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조니 소말리라고 하는 유튜버를 아십니까? 모르신다고 한다면 굳이 찾아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찾아보게 된다고 한다면, 스트레스만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지난 주간에 아주 난리가 났던 사람인데요.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그런 유튜버라고 합니다. 기행적인 행동을 하면서, 그래서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 그런 부작용들이 참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그렇게 여러 나라에 돌아다니면서, 아주 모욕적인 말을 하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기행적인 행동을 하면서 방송을 하는 유튜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왔어요. 우리나라에 와서,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긁어놓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분노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뉴스를 듣게 됐습니다. 소녀상 앞에 가서 아주 참 음란한 듯한 그런 행동을 취한다든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못된 짓을 하는, 그런 사람이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어떻게 응징을 해야 될까 하면서, 응징하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어떤 유튜버가 그 사람을 찾아가서 폭행을 해버리고, 차라리 내가 경찰의 수사를 받더라도, 그렇게 응징을 하겠다 하면서,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런 유튜버를 향해서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 하는 이 사람을 단단히 벌을 받게 해야 된다고 하는 여론이 지난주에 한참 들끓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쁜 짓을 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처벌해야 된다는 게, 그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그런 나쁜 짓을 계속하도록 방치해 두는 것이 좋을까요? 못하게 하고, 응징을 해야 맞는 것일까요? 어느 쪽일까요? 아마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아, 그런 사람들은 좀 어떻게 좀 혼을 좀 내줬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좀 정말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되나요? 어떤 사람이 정말 마음 따뜻하게,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다든지, 어떤 가게 하는 사람이 배고픈 소녀에게, 어린아이들에게 공짜로 짜장면을 대접하고, 아니면 피자를 대접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해요? 돈쭐을 좀 내주자. 그 가게에 가서 주문해 주고,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보상을 해줄까? 그렇게 사람들의 여론들이,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응징을 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정말 착하고 선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보상해 주고 싶은 마음들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심성 가운데, 하나님의 품성이 닮아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이 닮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러면 혼내줘야 되고 싶은 그런 마음, 어떻게 하면 정의를 이룰까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있는 것이죠.
만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활개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괜찮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한 것이죠. 어쩌면 우리나라는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만큼 범죄가 없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세계에 보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중남미 같은 그런 곳에 가보면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겁니다. 경찰이 있으나 마나인 거예요. 오히려 그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갱단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자릿세를 뜯어내고, 못 살게 구는 그런 모습들이 많고, 또 도둑질하는 것과 폭력과 이런 것들이 난무해서, 그런 나라에서는 정말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힘들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님 가운데 한 분인 황병철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나라가 엘살바도르라고 하는 나라인데요. 예전에 한번 오셔서, 그 나라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 나라는 아주 참 치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여서, 정말 안전하지 못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요즘 아주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요. 부켈레라고 하는 젊은 대통령이 당선이 됐는데, 그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 사람은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갱단을 소탕해야 되겠다 해서, 수많은 경찰력을 동원해서, 갱단들을 다 잡아 가두고, 갱단을 소탕하기 위해서 마을 전체를 포위하면서, 장갑차를 동원해서, 다 잡아들여서, 몇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그렇게 감옥 속에 집어넣은 결과 나라가 안전해졌다고 그래요. 정말 좋은 나라가 됐다고 그래요. 이제는 살기 좋은 나라, 이제는 안전한 나라, 이제는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있는 그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그런 뉴스가 들리고, 그래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를 재선 하게 됐는데, 사실 그 나라는 연임이 불가능한 나라인데, 재선이 됐어요. 편법을 써가지고. 그래서 그 사람이 80%가 넘는 어마어마한 득표율을 얻으면서 재선 하게 됐는데, 왜 이렇게 됐는가? 사람들이 너무나도 열광하는 겁니다. 악한 사람들을 응징하는 그 대통령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으면서, 그래서 “그 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선을 행한 사람이 있으면 보상을 받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응징을 당하는, 그래서 정의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죠.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을 읽다 보면, 우리가 지난 시간에 홍수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요. 우리가 이 홍수의 이야기를 읽을 때 기억해야 될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가 그냥 막연히 하나님께서 홍수를 동원하셔서,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류들을 다 죽게 만드셨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쓸어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질문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다 쓸어버리지? 모든 사람들을 왜 죽여버리지? 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이렇게 무참히 멸절시키고 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냥 아무렇게나, 이 세상을 쓸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의 악이 너무나도 많고 많아서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또 참다가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정말 오랫동안 참다가, 어마어마하게 참다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홍수의 이야기인 것이죠. 그것을 먼저 기억했으면 좋겠고요.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9장의 말씀은 바로 그 홍수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홍수로 인해서 온 인류가 다 사라져 버렸고, 이제 남아있는 가정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만 살아남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노아의 가족들을 향해서 무슨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노아의 가족을 향해서 해주신 말씀이, 창세기 9장 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아, 정말 소수만 남았는데, 그 소수만 남은 노아의 가족을 향해서, 하나님께 해주신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이 말씀은 예전에 한 번 하신 적이 있죠? 기억이 안 납니까? 한 번 하신 적이 있어요. 언제 했죠? 천지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 아담과 하와를 향해서 하셨던 말씀이 이런 말씀이에요. 창세기 1장 28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다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이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온 세상을 정복하는 그러한 놀라운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이 진행되다가 망가져버렸단 말이에요. 그 사명이 잘 진행되다가 죄를 지어서 이 세상이 망가져버렸단 말이죠.
