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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피하라(시 118:5-13)


옛날 6.25 때 전쟁을 경험하거나, 왜정시대 때 세계대전을 경험하셨던 분들은 아마도 적의 공격이 있을 때, 방공호로 대피했던 그런 경험들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민방공 훈련이라고 해서 아마 한 달에 한 번씩 했던 것 같은데요. 대피 훈련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렌이 울리면, 피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그런 훈련들을 하곤 했었는데요. 요즘도 합니까? 학교에서 어쩌면 필요한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학교를 보니까, 매 학기마다 화재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지 대피 훈련하는 것이 매 학기마다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연기가 자욱했을 때 자세를 낮추어서 엎드려서, 그렇게 질서 있게 대피하는 훈련들을 매 학기마다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수건으로 입과 코를 보호하면서 피하는 훈련들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훈련하는 것을 통해서, 정말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대피하는 훈련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예기치 않는 환란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그러한 훈련,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안전하게 피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 환란 위험한 상황들은 반드시 오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때에 잘 대피하는 것, 잘 피하는 것 어쩌면 중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시편 118편 말씀 가운데서 8절과 9절 말씀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피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이죠. 사람을 신뢰하거나, 아니면 고관들을 의지하거나, 그 어떤 힘 있는 사람들에게 연줄을 대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피하는 게,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 피하는 게, 그 어떤 피난의 방법보다 가장 좋은 것이라고, 오늘 시편 118편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라고 하는 원어는 최상급 표현이 없어요. 그래서 최상급적인 표현을 하려고 하면, 항상 비교급을 사용해서 표현하려는 그런 경향들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오늘 시편 118편 8절과 9절에서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고관들을 의지하는 것보다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표현하는 이 표현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하나님께 피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그런 표현 방법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들, 재난과 같은 상황들을 종종 만나게 되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최근에 참 유명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그런 뉴스를 지난 주간에 많이 들었습니다. 개통령이라고 하나요? 강형욱 씨에 대한 비리 제보가 있어서, 아주 크게 한동안 문제가 됐는데, 그에 대한 해명 영상이 나오고, 또 그에 대한 반박이 나오면서, 참 한순간에 유명했던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유명한 가수라고 하는데요.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김호중 씨라고 하는 그런 가수가 음주운전을 한 후에 뺑소니를 했다가,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도 뉴스를 통해서 듣게 됐습니다. 유명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그런 상황 가운데서 도대체 그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그리고 그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잘못을 했든, 자신이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든, 그 상황 가운데서 그것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피할 곳을 찾게 되어 있는데요. 거짓말로 무마하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잘못된 방법으로 그러한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권력의 힘을 의지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거나, 거짓말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더 큰 어려움,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오늘 읽은 시편 118편에서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을 때, 내가 잘못을 했든,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어려움을 겪게 되었든, 그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간에, 가장 좋은 해결책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더 낫고,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피할 수 있을 것인가요? 하나님께 피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영이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래서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 하나님에게 어떻게 피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일까요? 하나님께 피한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하나님께 피한다고 하는 그 표현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늘 살펴보면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피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영적인 하나님에게 어떻게 피해 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숨어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이 그게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시편 118편 오늘 읽은 말씀 5절과 6절 말씀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편 118편에서 이 시편 기자가 하고 있는 고백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고통 가운데 있었을 때, 정말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을 때, 정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그런 재앙이 내게 닥치게 되었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거죠.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고, 나를 깊은 웅덩이에서 건져내어 광활한 곳으로 이 세상으로 편 넓은 곳으로 나를 구원해 내셨다”라고 하는 고백을 하고 있으면서, 그 말을 한 다음에 했던 말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피하는 게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낫고, 여호와께 피하는 게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피한다고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피하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환란 가운데 있을 때,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곤란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그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생생한 예가 있다고 한다면 성경 전반에 걸쳐서 이런 생생한 예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신 이야기가 성경 전체에 쫙 널리 펼쳐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를 살펴본다고 한다면 히스기야의 예를 들 수가 있을 것이죠.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고 있던 그 시대에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죠. 내가 너희 나라를 쳐들어가겠다고 말하면서, 여러 가지 겁박을 하는 겁니다. 편지를 보내면서 내가 너희를 쳐들어갈 텐데,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를 당해낼 신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제 너희들이 항복해라 된다고 말하면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했는가? 그러한 선전포고를 듣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게 된 것이죠. 그 이야기가 열왕기하 19장 15절에서부터 19절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천사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오고 있는 이런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 히스기야 왕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 것이죠.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지금 앗수르라고 하는 강력한 나라가 그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그 어떤 나라도 이 앗수르를 대적해서 승리한 나라가 없었는데, 그 나라가 지금 우리나라를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밤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죽이고, 그래서 결국 앗수르 군대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하나님께 피했더니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아주 생생한 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깊은 웅덩이에 빠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 앞에 피해야 하는데,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 피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피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시편 34편 7절과 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지금 7절에서는 주를 경외하는 자를 건져주셨다고 표현하면서, 8절에서는 그에게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편에 평행법적인 구조로 본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건져주셨다고 말하고, 동시에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이 평행적으로 표현된 이 말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냐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게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자이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피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인데, 어떤 복을 누리는가?