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 이국진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4:26)

종종 이 구절은 오해될 때가 많다. 마치 죄를 짓지 않는 분노가 있는 것처럼 오해된다. 하지만 이 구절은 분노를 내면서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화가 난다 할지라도, 분노를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죄를 짓지 말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여러 가지 화가 나는 일을 만난다. 나의 권리가 침해를 당했다고 생각할 때, 목표가 좌절될 때, 짜증이 날 때, 오해를 받을 때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다. 어쩌면 사람의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화가 날 때, 그 화를 분노로 표출하는 것은 죄가 된다. “새가 우리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머리에 둥지를 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루터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화가 났을 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성내는 행위”는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인죄와 같은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화가 나더라도,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잠언 2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가인은 하나님이 제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하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생 아벨을 죽이는 마음은 이미 그가 분노하는 순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노는 사탄이 우리의 심령을 장악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가장 손쉬운 통로이다. 분노하는 순간 우리는 사탄에게 마음의 열쇠를 넘겨준 셈이다. 화가 날 때, 크리스천들이 대응해야 할 방법을 에베소서 4:26에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화가 나더라도 분노를 폭발하지 않도록 하라. 둘째, 화를 낸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지 말라. 하루가 가기 전에, 반드시 용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분노로 인하여 갈라진 부부 사이의 틈새들을 하루가 가기 전에 메우지 않고, 계속 방치해 두고 또 방치해 둔다면, 얼마 되지 않아 그 틈을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게 될 것이다. 분노로 인하여 갈라진 친구와의 갈등을 메우지 않고 방치해두면, 우리는 친구를 잃게 될 것이다. 분노로 인하여 상처받은 자녀들의 마음을 그때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녀를 잃게 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가장 사랑해야할 사람들에게 가장 못되게 군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화풀이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C.S. 루이스는 이러한 현상을 사탄의 전략으로 분석한다. 사탄은 우리가 진짜 아내나 아들을 사랑하지는 못하게 하면서, 가상의 아내와 가상의 아들을 사랑하게 한다는 것이다. 1 그래서 아내나 아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열렬한 기도를 쏟아 놓다가도, 진짜 아내나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면 곧바로 욕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경우가 가능하다고 한다.

* 목차로 돌아가기

* 다음 글 읽기 – 화가 치밀어 오를 때

* 이전 글 읽기 – 말하기를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 

Loading

--[註]---------------------------
  1.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홍성사, 2000), 28.[]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