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모든 것을 참는 것

– 이국진

단어가 다른 것 외에도, 첫 번째 정의와 12번째 정의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첫 번째에서는 단순히 참는 것을 말했다고 한다면, 12번째 정의에서는 “모든 것을” 참는다고 말함으로써, 참음의 대상이 “모든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12번째 사랑의 정의에서부터 15번째 정의는 모두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딘다고 강조함으로써, “모든 것”에 강조점이 있다. 참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참고,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참지 못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REB (Revised English Bible)에서는 “There is nothing Love cannot face”라고 번역하고 있다. “사랑이 맞닥뜨리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사랑이 참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인내의 한계점이 있다. 인내의 한계점이 높으면 높을수록 수양이 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단순히 인내의 한계점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높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참으라 말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참았다(절제했다). 고난도 참았고, 어려움도 참았고, 유혹도 참았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참았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도이기에 가지는 여러 가지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늘,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린도 전서 9:12)

고린도 전서 9장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다른 사도들처럼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이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복음에 아무런 장애를 주지 않기 위한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천주교에서는 바울이 독신으로 있었다는 점에 의지하여 신부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바울 같으려면, 독신으로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울은 독신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천막을 만들어 팔면서 자비량으로 사역했다. 게다가 먹고 마시는 것에 절제를 했다. 더구나 바울의 메시지는 은혜의 복음이었고,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향해서는 그들의 잘못된 종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다. 술을 마음대로 마시고, 메시지는 은혜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행위구원을 말하면서, 독신으로 사니까 바울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설플 수밖에 없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중보자가 우리에게 없음을 말하는데, 스스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면서, 바울처럼 산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바울과는 달리,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며, 가는 길이 다를 뿐이라는 종교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바울과 같이 산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바울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모든 성직자들이 따라야 할 규범은 아니다.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 여행자였던 바울은 그 사역의 특성상 결혼을 포기해야만 했다. 한 지역의 교회를 담당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던 사도들은 아내를 두고 가정을 꾸리며 살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원하는 사례비를 통해서 살았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전도 여행자였다. 전도 여행이란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세계 복음화라는 그의 독특한 사명 때문이었다. 그런 사명의 특성상, 바울 사도는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였고,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 교회를 담당하여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지역 교회 성직자가 받을 수 있는 재정적인 사례도 교회로부터 정기적으로 받을 수 없었다. 바울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참았다고 표현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바로 바울 사도가 자신의 특권을 사용하지 않고 참았다고 할 때 썼던 단어와 똑같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내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고 참는 것이다. 화 낼 것 다 화내고, 신경질 낼 것 다 내고, 내 방식대로 주장할 것 다 주장하고, 내 권리를 다 찾으면서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은 나의 당연한 권리를 손해 보는 것이다.

* 목차로 돌아가기

* 다음 글 읽기 – 우리는 왜 참지 못하는가?

* 이전 글 읽기 – 참는 것의 반복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