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그런 복을 누린다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피하는가? 하나님께 피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첫 번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피해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이 두려움입니다. 무서워하는 것이죠.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두려워할 일이 없어요. 떵떵거릴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을 다 꿰뚫어 보시는 그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어전회의를 목격하면서, “화로다. 나여 죽게 되었도다.” 하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었소이다.” 주님 앞에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주님이 정말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 무엇인가 두려움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직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두려워하는 마음 가운데서, 우리는 악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거짓말할 수 없고, 하나님의 무서움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을 미워할 수 없고, 하나님의 그 두려움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는 불성실하게 살아갈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하나님 앞에 피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역대하 7장 14절에서부터 15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가는 것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인데요. 그냥 기도만 하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며 겸손하며, 하나님의 그 두려움을 깨닫고 우리들의 죄악에서부터 돌이키는 선택을 해야, 하나님 앞에 피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여전히 악을 행하면서,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여전히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갔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죠. 내가 기도는 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죄악 가운데 머물면서, 악한 길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피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하는 얘기요. 하나님 앞에 피하는 사람은 누군가? 하나님의 그 두려움을 알고, 죄악에서부터 돌이키고, 우리들의 그 완악한 마음들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하며, 이제는 주님이 무서운 줄 알아, 거룩한 길로 걸어가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악한 일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피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 피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께 피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피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피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시편 71편 1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당하게 하지 마소서.” 내가 주님께 피하니까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요. 같은 시편 71편 6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사오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다.” 하나님 앞에 피한다고 하면서, 그 이후에 했던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의 피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송하는 사람이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5편 11절 말씀에서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다.” 주께 피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역시 피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평행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누군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그 사람이 하나님께 피한 사람이지, 그런 모습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피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 사랑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을 하고 있는 걸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피했다고 한다면, 우리가 속한 그 대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우리 눈은 우리나라를 사랑합니다. 왜 사랑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우리나라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거죠. 우리 애국심이 언제 막 생겨요? 축구 경기할 때 우리나라 편 사람을 우리나라를 응원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 선수가 잘하는 것을 응원해요. 왜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왜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합니까? 그게 우리가 속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나라에 내가 속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이 세상 사탄 마귀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피해서 하나님의 편으로 가버렸다고 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하나님께 피해야 하는 것인데, 피함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는 것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을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주님을 주님께 피하고 주님께서 도와주시는 그 도움의 능력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이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종종 왜곡된 신앙을 가지고 있고, 극단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 피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수단들을 다 버려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그게) 진짜 믿음 같고, 그렇게 말하는 게, 진짜 순수한 믿음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해야 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돈을 버려버려야 되고, 이 세상에 어떤 의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다 내어버려야 한다고 하는 이 말이 어쩌면 가장 신앙적인 표현으로 그렇게 느껴지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그러한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예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드온의 300 용사와 같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거죠. 숫자가 너무 많다.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되니까, 군사들을 자꾸만 돌려보내라. 돌려보내라 해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 군사들을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겨놓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세상의 것들을 다 버리고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 세상의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기도한다고 하면 약을 갖다 내버리십시오. 병원에 가서 치료받지 말고 중단하십시오. 오로지 하나님 앞에만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일하지 말고, 그렇게 돈 벌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어쩌면 진짜 믿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온전하게 바라보는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그것은 제대로 된 건전한 신앙이 아니라, 왜곡되고 잘못된 그리고 단편적인 그런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피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내버려야만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는 점을 우리가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을 때 사탄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는데요. 그때 시험했던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 겁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너를 받쳐주어서 천사들을 동원해서 너를 보호해 줄 테니까,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해 줄 거라고 유혹하면서 뛰어내리라고 한 것이죠. 예수님께서 그 사탄의 시험을 거부하셨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시험을 물리친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잘못되고 왜곡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마치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처럼 시험하는 겁니다. 약을 내버리십시오. 병원에 가지 마십시오. 마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듯이, 여러분의 삶을 그냥 아무렇게나 내던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거라고 그렇게 유혹하면서, 그게 진짜 신앙인 것인 양 사탄의 속임수와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들을 현혹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죠.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 피한다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들을 위해서 내어주신 그 주님께서 사랑의 손길로 은혜로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해 주심을 바라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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