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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사 강좌 6강: 식민지 정복과 기독교

오늘은 식민지 정복과 기독교에 대한 내용을 한번 다뤄볼까 싶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세상은 유럽과 중동과 아프리카와 그리고 아시아가 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제일 먼 곳이 어딘가? 인디아, 인도 땅이 가장 먼 곳에 있는 곳이고, 유럽이 세상의 중심이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었던 것인데, 그런데 1492년도에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혹시 아십니까? 누구요? 콜럼버스! 대단합니다. 상식이. 여기 나와 있군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냐면, 콜럼버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고 하는 사람은 1492년 8월 3일 날 서쪽으로 항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쪽으로 항해를 해서 어디를 목적으로 가게 되었냐면, 인도를 향해서 가려고 했던 것이죠. 이것은 아주 대단한 시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세계에서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편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 땅이 이렇게 편편하게 생겼고, 그 지구를 바치고 있는 4개의 기둥이 있어서, 그래서 바다 밑으로, 이렇게 유럽 대륙에서 서쪽으로 이렇게 바다를 쭉 가다 보면, 바다를 한참 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뚝 떨어지는 거죠. 지구가 이렇게 평평한 상처럼 생겨가지고, 서쪽으로 바다를 계속하면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을 했던 시기가 고대 세계의 그런 지구에 대한 생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지구는 평평하고, 해는 늘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지고, 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죠? 갈릴레오. 갈릴레오라고 하는 사람이 연구를 쭉 해보니까, 그게 아니라, 지구는 평평한 게 아니라, 동그랗고, 그리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밝혀낸 것이죠. 대단한 발견입니다. 이거 우리가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만 가지고 연구를 해가지고, 지구가 이렇게 생기고 태양이 이렇게 생겼고 우주가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어마어마한 발견이었죠.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그 갈릴레오를 핍박하면서 이건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니까, 네 주장을 철회하라. 철회하라. 압박을 해가지고, 갈릴레오가 할 수 없이 그 압력에 못 이겨서, “알겠습니다. 제가 그러면 제 주장을 철회하겠습니다.” 해놓고 나가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하면서 갔는데, 그렇게 이단아 취급을 받던 갈릴레오의 발견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오게 된 겁니다. 지구가 동그랗구나. 지구가 동그라니까, 결론이 뭡니까? 서쪽으로 가면, 가다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고 가고 가고 하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어떻게 돼요? 쭉 돌아가지고, 지금까지 우리가 저 인도에 가려고 하면 육로로 해서 갔는데, 바다를 건너서 건너서 가다 보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도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믿고 바다를 향해서 담대하게 항해를 시도했던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정말 대단한 거죠. 다들 찰싹거리는 파도가 무서워서, 그 바다로 깊은 바다를 향해서 가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그것을 인도를 가겠다고 가다가 가다가, 인도를 간 게 아니고, 아메리카 대륙과 딱 만나게 돼서, 그 아메리카 대륙에 딱 도착하는 순간 “야 여기가 인도구나.” 그러면서 아메리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중간에 있는 그 섬들을 보면서, “아, 여기가 인도구나.”라고 생각하고서 발견하고 우리가 인도에 갔습니다. 그러고 막 그렇게 한 거예요. 처음에는 인도에 도착한 줄 알았어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인도가 아닌 걸 알게 된 것이고, 그래서 거기를 서인도 제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새로 발견한 땅을 아메리카 땅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왜 콜럼버스는 육지를 걸어서 인도로 가지 않고, 왜 배를 타고 인도로 가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인도로 가는 길에는 누가 지키고 있어요? 이슬람교도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그 이슬람교도들을 무찌르고 정복하려고 200년 동안 싸웠지만, 그 싸움에서 늘 패하고 치고 무찌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인도로 가는 그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배를 타고 가게 됐는데, 인도로 가는 목적이 뭡니까? 무역을 위해서 그런 것이죠. 후추를 얻기 위해서 인도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좋은 물건들을 가져오기 위해서, 육지로 가려고 했는데, 육지로 못 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배를 타고 가게 되어서 그래서 발견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그랬는데, 발견한 것은 유럽 사람들의 관점이고, 원래부터 아메리카 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있었고, 그들이 잘 살고 있었던 것이죠.미국에는 지금도 콜럼버스의 날을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날이 1492년 10월 12일입니다. 그래서 매년 10월 12일을 콜럼버스 데이 날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미국은 공휴일을 항상 요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10월 둘째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서, 콜럼버스 데이로 지정해서 항상 둘째 주 월요일이면 콜럼버스 데이, 휴일이 되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죠. 그때가 되면 이제 단풍 들기 시작하고 그래가지고 단풍 구경 가기 시작하고 그러는 것인데요.        

