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말씀을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로마서로 설교를 몇 번 했을까 세어봤더니,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혹시 몇 번 정도 하신 것으로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이 48번째입니다. 굉장히 여러 번 했는데요. 많이 견뎌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이 로마서의 말씀을 한번 정리를 한번 하면 좋겠다 생각이 드는데요. 도표를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펴봤는가?
1장에서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면, 우리의 행위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공로로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서, 우리가 선하게 살아서, 그래서 의롭게 될 수가 없고, 아무리 해봤자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게, 1장에서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당장 질문이 떠오르죠. 그럼 우리가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의 행위 때문에, 우리의 공로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하는 질문이 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12장 1절 2절에서는,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영적인 산 재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순종하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12장 3절에서부터 8절 말씀까지 살펴봤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할 수 있을까? 모든 좋은 일들을 우리가 다 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그 질문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 우리 사람들에게 맡겨진 각각의 분량이 있다. 사람들에게 맡겨진 그 은사가 있다. 주어진 분량이 있는데, 거기에 따라서 하면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걸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것만 찾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준 분량에 따라서, 은사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하는 것까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기억이 조금 나시려고 합니까? 네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분량대로, 은사대로 행해야 할 텐데,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신실하게 행해야 한다. 부지런하게 해야 한다. 또한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지난번에 했던 그 말씀의 연장선 가운데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오늘 우리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 12장 9절에서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요약 갈 수 있을까요? 사랑을 하면서 살아라. 참된 사랑을 하면서 살라. 진실된 사랑, 거짓이 없는 참사랑을 하면서 살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행할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어야 되는가? 거짓 사랑이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참된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에는 참된 사랑이 있고, 가짜 사랑, 거짓 사랑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돈도 진짜 지폐가 있는가 하면, 그 지폐를 흉내 낸 위조지폐가 있는 것처럼, 사랑에도 진짜 사랑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흉내만 낸 가짜 사랑, 거짓 사랑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행할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참된 사랑을 해라. 진짜 사랑을 해라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사랑을 하면서 그 사랑의 분야, 사랑을 어디에서 사랑해야 될 것인가? 두 가지 분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로마서 12장 10절에서부터 1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먼저는 형제를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중하기를 먼저 존중해 주면서 이웃들을 사랑하라. 형제라고 얘기했지만, 자매도 포함되는 겁니다. 형제자매를 서로 사랑하고 또 아껴주고 존중해 주고, 인격적으로 도와주고 그러면서,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어디를 사랑해라? 주님을 사랑하라. 부지런하게 그리고 정말 열심히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주님을 섬기는 사랑을 해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하는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부터 40절까지의 말씀인데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오, 둘째도 이와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전부라는 거예요. “율법 전부가 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다 달려 있다”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대로 악하게, 나쁜 짓을 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라고 하는 게 오늘 읽은 로마서 12장 9절에서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중심적으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로마서 12장 9절의 말씀인데요. 로마서 12장 9절 말씀에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냐면, 우리가 해야 될 그 사랑이 거짓이 없는 진짜 사랑을 해야 된다. “가짜가 아닌 진짜 사랑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도대체 진짜 사랑은 무엇이고, 가짜 사랑은 무엇일까요? 진짜 사랑은 진짜 사랑이겠는데, 도대체 그러면 가짜로 아는 사랑, 거짓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도표를 보면서 한번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것이냐 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요.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 위장하는 거죠.