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어떤 주인이 먼 곳에 다른 나라에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맡겨주고 여행을 떠났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그 종들하고 다시 결산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됐습니다. 이렇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지금 어떠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비유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마치 주인이 없는 것 같은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주인이 종들에게 재산들을 다 나누어 주고 멀리 여행을 떠나가 버려서, 그래서 주인이 없는 것처럼, 오늘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가?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을 매 순간순간마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 신실하게 살고 정말 선한 삶을 산다고 해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 같아요. 믿음으로 살아도, 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악한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계시는 것 같아요. 악을 아무리 행해도, 정말 사악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사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무런 징계도 받지도 아니하고, 그 사악한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것을, 우리가 목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계셔서 모든 것을 좀 바로잡아주셨으면 좋겠는데, 이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비유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가라고 하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들려주는 그런 비유라고 하겠습니다.
주인이 지금 어디 가버렸는가? 저 먼 나라에 가 있는 것처럼, 종들이 열심히 일하든 말든, 종들이 어떤 짓을 하든 말든, 성실하게 일한 종이 있고, 악한 종이 있고, 정말 다양한 종들이 있는데, 그 종들이 무슨 일을 하든 보상도 없고 징계도 없고, 그냥 그들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둔 채, 주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이 지금 어떤 세상처럼 느껴지는가? 마치 하나님께서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중에서 한 가지 선택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주인이 없구나. 아무도 나를 감독하지 않는구나. 내가 마음대로 놀아도, 내가 마음대로 악을 행해도, 내가 마음대로 삶을 살아도, 나를 징계하거나, 처벌할 주인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인생을 마음대로 방탕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 비유해 보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주인이 없으니까, 그냥 놀아버린 겁니다. 땅속에 감추어 둬 버리고 만 것이죠. 그리고서 그냥 그 시간을 허송세월하면서 그냥 보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는 누가 지혜로운 사람처럼 느껴집니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아무도 보지 않는데, 아무도 보상하지도 아무도 징계하지 않는데,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롱을 당하게 될 것이고, 정말 마음대로 놀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오히려 지혜로운 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교회 건축을 할 때였는데요. 교회 건축을 하기 위해서 일정을 이렇게 해가지고 “언제까지 공정이 다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늘 교회에 와서 교회가 예배당 건축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가 와서, 이렇게 싹 보고 있으면 일꾼들이 일을 하다가 감독자가 사라지면 일을 안 해요. 추운 겨울에 도라무통에다가 불을 떼놓고, 그 주변에 일꾼들이 모여 앉아서, 따뜻한 불을 쬐면서, 담배를 하나씩 꼴아물고, 서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서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이야기하고 지내기만 하는 거예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왜? 감독자가 없으니까, 감독자가 없으니까, 굳이 내가 여기서 열심히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주인이 없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주인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이용해서, 그래서 그냥 편하게 사는 선택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주인이 있든 없든, 정말 성실하고 정말 진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은 사람들이죠.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그럴까요? 누가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어머니들이 그렇잖아요? 어머니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기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입히고,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기를까 해서, 누가 이렇게 해라. 누가 저렇게 해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이 떠져요. 그냥 몸이 힘들어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어머니들이 있는 것이죠.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죠. 성경에 보면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이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알게 되고, 그래서 그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는 모습들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을 것인데, 오늘 들려주신 이 예수님의 비유가 들려주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요? 마지막 때가 있다. 지금은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은 하나님이 부재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가 있어서, 그때가 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그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가 이 시기에 어떻게 살았는가?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서 상을 내리시기도 하고,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마지막 때가 있다고 하는 교훈의 메시지를 오늘 이 비유의 말씀에서 들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때는 주인이 돌아와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상을 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 비유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 때가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행한 것에 따라 상을 내리시거나, 또한 벌을 내리시며, 우리가 수고한 대로 갚아줄 거라고 하는 그 교훈을 들으면서, “지금 이 시간 바로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영적인 교훈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쩌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가장 힘듭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썼지만,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잘했다고 칭찬해 줄, 그런 주인이 없어요.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조롱하고 비난하고 무시하는 그런 일들을 당하게 되면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죠.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은 악인이 계속해서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악인은 어떻게 악을 저지르나요? 조금씩 조금씩 테스트를 하는 거죠. “이만큼 잘못을 했는데, 문제가 생기나, 안 생기나?” 하고 봤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그 다음번에는 좀 더 큰 나쁜 짓을 해요. 좀 더 큰 나쁜 짓을 했는데, 문제가 생기나? 안 생기나? 봤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그 다음번엔 더 큰, 더 대담하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죠. 악인은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해서 더 나쁘고 더 큰 악한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비유를 보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이 그냥 이렇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것이고, 심판하시게 될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루를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이 메시지가 위로의 메시지가 될 것이고,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는 이 메시지가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이죠.