그런데 그 사명을 다시 노아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어쩌면 재창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셨던 그 원 창조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진 다음에, 이제 노아와 그 가족들을 통해서, 제2의 창조, 재창조를 하고 있는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노아의 가족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해 주셨으니까, 노아와 그 가족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대로 하면 되는 거죠. 생육하고 번성하면 되는 겁니다. 잘 살면 되는 겁니다. 예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서, 아담과 하와가 실패했던 그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또 노아 시대 때 사람들이 죄악을 저지름으로 말미암아 멸망당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잘 살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잘 살면 되는데, 노아와 그 가족들의 마음 가운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한 가지 걱정거리가 뭘까요? 그것은 그런데 우리가 살다가 “하나님께서 또 홍수로 또 멸망시키면 어떡하지?”라고 하는 그런 걱정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었을 겁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인가? 늘 넘어지는 사람들이잖아요? 늘 실패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늘 죄를 짓는 사람들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가운데, 또 죄를 짓고, 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악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또 이 세상을 심판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는 걱정 그런 염려가 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었을 겁니다.
그런 이 노아와 그의 가정을 향해서 해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약속의 말씀을 하나 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오늘 읽은 9장 11절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번 크게 물난리를 겪었던 노아와 그 가정을 향해서 약속해 주시는 말씀이, 걱정하지 마라. 이제는 더 이상 홍수가 없을 거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이상하죠? 홍수가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홍수가 계속 있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러니까 전혀 홍수라고 하는 것이 없을 거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다시 말하자면 모든 인류를 다 멸망시키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그런 재앙으로서의 홍수, 인류를 완전히 멸망시킬 그런 엄청난 홍수로 모든 인류를 다 쓸어버리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이 다시 잊지 아니할 거라고 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물론 약간의 홍수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홍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매년 우리는 홍수의 이야기를 듣는데요. 금년에도 얼마나 많은 홍수가 있었습니까? 그래도 금년에는 우리나라에 큰 홍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구상에 여러 가지 홍수들이 닥쳤습니다. 중국에서 홍수가 내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 스페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홍수로 인해서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 그런 안타까운 뉴스들을 듣습니다. 그런 홍수 자체가 없을 거라고 하신 그런 의미의 말씀이 아니라, 물을 통해서 온 인류를 쓸어버리는 그런 진노의 심판 재앙의 심판이 이제는 다시없을 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다시는 이런 진노의 심판이 없을 거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러니까 우리 사람들이 더 이상 죄를 안 짓게 된다고 하는 말일까요? 더 이상 진노를 받을 만큼, 악한 일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이제는 정신 차리고 잘 살아서, 그래서 더 이상 진노의 심판을 내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정반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8장 2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노아가 드린 제사죠? 노아가 드린 제사에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실 거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시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것을 통해서 온 인류를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인데요. 왜냐하면 이제는 사람들이 깨끗하기 때문에 선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니까 너무나도 악한 거예요. 계속해서 악을 저지르는 거예요. 분명히 또 악을 저지를 게 분명해요. 사람들의 마음이 죄성이 가득 차서 늘 악한 일을 행하는 모습들이 계속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악한 모습을 보고 또 멸망시키고 또 악한 모습을 보고 또 멸망시키면 어떻게 돼요? 인류가 살아남을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는가? 그냥 불쌍히 여기셔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겠다. 악을 행하지만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냥 놔두겠다고 하는 것이, 오늘 이 노아를 향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죠.
