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전라북도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예배를 그런대로 잘 드려왔다. 그런대로 전라북도는 코로나 청정지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국의 교회들이 코로나 상황 속에서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지만, 그래도 전라북도의 교회들만큼은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 방역 지침에 따라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좌석 수의 30%까지 줄어들었고, 급기야 몇 주 전부터 20%까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그 범위 안에서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지만 말이다.
영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 해도 사실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의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에서 공부를 해도 되지만 굳이 도서관에 가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디서든 예배가 가능하겠지만, 성도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을 대치하긴 어렵다. 그래서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꾸준히 예배를 드려올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었다. 그런데, 이제 종교시설에 대하여 전국적인 방역 2.5단계가 발령됨에 따라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한 번에 모여서 드릴 수 있는 인원은 이제 20명 이내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정부가 바이러스를 빌미로 기독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그리고 방역을 위한 법들은 교회 폐쇄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빌미를 방역당국에서 제공했다. 일반 사업체의 경우 확진자가 다녀가면, 일시적인 폐쇄를 할 뿐이다. 하지만 교회의 경우 2주간 폐쇄해버리는 것은 이상하다. 다른 곳에서는 다수의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로 삼지 않으면서, 교회에서의 식사는 문제로 삼고 금지하는 것도 이상하다. 사실 어느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나왔다는 것은 방역수칙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데도, 마치 교회라는 건물 자체가 위험한 것인 양 교회 전체에 제동을 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방역당국이 내놓은 방역수칙이라는 것은 과도하게 교회의 활동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방역수칙, 다시 말하면 지키기 어려운 수칙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어긴 것에 대하여 언론은 마녀사냥 하듯 보도를 하고 있다. 사실 확진자는 비난의 대상이어서는 안 되고, 긍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모든 화풀이를 확진자들을 향해서 해내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라야 한다. 분명 방역지침은 잘못된 것이고 방역에 효과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확진자들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방역당국을 욕할 것도 아니고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라야 한다. 이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방역, 치안, 전쟁에서의 시민 보호 등등 시민을 위한 행정을 하도록 권세를 위임받았기 때문이다(롬 13:1-7). 전염병이 도는 상황에서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예배로 모이는 것을 국가가 제한할 수도 있다. 만일 늘 교회에 적대적이어서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한다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애써야 하겠지만, 전염병이 도는 위급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예배의 제한은 받아들여야 한다. 청교도였던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는 위정자가 금한다면, 주일에 교회의 모임을 멈출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전염병이나 화재나 전쟁과 같은 특별한 이유로 금할 경우에는 그에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답하였다. 꼬마 아이에게 주사를 놓을 때에는 손을 움직이지 않게 꽉 잡고서 주사를 놓는다. 그때 꼬마아이는 왜 나의 자유를 억압하느냐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유의 억압이 아니라 그 아이를 치료하기 위한 긍휼의 의술을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예배가 제한되는 조치를 당하는 것은 기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를 교회 폐쇄법이니 어쩌니 하면서 반발하고 방역당국에 협력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방역당국은 우리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전염병을 잡아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로는 그 지침이라는 게 납득이 안 될 때가 너무 많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