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통곡한 한나(삼상 1:9-10)

하나님 앞에서 통곡한 한나(삼상 1:9-10)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는 마음이 괴로울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통곡하였습니다(1:10). 괴로울 때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이 괴로울 때,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술을 마시며 그 괴로움을 잊든지, 마약을 찾든지,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술이나 마약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기에,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잊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한상숙 시인은 “술의 예찬”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술잔의 거품은/ 너와 내가 털어놓은/ 슬픔, 괴로움, 우울함 등/ 기억 못할 이야기로 횡설수설 담아져/ 잊기 위한 망각으로 한 잔/ 해는 또 뜰거란 희망으로 한 잔/ 붉어진 얼굴만큼/ 가슴 속엔 하얀 웃음 떠올려야 할거라며/ 허탈한 웃음 속에/ 작은 희망 하나 건져 올리고/ 긴 시간 불면으로 쓰린 속 움켜지었나보다.// 내가 술을 품었는지/ 술이 나를 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온 몸 구석구석 혈관을/ 다독거리며 마음을 감싸주니/ 외로움엔 너만한 친구/ 다 찾아보아도 없더라.

하지만 술이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술은 잠시 문제를 망각하게 해줄 수 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고통을 위해 술로 도피하는 것은 마치 사냥꾼에 쫓겨 도망가는 꿩처럼 어리석을 뿐입니다. 꿩은 사냥꾼을 피하여 도망가다가 조그마한 구멍을 발견하면, 그 구멍에 머리를 처박습니다. 사냥꾼이 보이지 않으니 안심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뚱이는 숨기지 못하기에, 사냥꾼은 쉽게 그 꿩을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술이란 그런 것입니다. 망각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술이라는 구멍에 우리의 머리를 넣고 망각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도하는 모든 시도들은 술과 같은 것들입니다. 잠시 우리의 문제를 잊게 만들기도 하고, 잠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으나 진정으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해결자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축제의 절기가 되어 하나님의 법궤가 있던 실로(Siloh)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나아간 것은 한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놀라운 해답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이 실제적으로 예배의 현장에 있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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