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데, 남들에게 내가 근사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남들에게 내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사랑하는 척 위장해서, 자선도 하고, 구제도 하고 하는 것인데, 그렇게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니라 가짜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치워줘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가짜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을 성경에서 찾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들 수가 있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되겠죠.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정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기 위해서, 그래서 드러내놓고 구제하는 것이죠.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가 정말 인자하고 긍휼이 많고, 정말 많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하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 자선을 베풀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바리새인들의 선한 행위는, 바리새인들의 구제는 진짜다? 가짜다? 가짜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아무것도 없다.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상을 다 받아버렸기 때문에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 없다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이런 가짜 사랑이 많이 넘쳐나는 것이죠. 특별히 누구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까? 정치인들에게서 많이 보는 거죠. 이제 선거철이 다가오니까, 우리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마음을 도둑질하기 위해서 보여주기식 사랑을 많이 할 겁니다. 보여주기 식으로 어린아이를 껴안고, 마치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고아를 위해서 뭔가 하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을 할 겁니다. 무엇인가 자선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여주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복지가 아니에요. 그들이 정말 좋은 삶으로 변화되기를 원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해서 보이는 식으로만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교회를 가서 기도하는 척할 겁니다. 절에 가서 참선하는 척할 겁니다. 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거기에 우리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면 안 되는 거죠. 이 과연 그들이 정책을 어디에 펴고 있고, 예산을 어디에 쓰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이지, 거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아니 되는 것일 텐데, 그런 사랑은 무슨 사랑인가? 가짜 사랑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짜 사랑 외에도, 또 다른 종류의 가짜 사랑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그 도표, 아까 봤던 도표를 봤으면 좋겠는데요.)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동이 됐어요. 측은한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 행동으로 옮아가냐 하면, 옮아가지 않아요. 지금은 안 돼. 지금은 내가 못해. 하지만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 마음이 있는데, 실제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면, 스스로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결국 참된 사랑이 아니고, 거짓 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예들은 어디서 많이 볼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들의 문제는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는 문제가 아니에요. 마음이 다 있어요. 따뜻한 마음이 있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이것을 사랑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고, 그 마음이 가짜냐면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움직여지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 거죠.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이 뜨거워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기가 쉬운데, 성경은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 거짓 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고 하는 그 사실에 속아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감동이 몰려와요. 은혜가 생겨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감동이 되어 은혜가 돼요. 그런 게 항상 잊지는 않겠지만, 어느 날에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고 눈물까지 흘렸어요. 정말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너무나도 깊은 감명을 받고 눈물을 흘리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고조되었고, 우리의 신앙이 그만큼 올라갔다고 생각하기가 쉬워요. 하지만 그런데 교회 문을 나서면서 생활은 변화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옛날 그대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죠.
단기 선교에 가서 단기 선교를 하고 오면 갑자기 우리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기쁨이 흘러넘쳐서 찬송을 부르기도 하고, 정말 믿음이 많이 성장한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부흥회를 하거나 여름 수영회를 가거나 하면 갑자기 마음속에 은혜를 많이 받아서 정말 많이 변화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믿음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이 고조되었다고 하는 것이 참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이죠.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라고 하시는 분은 <신앙감정론>이라고 하는 책에서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 참된 신앙이 무엇이고 참된 영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 가운데 정말 믿음이 커지는 것 같고 사랑의 마음이 가득 찬 것 같고, 그래서 정말 우리의 감정이 최고조로까지 올라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진짜 믿음이요.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만 읽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있는 것으로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마음에서부터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가짜 믿음이요. 