이렇게 신대륙이 발견됨으로 따라서 이제는 유럽에 있는 사람들이 신대륙을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함대를 보내면서 신대륙을 정복하기 시작했는데요. 특별히 이 정복을 하는 일에 앞장섰던 나라들이 스페인이라든지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이 엄청나게 식민지 정복을 많이 하려고 노력을 했었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역시 다 그렇게 했습니다. 프랑스라든지 네덜란드, 영국 이런 나라들도 다 식민지 정복에 뛰어들게 됐는데 그중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나라들이 스페인과 같은 나라였죠. 그래서 스페인을 이렇게 스페인 나라의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 그 식민지를 정복하고 그래서 거기서 많은 것들을 얻어서 무역을 하게 됐는데요. 그 모습을 보았던 스페인 왕실에서는 식민지 세계의 식민지에 있는 인디언들을 보호하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왜 인디언들을 보호하는 법률을 만들었을까요? 아메리카 땅에 사는 원주민들이 원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그런 법을 만든 게, 사실은 아니에요. 왜 만들었는가? 이 식민지 정복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게 되고, 권력을 얻게 되면, 그러면 왕의 말을 안 듣고 막 대항할까 봐, 세력이 세질까 봐, 그렇게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식민지 인디언 보호법을 만들어서 통제하려고 했는데, 사실은 그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무슨 법이 있었냐면은 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종교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식민지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천주교에서 이제 식민지에서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천주교 교황청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됐냐면, 이제 저 아메리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성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강제적으로 개종시키는 것도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호전적인 교화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무력으로 점령하고 점령자들에게 너희들 하나님 믿어. 예수님 믿어. 강제적으로 해가지고 믿는다고 하면 살려주고 하는 시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크리스천으로 바꾸는 일들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정복하러 갈 때 교회가 자연히 아메리카 땅으로 들어가게 됐는데요. 이렇게 교회가 그렇게 아메리카 땅으로 기독교가 아메리카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워요. 왜냐하면 유럽 사회 전체가 기독교 국가였고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고 100%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그 기독교인들이 아메리카 땅으로 들어가게 될 자연히 기독교도 같이 따라가게 됐는데 들어가서, 전도를 어떻게 했느냐? 무력을 사용해서 강제적으로 개종시키는 일들을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무력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 것이 “정말 바른 일이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져본다고 하면, 그것이 바른 전도 방법이었을까요? 그런 방법으로 해서 참된 성도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겁니다. 오히려 가짜 성도들을 많이 양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고, 겉으로는 선교의 열매가 많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사람들은 칼이 무서워서 기독교인이 된 것이고, 돈이 좋아서 기독교인이 된 것이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제대로 된 신앙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방법들이 많이 활용이 돼요. 예를 들자면 우리가 전도할 때 어떻게 전도해요? 사장님이 그 회사 직원들한테 “다 교회 가” 그래서 교회로 다 데리고 오죠. 옛날에는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 하는 것 자체가 안 되잖아요? 지금은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이 가서 “다 교회 가” 그러면 갔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 방법 자체가 지금은 다 사라져서 그것도 쓸 수 없지만, 옛날에는 그게 통했어요. 군대에서 지휘관이 “오늘 모두 교회로 집합.” 그래 버리면 신자든 불신자든 이슬람 교단이든 불교 성도들이 다 교회에 와서 예배당에 앉아 있고 다 세례 받아요. 그러면 다 세례 받고 그렇게 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군대는 황금어장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식의 복음 전파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느냐?”라고 질문을 던져본다고 한다면, 사실은 좋은 성도들을 참된 성도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잘못된 기독교에 대한 반발 세력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가짜 성도들을 많이 양산해 내는 그런 부작용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식민지에서 이제 예배를 드려야 되고 성직자들이 필요하고 그랬을 때, 그 성직자들을 누가 임명했는가? 교황청에서 임명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 국왕이 임명을 했습니다. 