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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가지고 부서진 집을 보다

지금 나는 잠시 셋방살이 중이다. 예수비전교회에 부임하고 그동안 살았던 아파트 사택을 처분하고 조그마한 주택을 새롭게 구입했는데, 새 사택의 인테리어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잠시 셋방살이 중이다. 상당히 많은 세간살이를 조그마한 투룸 월세방에 쳐넣으니, 집안에 온갖 짐이 쌓여 있어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한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당히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짜증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시만 참으면 새롭게 마련된 사택으로 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마련한 사택은 인테리어 업자들이 와서 다 부셔놓았다. 집을 구입할 때에는 그런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뼈대만 남았다. 벽지도 뜯고 가벽도 부수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절망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잠시 뒤에는 멋지게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사택으로 입주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옛것은 부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 옛것을 부수지 않으면 언제나 과거에만 살 것이다. 유태계 프랑스인으로 알제리에서 태어난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해체주의를 말했다.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보수(補修, repair)한다. 그렇게 보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꾸지 않고 보수(保守, conserve)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언제나 낡은 것일 뿐이다. 차량을 고치고 또 고치는 이유는 새 차를 사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치고 고친 게, 새로 신차를 구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황당한 적이 있다. 정작 더 많은 돈을 들였지만, 언제나 헌 차만 탄 셈이었다. 차라리 아예 포기하고 새 차를 구입했더라면 돈도 덜 들고 새 차를 누릴 수도 있었는데, 어설픈 자린고비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나 사실 어리석은 것뿐이다. 때론 버려야 한다. 때론 부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얻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6-17)

종종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인생을 부서뜨리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스럽다.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마치 애착인형이 없어지면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부서뜨리실 수 있다. 그럴 때 당황하지 말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최고의 인생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하나님께서는 쓰레기와 같고 실패자와 같은 나를 사용하여 어떤 걸작품을 만들어나가실까 기대해야 한다.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고 뜨거운 태양과 밤에는 추운 날씨를 견디며 살아야 했지만, 잠시 뒤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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