가짜 사랑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된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결혼들 하셨을 겁니다. 그렇죠? 아직 안 하신 분도 있지만, 결혼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결혼했습니까?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 감정만 가지고 있어서 끝났습니까? 그래가지고는 안 되는 거죠. 짝사랑만 하고 있으면 내가 짝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짝사랑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한다고 한다면 내가 찾아가서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되고, 그 사람에게 내 사랑이 전해질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해야, 그래야 사랑이 성공하는 것이고,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 속으로만 좋아하면 아무 일도 없는 거예요. 그냥 끝나는 거예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고 하는 그 착각에 우리가 가짜 사랑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중에 있을 거라고 하는 거짓된 확신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못하는 겁니다. 지금은 왜 못하는가? 내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지금 내 코가 석자예요.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없고, 나중에 이 문제만 해결되면 할게요. 나중에 이 문제만 잘 해결되고 나면, 그때 할게요. 지금 교회에 빚이 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빚이 해결되고 나면 무엇인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빛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내가 우리 어떤 이 상황 가운데 있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내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안 하겠다는. 우리가 늘 하는 말 가운데 안 하겠다고 하는 말을 뭐로 표현하냐면, 나중에 하겠다고 하는 말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제 2023년을 마무리하고 내년도 2024년도를 향해서 준비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 이 시기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교회가 비전주일도 지키면서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우기도 하고 또한 헌신도 작정하고 하겠는데, 새로운 일꾼들을 세울 때마다 참 너무나도 많이 힘들어요.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우리 교인들이 뭐라고 대답하냐면, 안 하겠다고 대답하시는 분은 한 분도 없어요. 감사하게도 “안 하겠다” “못하겠다” 하시는 분은 단 한 명도 없는데, 뭐라고 얘기하냐면, “하기는 하겠는데 나중에 할게요.” “금년은 안 되고 나중에 할게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중이 없다고 하는 걸 너무나도 잘 압니다. 우리 아이들이 과자를 사달라고 하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면, 부모님들이 얘기를 하죠. “지금 말고 나중에 사줄게.” 그러면 나중에 사준다고요? 네 하면서 가만히 있나요? 아니요. 우리 아이들은 그것이 안 사준다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니라고 지금 사달라고, 지금 사줘야 된다고 하면서 떼를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중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는 “못합니다. 안 합니다”라고 하는 말의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말과 아주 비슷한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 좀 해주시겠어요? 이것 좀 하면 어떻겠어요? 하면 “안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뭐라고 대답하냐면, “기도해 보겠습니다.” 그게 안 한다는 말이에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나중에 하겠다. 준비되면 하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준비되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못하고 아직 어설프고, 모든 것들이 다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죠. 결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결혼 준비 완벽하게 잘해가지고 결혼 생활에 단 한 치의 흠도 점도 없이 완벽하게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결혼하신 분 계십니까? 아니요. 단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어요. 도대체 결혼이라는 게 무엇인지,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무턱대고 결혼을 해놓았는데, 그래서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서 서로 싸우면서 그러면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고, 아이들을 낳았는데도 아이들을 낳는 것이 어떻게 우리가 잘 기를 수 있는지 준비를 잘해서, 유아교육과 박사학위 받은 다음에 아기를 낳나요? 그게 아니라 아기를 낳아놓고 어떻게 길러야 될지 몰라서, 울면서 길렀어요. 배우면서 길렀어요. 그래서 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해줘야 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밤새도록 노력하면서 그래서 이 아이를 지금까지 길러온 것이죠. 저도 애들을 둘을 낳고 길러왔는데, 사실은 제가 기른 게 아니고 제 아내가 길렀는데, 그런데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는데, 모든 것이 다 새로운 것이죠. 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되는가? 처음 낳은 그 아이가 아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낯설고 처음 된 건데, 엄마도 처음 하는 것들 뿐이에요. 이 아이가 학교 가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고, 이 아이가 고민하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고, 그런데 그 상황 가운데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아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사랑을 그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어설퍼도 그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 주려고 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후회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때 이렇게 하지 않고 정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주었다고 한다면, 우리 아이가 좀 더 더 좋은 아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배운 다음에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그 아이의 요구에 따라서 그때그때마다 반응하고, 그때그때마다 하면서 놀라운 것은 아이도 성장하고 우리 부모도 성장하고 그만큼 더 성숙해져 가는 과정으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죠.