이제는 괜찮아졌죠? 괜찮아졌습니까? 괜찮아지지 않았습니까? 괜찮아지지 않았어요.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악은 징벌하는 것이 마땅하고, 선은 보상해 주는 것이 마땅한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결정한 게 무엇이냐 하면,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제는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러면 뭐가 문제가 됩니까? 정의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악을 행하고 나쁜 짓을 하는데도,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면 정의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근데 그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을 심판해 버리면, 그러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이죠. 이게 우리들의 딜레마입니다. 우리의 딜레마는 무엇입니까? 정의와 자비 중에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이걸 선택하면, 정의를 선택하면, 자비가 문제가 되고, 자비를 선택하면 정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 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만일 우리가 죄를 아무런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면 문제 자체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미 엎어져 버렸어요. 이미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이미 죄악을 저지르고 있어요. 이미 악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악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정의롭게 하자니 불쌍하고, 불쌍해서 자비롭게 그들을 살려두자고 하자니, 정의가 무너지게 되는, 그런 딜레마 이 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라고 하면 정의를 선택하겠습니까? 자비를 선택하겠습니까? 어느 걸 선택하고 싶어요? 나한테는 자비, 다른 사람한테는 정의?
하나님께서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우리 인생들을 보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약하고,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우리 인생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선택이 무엇이냐 하면, 정의를 통해서 이 세상을 파멸시키는 선택이 아니라, 이들을 살려두시겠다고 하는, 자비의 선택을 하게 되신 것이죠. 그러면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가?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나쁜 사회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 정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을 하나님께서 또 하셨어요. 내가 이 세상을 물로 다시는 심판하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내가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무지개를 보여주신 거예요. 이때 무지개가 생겼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시는 심판하시고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다고 하는 그것을 기억나게 하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인데요. 무지개 하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무지개를 하나님께서는 왜 기억하라고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의 그 용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무지개라고 하는 것은 활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어로 “케쉐트”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요. 그게 무지개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케쉐트”라고 하는 이 히브리어 단어는 사실 무지개라고 하는 말이기 이전에, 활이라고 하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활을 하늘에 두셨다는 거, 활을 하나님께서 하늘에 두셨는데, 그런데 그 활을 어떻게 두셨는가? 어디를 향해서 두고 있어요? 하늘을 향해서 활을 놓으셨어요. 인생들이 죄악을 저지르고 악을 행했을 때, 그 인생들을 향하여 심판하는 화살, 그래서 그 화살을 활을 당겨서, 그 악을 행한 사람들을 죽이는 활이 아니라, 그 활을 거꾸로 하늘을 향해서 놓으신 거예요. 하늘을 향해서 그 활을 놓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사람들을 죽이지 아니하고, 대신 어떻게 하시겠다? 저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 자신을 향한 심판의 그 응징을 하시겠다고 하는 표시로, 무지개를 보여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사람이 악을 행했을 때 이 세상 사람들을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그것은 옳지 않은 거예요. 정의롭지 못한 거예요. 응징해야만 당연한 거죠. 응징을 해야 정의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응징을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죄악의 짐을 짊어지게 하시고, 우리를 살려주시는 선택을 해 주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가 더 많은 사람들이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그리고 용서할 줄 모르고, 우리는 늘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에요. 이 앞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하는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제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제가 여러분들보다 더 좀 더 거룩하거나, 좀 더 높은 경지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말의 실수가 많고 행동의 실수가 많고, 여러 가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우리 인간들의 모습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 자신들이 아무리 도를 닦는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연약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 우리의 행한 대로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셔도 우리가 할 말이 없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제는 심판하지 아니하시겠다 말씀하시며, 너희의 죄 그 악한 모습을 보고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그 심판을 하늘을 향해서 놓으시고, 우리가 짊어져야 될 죄의 무거운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지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건져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모든 약함을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행한 아주 정당하고 의롭고 선한 행동의 결과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악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모습들을 보여서,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셔도 아무 할 말 없는 죄인들이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참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나를 향해서 돌을 던져도,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서, 용서해 주고, 저 사람이 나를 향해서 악한 일을 해도, 나를 용서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사랑으로 대하고, 매 순간순간 우리가 받았던 그 은혜를 되돌려주며, 사랑을 베풀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이고, 그 은혜를 기억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갚으면서 이웃들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