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가난과 부 (잠 10:1-5)


달고 맛있는 떡 (잠 9:13-18) +++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 10:6-12)

성경에 나오는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문학적인 기법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을 가리켜서 <교차 대칭 구조>라고 하는, 그런 문학적인 기법이 있습니다. 그동안에 이 기법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주 등장하고 여러 번 등장했지만 그것을 설명할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설명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왔었는데요. 오늘은 교차 대칭 구조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면서, 오늘 잠언서의 말씀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도표를 한번 먼저 보여줬으면 좋겠는데요.

교차 대칭 구조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는 카이어즘(chiasm), 독일어는 키아스무스(chiasmus)라고 하는 것입니다. 키(chi)라고 하는 것이, 키(chi)라고 하는 것이 헬라어 알파벳으로 x자와 같은 것이죠. 그런데 문장을 배열하는 것이 마치 x자를 배열하는 것처럼, 문장을 배열한다고 해서 “카이어즘” 또는 독일어로는 “키아스무스”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것을 우리나라 말로는 “교차 대칭 구조”라고 하는 말로 번역할 수가 있겠습니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 몇 절이냐면, 오늘 읽은 말씀 잠언서 10장 2절과 3절의 말씀입니다. 먼저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이것이 주제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 주제를 이야기합니다.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두 번째 주제를 이야기한 다음에, 다시 첫 번째 주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에 금방 말했던 두 번째 주제를 약간 변형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니” 한 다음에, 다시 첫 번째 주제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악인의 소득은 물리치시느니라.” 그러니까 이 제가 x자를 쳐서 표기를 해놓았습니다마는, 그 구조가 a b b’ a’라고 하는 그런 구조로, 이렇게 이루어져 있는 문장을 가리켜서, “교차 대칭 구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치워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있는 기법만이 아니라, 서양의 언어에서는 아주 자주 등장하는 기법이고요. 히브리어를 비롯한 이스라엘 주변의 중동 지역의 언어들에서 자주 사용하는, 그런 표현법이 바로 교차 대칭 구조의 구조 기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설명드렸던 것처럼, 히브리 평행법이 여기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불의의 재물이 무익하다. 불의의 재물, 다시 말하자면 불의로 얻은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유익한 게 아니다고 말한 다음에, 그것에 반대되는 말인 악인의 소욕은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악인의 소유에 관해서 다시 또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지만, 그러나 그러나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고 해서 이 표현이 나오고 반복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면 2절 말씀에,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져내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공의가 죽음에서 건져낸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냥 생각하기로는, “아, 이것은 그냥 공의롭게 행하면, 의롭게 행하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오늘 이 교차 대칭 구조로 해서 이해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공의롭게 얻은 재물”을 의미하는 겁니다. 불의로 얻은 재물은 무익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공의롭게 정의롭게,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얻은 그런 재물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라고, 죽음에서 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얻는 과정 가운데서 의롭게 의로운 방법을 사용해서 얻어야,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옳은 길을 통해서 바른 길을 통해서 재물을 얻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땀의 수고로서 얻는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의로운 방법으로 재물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옳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도 우리가 재물을 얻을 수가 있겠는데요. 그것은 불의의 재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불의의 방법으로 재물을 얻는 것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자면 도둑질을 한다거나 사기를 친다거나 속임수를 쓴다거나 여러 가지 잘못된 방법으로 사악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무익하게 될 뿐이라고 오늘 성경 말씀 가운데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재물만 획득하기만 하면, 그러면 된다고 하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양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이 길로 가든 저 길로 가든 어느 길로 가든 그 아무 상관이 없다. 결국 도착하는 지점이 한양이기만 하다고 한다면, 모로 간다고 해도 괜찮은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가득 지배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재물을 얻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 방법이 공의로운 방법이든, 공의롭지 못한 방법이든, 어떠한 방법이든 그냥 재물만 얻을 수 있다면 좋다고 하는 그런 생각들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 있냐 하면, “꿩 잡는 것이 매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꿩만 잡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거면 된다는 것이죠. 꿩을 잡을 수만 있으면, 그게 매인 것이지, 꿩을 잡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고, 결과가 좋다고 한다면 그 과정이야 어땠든지, 결과가 이야기해 주는 것이지,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그런 결과 중심적인 생각들이 우리들에게 많이 팽배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생각을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고 배제하고 있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관점은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한 겁니다. 재물을 무슨 방법으로 얻었느냐가, 재물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성경은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인데,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오늘 잠언서 10장 2절 3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재물을 얻으면서 우리가 공의로운 방법으로, 의로운 방법을 통해서 재물을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불의의 방법으로 얻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이렇게 하는 것이 쉽냐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의의 방법으로 방법을 사용하면 돈을 버는 것이 쉬워요. 