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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용 (계 12:1-6) 



성탄절이 다가왔는데요. 성탄절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진짜 생일은 아닙니다. 알고 계셨나요? 진짜 생일일 가능성이 365분의 1은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진짜 생일이 언제인지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태어난 날이 겨울철이 아니라, 아마 봄철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탄절을 12월 25일이라고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마 의미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12월 25일이 언제냐 하면, 밤의 길이가 이제는 짧아지기 시작하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절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날이 우리나라 절기로는 어떤 날이죠? 동지입니다. 어제가 동지였잖아요. 팥죽 먹으셨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지 때 팥죽도 먹고 즐기는, 그런 하나의 절기로 삼고 있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이런 동지와 같은 계절이 되면 이제는 밤이 줄어들어간다. 이제는 낮이 길어져 간다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고 축하하는 그런 절기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이제는 빛 되신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밝히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의 날을 정한다고 한다면,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언제 태어났는가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정한다고 하면 어떤 절기가 의미가 있을까? 언제가 제일 의미가 있겠어요? 동짓날이 의미가 있는 거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이제는 빛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환하게 밝히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삼았을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서양에서는 이런 날이 되면, 그동안 이교도의 축일로서, 온갖 축제가 벌어지고 잔치를 벌이는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우리 신앙의 성도들이 이런 날 세속적인 그런 잔치에 참여하지 말고, “우리는 예수님을 축하하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임을 갖자” 그랬던 것이 성탄절의 유래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정확한 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그런 성탄절로 지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 성탄절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늘 예수님의 탄생의 이야기들을 늘 살펴보았었는데요. 금년에는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한번 살펴보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아주 좀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신비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가 그렇잖아요? 요한계시록 전체를 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 하나가 오늘 요한계시록 12장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임신한 한 여인이 등장하는 것이죠. 이 여인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12장 1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옷을 입었는데 무엇으로 옷을 입었다고요? 해로 옷을 입었대요. 뜨거워서 어떻게 입죠? 해를 옷으로 입는다고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이것을 통해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밝게 빛난다는 것을 나타나는 것이 이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여인이 입은 옷이 어떤 옷이었는가? 너무나도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그런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고요. 달을 밟고 있었고, 머리에는 열두 별로 된, 그런 관을 쓰고 있는 그런 한 여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느냐? 임신한 여인이었어요. 아기를 배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아이가 해산하려고 해서 출산하려고 하는데, 순산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또 다른 한 존재가 나타나는 겁니다. 무엇이었죠? 붉은 용이 있는 겁니다. 그 붉은 용은 무엇인가? 머리가 7개나 있어요? 용의 머리가 하나만 있어도 무서운데, 용의 머리가 7개나 달려 있고, 일곱 왕관을 쓰고, 또 머리에는 뿔이 10개씩이나 달려 있는 그런 무시무시한 용이 등장해서, 그 꼬리를 치는 걸 보니까, 그 꼬리로는 하늘에 있는 별들 3분의 1을 땅에 쓸어버릴 정도로, 그러니까 이 용의 그 힘이 대단한 것이죠. 어마어마한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용이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용이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는가? 이 여인이 아기를 낳게 되면, 그 아이를 낳는 순간 그 아이를 삼켜버리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죠. 다 노려보고 있는 것이죠. “아기를 낳기만 해 봐라. 내가 싹 삼켜버려야 되겠다.” 하면서, 그렇게 무섭게 대기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 오늘 요한계시록 12장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잡아 먹혔나요? 아니요.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광야로 도망을 가버려서, 1260일 동안 거기서 피신해 있으면서 아이를 길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계시록 12장 6절의 말씀 1절에서부터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런 신비한 이야기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 뒤에 내용은 또 다른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천사하고 이 용하고 싸우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죠. 용이 다시 한번 또 힘을 발휘해서, 어떻게 하면 이 남자아이를, 이 여자가 낳은 아기를 삼켜버릴까? 잡아먹을까? 그러고 있는데, 그래서 이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 물을 용의 입에서 물을 막 토해냅니다. 그랬더니 막 홍수가 져서, 그래서 빠질 수밖에 없는데, 물이 엄청나게 홍수가 밀려오게 되면,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죽었나요? 안 죽었어요 어떻게 됐습니까? 땅이 입을 벌려 그물을 다 삼켜버렸기 때문에, 이 여인이, 그 여인이 낳은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요한계시록 12장 후반부에 또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다 끝나게 물러난 것이 아니라, 용은 계속해서 호시탐탐, 어떻게 하면 이 여자의 자손들과 싸우려고 할까 하면서, 계속 노리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이야기인 것이죠.