포르투갈 국왕이 임명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식민지의 기독교는 마치 국가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정부에서 파송한 목회자들이 거기서 예배 인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는 그런 일을 했는데, 결국은 이 그 식민지 안에서 사역하는 성직자들이 참된 성직자들이 존재했겠습니까? 아니죠. 왕실과 결탁한 타락한 성직자들이 와 있는 것이고, 그 타락한 성직자들이 왕실의 유익을 위해서 일을 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그 식민지 내 교회가 정말 교회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해요. 사람들은 많았고 건물도 잘 지었고 그래서 잘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대로 된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식민지를 이렇게 정복하고 이렇게 식민지를 착취하는 데, 성직자들이 이용을 당하는, 식민지배에 하나의 정당화를 준다든가, 식민지배에 그런 도움을 주는 그런 기독교로 전락해 버리는 안타까운 역사가 그 식민시대에 있게 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식민지에 들어온 성직자들이 국왕이 파송한 성직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도 많이 식민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러 들어가게 됐습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수도원 운동을 살펴보면서 도미니크 수도회, 성 프란시스코 수도회 등등 여러 수도회들이 있었다고 그랬는데, 제가 수도원 운동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얘기를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렇게 하나의 정치화된 그런 기존의 기성의 그런 교단보다는, 그래도 수도원에 들어가 있는 수도사들은 그나마 좀 순수한 사람들이 수도원에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이 식민지에 와서 거기서 또 복음을 전하게 됐는데, 이 수도사들은 원주민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살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살면서 그래서 거기에 있는 수많은 그 식민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그들이 정말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수도사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교회와 그러니까 로마 교황청과 영국, 스페인 왕실, 포르투갈 왕실이 운영하는 그런 교회와 그다음에 원주민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이 프란치스코 수도회나 도미니크 수도에서 왔던 이 수도사들은 그런 교회와 더불어 싸우는 그 식민지 사람들의 편에 서서 교회와 싸우는 일들도 자주 있었던 것이죠. 옛날에 나왔던 영화 가운데 미션이라고 하는 영화 보셨습니까? 그 음악도 너무 좋고 참 좋잖아요? 그 영화에서도 보면 교회와 식민지가 막 싸울 때, 거기 갔던 수도사들이 그 식민지에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 가지고, 교회와 싸우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바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나마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 식민지 사람들과 같이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식민지의 역사를 다 살펴볼 수는 없고 그래서 그냥 대표적인 거 한 두 개만 생각해 보면 좋겠는데요. 이렇게 인디언들에 대한 착취가 심하게 되자 도미니크 수도회사였던 안토니오 몬테시노스라고 하는 사람은 이게 이 사람이 지금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 도밍고에 있는 동상을 지금 이렇게 그려놓은 것 지금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사람은 식민지배가 잘못됐다 식민지 사람들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설교를 하고 이 도미니크 수도사죠.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렇게 착취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감명 있는 설교를 한 사람으로 아주 유명하고요. 이 사람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바돌롬의 데 라스카사스라고 하는 라스카사스라고 하는 사람이 이 몬테시노스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았어요. 원래 이 사람은 이제 스페인 사람들이니까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냥 스페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죠. 원주민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스페인 편에 서 있는 사람인데, 이 라스카사스라고 하는 사람도 식민지 정복자로서 와서 생활했었지만, 아까 그 몬테시노스의 사람 수도사의 설교를 듣고서 아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야 되겠구나 하면서 이 사람이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엔코미엔다라고 하는 게 있었어요. 엔코미엔다. 엔코미엔다라고 하는 게 뭐냐면, “식민지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식민지 사람들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그 식민지 사람들을 스페인 사람들에게 위탁한다”라고 하는 제도예요. 그러니까 좋은 제도입니까? 나쁜 제도입니까? 명목상은 좋아 보이는 제도예요. 