남을 속이고 눈 속임을 하고 하면은 정말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영상 같은 데 보면 동남아시아나 이런 데 가서 물건을 살려고 하면 좋은 이런 과일 같은 것이 막 쌓여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 얼마 달라고 그러면 열심히 담아서 저울 위에 딱 올려놓고, “여기 맞죠?” 하면서 더 줍니다 하면서 더 담는데, 그렇게 봉지를 담아가지고 그 봉지를 주느냐 하면, 살짝 숨겨버리고 다른 봉투를 꺼내 가지고 그 다른 봉투를 준단 말이에요. 그런 눈속임을 통해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그런 방법들을 통해서 돈을 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빠른 시간 안에 벌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의로운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면, 정의로운 방법 정직한 방법을 쓴다고 한다면 돈을 버는 것이 재물을 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곡차곡 차곡차곡 돈을 벌어야 되니까, 그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의로운 방법을 써서 돈을 벌려고 한다면, 재물을 얻으려고 한다면, 어느 세월에 우리가 이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내가 정직하게 행하다가는, 의로운 길로만 가다가는 결국은 아무런 돈도 벌지 못하고, 결국은 망하면 어떻게 되나라고 하는 그런 불안한 마음이 우리들 가운데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로운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길로 가게 되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생각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하늘에서 만나가 내립니다. 만나가 내릴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주셨던 명령이 무엇이냐면, “너희는 이 만나를 하루에 그날 먹을 분량만 거둬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내일은 하나님께서 다시 내려주실 것이고, 또 또 그다음 날은 또다시 내려줄 테니까, 많이 거두지 말고 오늘 먹을 양식만 구하라고, 그렇게 거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를 통해서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 이 만나가 우리들의 눈앞에 있는데, 내가 많이 거두면 많이 거둘 수 있는 그런 만나가 지금 널려져 있는데, 내일을 위해서 내가 예비해 놓지 말라고, 그랬다가 내일 만나가 안 내리면 어떡하나라고 하는 그런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람들은 만나를 이틀 치 3일 치 많이 거두어서 쟁여놓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일들을 하면서, 그래서 미래를 준비해 놓는 거죠. 왜 그렇습니까?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면 내 일은 굶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그런 불안한 생각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이틀 치 3일 치 만날을 거두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훈련시키시기 위해서, 남도록 거둔 모든 만나가 썩어서 냄새 나게 만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 떡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그게 바른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40년 동안 배우며 훈련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로운 방법으로 옳은 길을 통해서 재물을 얻게 된다고 한다면, 빨리 벌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도 더딘 것 같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불의한 방법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재물과 관련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이 믿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10장 3절 말씀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이 말씀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깊게 간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바로 의로운 방법으로 재물을 얻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재물을 얻는 자는 망할 것처럼 보여도 주리지 않게 하실 거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 5절 말씀도 교차 대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도표를 한번 보면 좋겠는데요. 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구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까지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여름에 거두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부지런한 사람인 것이죠. 추수 때까지 자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인 것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교차 구조로, 교차 대칭 구조로 4절과 5절 말씀에서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원리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게으른 자는 어떻게 되는가? 가난하게 된다는 겁니다. (치워져도 됩니다.) 부지런한 자는 어떻게 되는가? 부자가 부하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여름에 거두는 자, 열심히 일을 해서 땀을 흘려가면서, 여름이라고 하는 그런 계절은 어떤 계절입니까? 너무나도 더운 날이고 힘든 날입니다. 그런데 게으르지 아니하고 열심히 일을 하면서 거두는 자는 결국 부하게 될 것이지만, 추수 때까지 기다리면서 차일피 미루고 게으르게 자는 자는 결국 가난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어쩌면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을 여기서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원리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엇이죠? 열심히 일해야 된다. 열심히 일해야 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교훈이 교훈에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쉬거나, 혹은 잠을 자거나, 혹은 휴가를 가거나 하는 것이 나쁘거나 무의미하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데요.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이냐면, 무조건 일만 많이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의 상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이냐 하면, 일하고 또 적당할 때 쉬고, 또 일하고 또 쉬고 하는, 이 일과 쉼이 균형 있게 맞추어져야 그게 성경적으로 옳은 모습이죠. 6일간 일을 했다고 한다면 하루는 쉬어야 하는 것이고, 하루 종일 낮에 일했다고 한다면, 저녁 때는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마치 워크홀릭(workaholic)처럼 하루 종일 일하고 쉬지 않고 일하고 365일 쉬는 날 없이 계속 일만 해서 열심히 노력해가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그게 가장 바람직한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잠도 안 자고 자신의 육체를 혹사해 가면서 그렇게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서 그렇게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되느냐? 