따라서 오늘 헌신예배를 하게 되는데 우리의 남전도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이 가져야 될 마음의 태도가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시간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재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 내게 주신 그 모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인데, 그런 청지기로서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고, 또 잘했도다 칭찬하시는 그 칭찬을 기대하며,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오늘 비유를 보면서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오늘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고, 또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하면서, 그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 있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에게 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인정하시는가? 더 크게 남기고 더 많이 남기고 더 엄청난 성과를 이룬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그게 우리 사람들의 늘 착각이죠. 이번에 파리 올림픽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몇 개 땄습니까? 전혀 관심이 없으시군요. 9개 땄습니까? 딴 것 같습니다. 아무튼 금메달을 따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듯이,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고, 금메달도 못 따고, 그냥 과녁에다 1점만 쏴버리면,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되는 그런 게, 우리 사람들의 마음인데, 하나님도 그렇게 많은 것을 남기는 것을 기뻐하실 거라고 우리가 생각하기가 쉬운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오시기 그전까지 마지막 때가 되기 전까지, 우리가 그 시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얼마나 신실하게 살았는가? 우리들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예물을 드린다고 한다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면, 선물을 받으니까, 기쁜데 선물의 가치 때문에 기쁜가요? 선물을 주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써줬다고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운가요? 선물이 고마운가요? 선물도 좋죠. 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엊그제요. 우리 주일학교 어린아이 하나가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하다가 밥 먹는데 줄을 서 있는데 그 뒤에 가서 저도 줄을 서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한 꼬마 아이가 저에게 어떤 종이 쪼가리를 하나 딱 주는 거예요. “목사님, 이 종이 좀 한번 드릴게요.” 그러는 거예요. 뭐니? 이게? 그랬더니, “목사님 혼자 있을 때 보세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그래서 내가 주일 학교에서 설교하는 것도 아니고, 주일 학교한테 내가 많은 시간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아이가 나한테 뭘 주는 걸까? 그런데 종이에다가 다 그 종이를 저한테 딱 줬어요. 그래서 그래 가지고 제 방에 와가지고, 그걸 싹 읽는데, 세상에 저를 그림을 그렸더라고요. 제 사진을 제가 페이스북에다 올려놨습니다. 저를 막 자기가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그 옆에다 편지를 쓴 거예요. “목사님, 제가 지난주에 아파가지고, 교회를 못 오게 돼서 너무나도 마음이 슬펐어요. 그런데 교회에 못 올 때, 동영상 유튜브로 목사님 설교하는 거 들으면서,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전해주시고, 또 이렇게 노래도 준비해 주시고, 매주 이렇게 말씀을 전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아이가 그러면서 그 종이를 준 거예요. 이걸 받고 얼마나 감사한지. 이게 돈이 비싸서 감사한 건가요? 그 마음을 보면서, 기쁘고 감사하고, 너무나도 좋아서, 정말 “매주 매주 설교하는 걸 준비를 더 잘해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는데요.
그 마음이 너무나도 기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들을 보면서, 그 다섯 달란트 때문에, “다섯 달란트가 더 생겼구나” “두 달란트가 더 생겼구나” 하면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셨을까요? 아니요.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거지 왕초는 좋아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거지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남긴 종의 그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신 것이죠. 이 종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에요? 이 종들의 마음, 주인이 없어도, 주인의 물건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서 성실하게 살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죠. 주인이 나에게 맡겼으니까, 주인이 나를 믿고 신뢰하고 맡겨준 이것을 가지고, 내가 주인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더, 주인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 마음으로, 밤잠 자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그 사역을 하게 되었을 때, 주인이 바라본 것은 돈이 얼마를 남겼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남기기 위해서 수고한, 주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종의 마음값 때문에 기뻐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칭찬할 때 뭐라고 칭찬하냐면,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구나” “두 달란트를 더 남겼구나” 그렇게 반응을 한 것이 아니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여기서 “충성된 종”이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신실한 종”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말 착하고 신실하게, 내가 없는데도 그렇게 신실하게 일한, 그 종을 보면서 칭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금메달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람들마다 주어진 능력과 달란트와 그리고 그 재능과 모든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해도 하나의 결과만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많은 결실을 가져올 사람이 있을 겁니다.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 따라 사람들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시는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죠.
우리는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점수를 냈는가? 거기에 비해서 내 점수가 얼마나 많은가? 자꾸만 그것을 비교하면서, 교만하기도 쉽고, 그것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지기도 쉽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과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신실함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어떤 달란트가 주어졌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다섯, 어떤 사람은 둘, 어떤 사람을 하나를 주었듯이 각각 다른 달란트를 주셨을 텐데, 그러나 그때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되든지, 결과가 얼마나 나오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신실하게 살아가다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몰라줄 수 있어요. 보통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안 알아주면 시험 드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죄송해요. 제가 그렇게 잘 못 알아줘서.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누가 목사님이 알아주는 게 우리의 소망이 아니에요. 우리의 소망은 교인들이 나를 보고 알아주는 게 그게 우리의 목적이 아니에요. 우리의 목적은 이 세상에 사람들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게 그게 목적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국에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잘했다 칭찬하시는 그 놀라운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 헌신 예배를 드리는 우리 이 남전도회 회원 한 사람 한 사람, 또 우리 모든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 때로는 아무런 하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그날이 있을 거라고 하는 믿음의 소망을 가지고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