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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한 대답을 하는 대화의 기술

– 이국진

과격한 말로 목적을 이룰 수는 없다. 과격한 말은 상대방의 노를 격동시킬 뿐, 아무런 목적도 성취할 수 없다(잠언 15:1). 시비를 가리는 것도 노하기를 억제할 때이다(잠언 15:18). 화풀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과격한 말이 소용될 수 있을 것이나,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가 유순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하게 되고, 그 분노는 결국 나에게 치명적인 독약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내가 유순한 대답을 할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개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judgment)하는 말보다는 사실(fact)을 말하는 것이 좋다. 판단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은 왜 집안일에 신경도 안 써?”라고 말하는 것보다,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하고 씨름하느라 많이 지쳐 있는데, 당신이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밑도 끝도 없이 왜 집안일에 신경도 쓰지 않느냐고 따져드는 아내의 투정에, 남편은 “내가 왜 신경을 안 써? 얼마나 더 신경을 써주어야 만족할래?”라고 맞받아 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대답에 내가 더 크게 상처받고 나의 분노가 더 심해질 것은 자명하다.

스크루테이프 사탄은 조카 웜워드 사탄에게 보내는 3번째 편지에서, 이러한 점을 철저하게 이용하라고 권고한다. “자기가 먼저 불쾌한 말을 해 놓고서도 상대가 언짢은 내색을 한다고 도리어 서운해 하는” 상황을 만들라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1

유순한 대답으로 상대방의 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자녀에게 다가가서, “왜 너는 네 인생을 그렇게 허비하며 사냐?”라고 하기 보다는 “이제 컴퓨터 게임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이제는 공부할 때가 되지 않았니?”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남편이 설거지를 해주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어”라고 말하기보다, “여보, 오늘 설거지를 좀 해주면 내가 참 기쁠 것 같아요”라고 구체적인 목적을 말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노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에게 의사의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 좋다. 자녀에게 다가가서, “이제 공부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생각에는 지금 공부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에는 어떻니?”라고 묻는 것이 좋다. 부모의 말에 억지로 공부하러 가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한 결단에 의하여 공부하러 들어가는 것이 좋다. “창문 좀 닫아”라고 명령조로 말하는 것보다, “창문 좀 닫아줄래요?”라고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는 질문으로 말하여, 본인이 스스로 결단하게 하는 것이 좋다.

대화를 할 때에는 피할 길을 열어놓는 것이 좋다. “이런 방법이 정답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제 생각에는 이런 방법이 현재로서는 제일 좋은 것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자신의 생각을 상대화하여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상대방은 나의 말에 동조할 때에도 억지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말하고 싶을 때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단정 지어 말하면, 상대방도 빠져나갈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도 빠져나갈 길이 없게 된다.

상대방의 노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오빠는 돈으로만 효도하려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편견을 반영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어떤 행동이 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하나씩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기 위하여, 깊이 생각해야 한다. 생각 없이 너무 빨리 대답한 말은 주워담을 수도 없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잠언 15:28). 히브리 시의 병형어법을 생각하면, 잠언서의 이 말씀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는 것”의 반대되는 개념이 “악을 쏟아내는 것”임을 나타낸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것은, 단순히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서, 악을 쏟아내는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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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홍성사, 200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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