이런 좀 황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뭔가 우리가 잘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런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그것은 앞으로 먼 미래에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런데 사실은 이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과거에 있었던 한 이야기를 각색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각색에서 보여주는데, 어떻게 보여주는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좀 판타지처럼, 뭔가 만화 영화처럼 그렇게 그려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만화 영화를 보면은요 만화 영화에는 동물들이 말을 합니다. 그렇죠? 만화로 그린 것을 보면 신비한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합니다.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 영화를 보면, 사자가 말을 하고 원숭이가 말을 하고 코끼리가 말을 하고 동물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막 하는 것이죠. 또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 영화를 보면 어 촛대가 이야기를 하고, 컵이 이야기를 하고, 피아노가 이야기를 하고, 그냥 이 사물들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나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면서 이런 순 엉터리가 어디 있어라고 하면서 무시해 버리나요? 만화 영화를 보면서? 아니요. 만화 영화를 보면서, 동물들이 이야기하는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아, 저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구나. 우리들도 저 만화에 나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참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만화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교훈도 얻고 많은 여러 가지 유익을 참 많이 얻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는 그 만화 영화들이 정말 유익한 것들이 많은데, 그런 유익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무엇인가? 마치 만화와 같은 거예요. 판타지 소설과 같은 거예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것을 이상한 이야기로 하고 있지만, 그걸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고, 그런 방법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 한 임신한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고 했는데, 붉은 용이 그것을 막 잡아먹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이 이야기 이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게 무슨 이야기를 각색해서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이 드세요? 예수님 탄생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만든 거라고 하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의 이야기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이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그려주고 있는 판타지 같은 그런 묘사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탄생할 때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아기를 낳았을 때, 동방의 박사들이 저 먼 곳에서부터 찾아와서 경배를 하며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게 되는 그런 놀라운 일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탄생한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죠? 헤롯 왕이 그랬어요? 헤롯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내가 왕인데,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태어나다니, 말도 안 된다.” 하면서, 헤롯 왕은 자신의 속셈을 감추고 동방 박사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아이가 태어난 곳이 어딘지 나에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도 가서 경배하려고 할 테니까, 나에게 알려달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헤롯 왕의 마음속에 속셈이 무엇이었습니까? 죽이려고 하는 속셈인 것이죠. 그런데 그 헤롯 왕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죽일 수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동방 박사들에게, 너희가 헤롯 왕에게 가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 말씀해 주셔서, 동방 박사들이 헤롯 왕에게 보고하지 않고 그냥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린 겁니다.

헤롯 왕이 속은 줄 알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포기했나요? 포기한 게 아니에요. 헤롯 왕은 이번에는 어떤 계획을 세웠습니까? 베들레헴 주변에서 태어난 남자 아기들을 모두 죽여버려야 되겠다. 두 살 아래의 아이로 죽여버려야 되겠다고 하는 계획을 세워서 베들레 안에 있는 모든 남자아이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시행한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죽었습니까? 안 죽었어요 놀랍게도 어떻게 됐습니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현몽해서 “아이와 모친을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 있어라.” 해서 그래서 그 밤에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서, 거기에서 피해서 거기서 지내다가 나중에 갈릴리로 가게 되어서 아이를 죽일 수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이야기를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게 사실적인 묘사예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죠.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영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 12장의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있는데, 이 마리아는 오늘 우리가 만난다고 한다면 어떤 여인일까요? 마리아는 어떤 사람으로 우리는 볼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평범한 한 여인인 것이죠. 힘이 있습니까? 힘이 없는 한 나약한 여인이에요. 몇 살 정도 됐을까요? 당시에는 유대 여인들이 13살 14살 이때 결혼을 했다고 하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의 나이가 10대 소녀였을 가능성이 많아요. 그 어린 나약한 한 여인 가냘픈 어린 소녀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정말 이런 위험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그런 여인일 텐데, 오늘 요한계시록에서 그 마리아를 설명하면서 뭐라고 설명하냐면, 해로 옷을 입고, 달을 발로, 발 밑에 달이 있고, 그리고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여인이라고 묘사해 주는 겁니다. 그 말은 이 마리아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마리아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어떻게 보고 계셔요? 소중하게 보고 계셔요. 아무 힘도 없는 나약한 별 볼 일 없는 저 시골의 한 처녀로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을 이 마리아를 소중하게 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고 계시고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어 갈 하나님의 도구로 보신다고 하는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헤롯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드러내주고 있는 겁니다.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그 마음의 동기는 무엇이에요? 시기와 질투 때문에 내가 왕인데 나 외에 다른 왕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그 마음에서 이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인데, 그런데 영적인 차원에서 본다고 한다면 이것은 누구의 계략입니까? 사탄의 계략인 거예요.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사탄이 지금까지 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돼요? 이 아이가 만국을 다스리며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탄생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마리아가 낳는 이 아이가 누구인가? 한 가냘픈 여인에게서 낳게 된, 그런 조그마한 아이가 아니라, 이 아이는 만국을 다스릴 왕으로서 메시아로서 지금 이 세상을 사탄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해 주셔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메시아가 탄생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헤롯 왕의 마음은 그냥 사람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죽이는 것 같고, 이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무엇인가? 사탄의 계략에 따라서,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그 계략이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계획을 짰지만, 그러나 그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결국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죠.