그게 절대 꼭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성경적인 교훈을 살펴볼 때, 이 두 가지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서에서 부지런하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일해야 되는 그 시간만큼은 아주 부지런하게 일을 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이지, 절대 쉬어서는 안 된다, 쉼이 없어야 된다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쉬라고 말씀해 주고 있고, 특별히 십계명 가운데서 제4계명은 너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고 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쉼이 없이 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재물이 우상이 되어 버렸을 때 사람들은 쉼을 중단해 버립니다. 열심히 일을 하니까 돈이 많이 벌리거든요.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일을 많이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돈이 우상이 되고 재물이 우상이 되면, 일을 많이 하고 쉬지 않으면서 그래서 많은 돈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벌써 우리가 우리에게 재물이 우상이 되었다고 하는 증거인 것이죠. 따라서 성경은 일하면서도 동시에 쉬라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균형을 잡힌 사람이어야 그게 성경적으로 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쉬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그저 쉬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크리스천들 가운데서 그렇게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나타날 때도 있는데요.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고 다 하는 것이니까, 굳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하나님께서 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하는데, 내가 뭐 일할 필요 있겠는가?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서 보내주시는 거 아니겠는가? 그저 나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면서 기도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건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손을 놓은 상태에서 그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만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손을 주셨어요. 발도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도 주고 발도 주고 생각할 수 있는 머리도 주고, 이미 우리가 일을 해서 우리가 다 먹고 모든 것을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재능들을 하나님께서 다 주셨는데, 이미 그러한 은사를 우리들에게 다 주셨는데, 그것을 전혀 활용하지 않으면서, 저 감나무에서 감히 내 입에 떨어지기를 바라듯이 입만 벌리고 있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손과 발을 주시고 머리를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것을 망각한 행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초대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초대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는 그저 일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먹여주실 것을 기대했고, 또 교회가 자기를 도와줄 것을 기대하면서 교회의 도움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럴 때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서부터 12절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교훈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이를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초대교회 안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저 교회가 사랑으로 돌보아 줄 것만을 기대하면서, 전혀 일하지 않고 그저 내가 기도만 하기만 하면 그리고 형제들이 나를 도와주면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 그거 괜찮다”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주 안에서 권하기를 일하라. 수고해서 일해서 자기 손으로 흘린 노력과 땀을 통해서 먹을 것을 얻으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종종 우리 어떤 신앙인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슨 일입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당했다고 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일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내가 땀을 흘려서 수고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야 하는데, 종종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어떤 사람들이 있냐면, 나는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하면서 내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지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주님 돈을 주세요. “주님,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원에 가서 막 기도하고 그래서, 어쩌다 보면 또 누가 또 도와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것이 바른 자세가 아니라 오늘 잠언서 10장에서 교훈하고 있는 것처럼 부지런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건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수고하고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혜롭지 못해서 오늘 말씀에 따라 순종하기보다는 의로운 방법을 통해서 소득을 얻기보다는 불의한 방법을 통해서 소득을 얻게 되는 방법으로 나갈 때가 많습니다. 또한 어떤 때는 우리가 게으른 모습으로 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죠.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서 주님 앞에 회개하고 또한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주님,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부지런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뜻에 따라 건강하게, 또한 주님의 뜻에 따라 옳은 방법으로 재물들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내 마음이 불안해서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망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는, 어 혹시 내가 굶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그런 위험한 생각이 들 때, 그러나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자를 의롭게 일하는 자를 줄이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씀을 믿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70 total views,  2 views toda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