하지만 실질적인 것은 뭐냐 하면, 식민지 사람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아서 마음껏 착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가 엔코미엔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데 라스카사스라고 하는 사람도 자기가 스페인 사람으로서 식민지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엔코미엔다 이걸 이용해서 노예로 부리고, 그렇게 막 호화롭게 살고 있었던 사람인데, 이 몬테시노스 수도사의 설교를 듣고, “이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구나” 깨달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그 권리를 포기해 버립니다. 노예들을 해방시켜 버리고 이 사람이 인디언 착취에 반대 운동을 하면서 인디언 식민지 사람들을 도와주고 봉사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래저래 해가지고 결국 이 식민지 사람,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쓰는 일들이 점점점점 줄어가고, 그러면서 유럽에서는 할 수 없이 아프리카에서 또 노예를 수출해 가지고, 아프리카 사람들 흑인으로 쓰는 일들이 벌어지게 됐는데요. 아무튼 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가 보면 누구의 편에 섰는가? 그 당시 교회와 교회 권력을 잡고 있어, 종교적인 그 힘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힘 있는 유럽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이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다음에 평안을 빌어주는 그런 잘못된 역사가 중세 시대 때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 이 중세시대 때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면서 우리 교회라고 하는 것이 “언제든지 이런 위험성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항상 자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리고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또한 성직자가 사역을 하게 되겠는데, 이것이 정말 순수한 믿음의 공동체로 계속 갔으면 좋겠는데, 이것이 커지면서 결국에는 이 종교 권력이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봉사하고, 그래서 세속적인 목적에 이용당하는 일들이 중세시대 때 있었고, 지금도 벌어질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고 하는 점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그런 잘못된 길로 혹시나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는지 우리 성도님들이 잘 정신을 차리고 만일 그런 잘못된 길로 간다고 한다면 그것을 방지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이런 사람들도 사실은 어떻게 됐어요? 정말 신앙적인 일을 위해서 세워진 사람들인데, 그 당시 제사장들이 무엇을 했냐면 로마 정부에 협력하고 로마 정부가 다스리는데 로마 정부가 주는 그런 특권을 받아 누리면서, 그러면서 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에 굴림하는 그런 세력으로 남게 된 것이죠. 항상 이 조직이나 권력이나 이런 것들이 타락할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도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분별해야 되고, 참된 신앙을 제대로 갖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이 이용을 당할 수 있고 정치권력에 의해서 혹은 어떤 탐욕적인 힘에 의해서, 교회가 이용을 당하게 되는, 거기에 그냥 세상에 악한 일을 하는데 교회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언제나 상존한다고 하는 그런 교훈을 우리가 중세 교회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중세 교사를 통해서도 배워야 될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힘에 의한 전도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전도 방법이라고 하는 것, 성경의 방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힘에 의한 전도 방법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어느 회사에서 기독교 회사가 있어가지고 취업을 하려고 하면, 교회 가서 세례 받았다고 하는 증명서 받아오고, 추천서 받아오면 합격시켜 줄게 그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전도가 잘 되겠죠? 취직하려면 세례 교인 증명서 받아와야 되니까, 그렇죠? 전도가 잘 되는 것처럼 보여요. 근데 참된 성도가 양산되지는 않아요. 그냥 교회에 와서 취직하기 위한 세례 증서 받고 그리고 취직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에요. 자기가 믿음을, 믿음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니라 취직하기 위해서 교회에 온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이런 힘에 의한 전도 방법을 선호할 때가 굉장히 많은데, 교회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힘에 의한 성장, 참된 성장을 가져온 참된 부흥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라고 하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참된 성장은 언제 가지고 왔어요? 교회가 핍박을 당할 때 초대교회 시절에 핍박을 당하고, 많은 특권들을 다 빼앗기면서 고통을 당했지만, 그 고통 가운데서도 참고 인내하며, 그리고 오히려 사랑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예수님이 누군가라고 하는 사실을 잘 보여줄 때 그때 제대로 된 전도가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 옛날 늘 사용했던, 힘에 의한 전도 방법이 참된 전도 방법은 아니다. 참된 전도 방법은 우리가 사랑하고 베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증거하고, 우리가 정말 사람들에게 마음을 얻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전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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