이 이야기를 처음 받아 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 하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고, 로마 황제는 황제 숭배를 안 하면 죽여버린다고 하고 황제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목숨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그런 위협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야 이렇게 우리가 살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안한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그 이야기를 영적인 차원에서 판타지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리만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도 이런 엄청난 위험이 있었구나. 붉은 용이 삼켜버리기 위해서 노리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 노린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하나님께서는 보호해 주셨고, 그래서 “결국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구원을 온전히 다 이루셨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도 지금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과 아픔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도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해 주시고 우리와 동행해 주셔서, 결국 우리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 주실 거라고 하는 그 믿음의 확신으로 이겨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하기는 우리 성도들이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다시 한번 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부터 놀라운 약속을 해 주셨어요.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밟는 일을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것이죠.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온 민족이 복을 얻게 하실 거라고 하는 약속을 해 주신 것이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께서는 약속해 주시고 또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이 숲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어 주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고,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도 우리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 수 있도록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이 성탄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결국 우리를 승리케 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사실은 그 이면에 영적인 전쟁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이 마리아와 요셉이 아이를 낳는 것, 그리고 헤롯이 이 아이를 죽이려고 했었던 것 이런 것을 보면 그냥 인생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일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그것의 영적인 차원이 있는 거예요. 영적인 차원 어떤 차원이 있습니까? 사탄의 공격이 있는 것이고, 그 공격을 하나님께서 물리치게 하셔서 승리케 하셨다고 하는 영적인 자원이 있는 것이죠.

우리들의 삶에도 영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둘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그 옛날 붉은 용의 그 역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붉은 용이 모래 위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그 여인을 어떻게 하면 죽이려고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잡아먹을까 그렇게 노리고 있다고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부분에 가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하는 영적인 차원을 발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부터 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앎이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들에는 영적인 차원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내 마음 가운데 분노가 솟아나기 시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냥 기분 나쁜 일이 있으니까 분노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 세상의 관점으로는 그런가 보다 할 겁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영적인 눈으로 바라본다고 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 자가 누구예요?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붉은 용이 아이를 삼키기 위해서 허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온갖 작전을 다 쓰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좌절하고 쓰러지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죠. 그럴 때 우리가 그 사실을 발견해야 됩니다. 어떠한 공격이 우리들에게 왔을 때, “아, 이것이 사탄의 공격이구나! 나로 하여금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영적으로 공격하고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담대하게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고난이 생기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이 울적해지고 슬픔에 빠지고 좌절하는 일들이 있을까요? 그러면 힘들고 어려우니까, 내가 우울하구나. 내가 좌절하게 되는구나. 그렇게 아 이건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생각하면 되는가요? 아니요. 지금 사탄이 내 마음을 자주 움직여서 나로 하여금 무너뜨리고 있구나. 지금 내가 어떠할 때예요? 영적인 싸움을 해야 될 때이구나. 사탄의 그 공격에 내가 맞서서 내가 일어서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를 무너뜨려서 좌절하게 만들고 눈물 흘리게 만들고 일어서지 못하게 만든 그런 사탄의 공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일들이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그냥 휘둘려서 넘어질 게 아니라, 이런 영적인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사탄의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그 순간에 내 마음 가운데 다시 기쁨을 찾고 감사를 찾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탐욕의 마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에요. 무엇이에요? 붉은 용의 공격인 것이고 사탄의 공격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건 괜찮은 게 아니에요. 사탄이 우리들의 마음을 공격해서 우리로 하여금 미워하는 마음을 만들게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박살 나도록 공격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인데 그럴 때 우리가 이런 영적인 자원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싸워서 이길 수 없어요. 나 혼자 싸우라고 하면 싸워서 이길 수 있나요? 없어요. 늘 쓰러지고 늘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필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거죠. 우리의 연약함을 지고 십자가를 지신 그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도와주옵소서. 제 힘과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잃지 아니하고 끝까지 승리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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