한 번은 우리 아이가 대학을 다닐 때였는데 대학을 아주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아주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생각되던 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빠져서 완전히 아이가 이상한 아이가 다 돼버린 거예요. 모든 세상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얼굴빛이 달라지고, 이 아이가 정말 우울증에 빠져서 정말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정말 심각한 상황에 있을 때, 그런 상황을 우리가 겪어보지 않고, 이 아이에게 그것을 해주려고 하니까, 너무나도 괴로운 것이죠. 저도 처음이고 제 아내도 처음이고 그래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바른 정상적인 아이로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밤에는 눈물 흘리고 연구하면서 이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노력을 해왔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이 아이를 위해서 최선의 사랑을 베풀면서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게 정말 너무나도 큰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근데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 아이가 와서 이렇게 힘든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야, 아직 나 준비가 안 돼 있으니까, 나중에 아파. 엄마도 힘들어. 아빠도 힘들어. 아무것도 준비 안 됐어. 너 지금 아프지 말고, 나중에 아파.” 그게 아니잖아요? 아프면 모든 거 다 내 팽개치고 이 아이를 위해서 간호하면서, 간호하면서 배우고, 그렇게 하면서 성장하고 그렇게 하면서, 모든 것들을 해 나가는 것이지,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에 한다고 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는데요. 강도 만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 사람에게 “아저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요. 그러니까 지금 의대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 의학박사 따 가지고 돌아와서, 내가 그때 수술해 줄게요.”한 게 아니고,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가지고 가서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상처를 싸매준 거예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을 메고 그 낙타에 태우고 여관까지 데려다준 거예요. 예수님께서 수천 명을 먹이기 위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때 한 꼬마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걸 가지고 이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가 있겠어요? 먹일 수 없어요. 그때 이 소년이 “주님, 제가 이것을 가지고는 다 못 먹어 먹이니까, 제가 지금부터 장사해 가지고, 백만장자가 되어서, 돈 많이 벌어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못 먹이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님 앞에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 보리떡 5개,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사용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한 번은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지만, 저희 집에 초상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소천하셨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를 장사하고 그 뒤에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충격적인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1절과 22절의 말씀인데요. 마태복음 8장 21절.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때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느라.” 이 제자는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 안 따른다는 거 아니에요. 예수님 따를 거예요.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어요. 그런데 예수님, 딱 하나 딱 하나, 지금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으니까, 아버지 장사는 마쳐놓고, 예수님 따르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아주 충격적인 대답을 해주신 것이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로 장사하게 만들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말씀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러니까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가정 일을 그냥 내 팽개쳐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일까요? 그러니까 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은 가족은 내 팽개쳐야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말씀인가요? 아니에요.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보면,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하는 게, 그게 성경적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지, 가족을 내 팽개쳐 버리는 것을 결코 하나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 충격적인 말씀 정말 이런 정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늘 변명하는 것이 주님 주님을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런데 지금 제가 먼저 처리할 게 있어요. 다른 것부터 해야 돼요. 이것부터 해야 돼. 이거 끝내놓만 하겠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 안 따른다는 거 아니에요. 주님, 내가 다른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겠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일단 내 코가 석자니까, 이것만 해결하고 그리고 따를게요. 나중에 따를게요. 언제? 지금은 대학 가야 되니까, 대학 입학하면 갈게요. 대학 들어가면 취직하면 주를 위해서 일을 할게요. 취직하고 나면 승진하면, 또 결혼하면 아기 낳으면, 다 끝내면 그때 하겠다는 거예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무턱대고 준비 없이 그냥 아무런 무대뽀로 그냥 밀어붙여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현명하게 지혜롭게 모든 것을 잘 준비해서 그래서 아주 잘해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우리의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는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늘 거기까지에요. 주님, 내 코가 석자니까, 이거 먼저 해결하고, 그리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하지 못할 이유들을 나열해 가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닌, 거짓일 뿐이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핑계를 대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잠깐만 기다려라, 잠깐만 기다려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저 높고 높은 보자 위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부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나중에, 나중에, 이 문제 해결되면 하지.” 나중에 하겠다고 하는 그런 가짜 사랑만이 들어있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그렇게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오늘도 주님 앞에 헌신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주여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 존중하게 해 주옵소서, 서로 돕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나눌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주님 앞에 헌신하고 결단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