제자에게 그 일을 맡겼다. 뿐만 아니라 디도와 함께 다른 두 사람을 함께 보냈다(고린도 후서 8:17-21). 결국 세 사람이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중간에 강도를 만날 위험이 있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그런 이유를 들지 않고, 다른 이유로 설명했다.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고후 8:21). 디도라는 제자는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어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어준다는 것은, 혼자서 돈을 관리하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우선 사람들이 혼자서 돈을 처리한다면, 괜한 의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심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혼자 처리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더 나아가 아무리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악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고 하면, 혹시라도 유혹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 처리하게 두어서는 안 된 것이다. 이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가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를 믿고 재정을 담임목사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에게 만 불 혹은 몇 만 불의 돈을 주고, 목사님의 판단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돈을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청구서를 작성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는 필자로서는 그런 교회가 부러울 때가 있다. 도와주고 싶어도, 교회의 경직된 시스템 때문에 쉽게 도와주지 못하는 일을 번번이 겪으면서, 그런 교회가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담임목사를 무조건 믿고 돈을 맡기는 것은 안전하지 않고, 목사에 대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나중을 위해서도 좋지 못하다.

장로교 시스템의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복수성(plurality)에 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장로들이 있어서 당회를 이루고, 노회를 이루는 것이 장로교 시스템이다. 장로교를 장로교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장로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느 교파이든지 어떤 형태로든 장로가 있다. 그런데 왜 장로교만 장로교라고 부르는가? 장로교라고 부르는 것은 장로가 교회의 주인이서가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어서는 안 된다. 장로교를 장로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복수의 장로(=목사+장로)들로 1 이루어진 장로회(Presbytery=노회) 중심의 정치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로회(Presbytery)를 한국에서는 통상 “노회”라고 부른다. 즉 장로교는 노회 중심의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로교인 것이다. 담임목사가 개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 담임목사는 노회의 파송을 받아 그 교회를 목회하도록 위임받은 자에 불과하다. 노회가 그 위임을 취소하면, 더 이상 담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담임목사의 임면권이 노회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사표를 낼 때에는 당회나 공동의회에 내는 것이 아니라, 노회에 내게 되어 있다. 위임목사라고 하는 단어는 한국에서는 종종 무소불위의 전권을 가진 영구적으로 직분을 보장받는 목사라는 의미로 이해될 때가 많이 있으나, 그 단어의 기본 의미는 노회로부터 지 교회를 목회하도록 사명을 위탁받은 목사라는 뜻이다. 장로교는 복수의 장로들(목사 + 장로)로 이루어진 노회 중심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언제든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평생을 제사장으로 살겠다고 헌신한 이들 가운데서 홉니와 비느하스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이고, 다윗과 같이 사울 왕을 용서하고 마음이 넓었던 사람도 간음을 저지르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그래서 잠언서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28:26)라고 말하고 있다. 마음을 믿고 체크 앤 밸런스(check and balance) 시스템을 갖추어놓지 않으면,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조건적 믿음(absolute faith)은 절대 권력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타락한다”고 했던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 – 1983)의 말은 그런 점에서 옳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런 검증제도가 없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우리의 속담은 경험에서 나온 성경적 진리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는 말은 친구를 믿기 때문에, 계약서 없이 집을 렌트하여 주거나, 구체적인 계약서 없이 돈을 빌려주거나, 구체적인 계약서 없이 동업을 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들은 뒤 한 달이 지나면, 오직 10%만을 기억한다고 하며, 심지어 계약서로 작성한다 하더라도 그 계약을 이해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모든 것을 믿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여,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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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라 하고, 장로는 치리 장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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