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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를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

– 이국진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 1:19-20)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야고보 사도의 권면은 말을 하는 속도를 충청도 사람들처럼 천천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약간의 도움이 된다. 우리 교회에 충청도 출신 장로님이 계신데, 늘 말씀을 천천히 하신다. 옆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필자의 말도 저절로 천천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을 하다 보니, 실수가 적어지고,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말하는 속도를 늦추라는 것이라기보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심사숙고하여, 화를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아내느니라” (잠언 15:28).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이메일이나 전화 메시지를 받으면, 곧바로 응답하지 않고 하루나 이틀 정도 기다렸다가 응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실천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는데, 적어도 자신이 대답할 말을 그만큼 신중히 생각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지혜로운 것일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실수는 너무 빨리 대답하거나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반응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조급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사랑의 관계를 박살낸다. 부부 사이의 관계도 박살내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박살내고, 성도와 목사와의 관계도 박살내고, 성도와 성도 사이의 관계도 박살내고, 고용주과 피고용인의 관계도 박살내고, 주인과 손님의 관계도 박살낸다. 핵폭탄 앞에선 모든 것이 파괴되듯이, 분노로 내뱉은 말 앞에 파괴되지 않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말을 조급하게 함부로 내뱉을 것이 아니다. 심사숙고하여, 분노하지 않아야 한다.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말씀은 조급하게 화를 내면 안 되지만, 천천히 화를 내면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성내지 않기 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하란 뜻이다.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언 17:14)의 말씀처럼, 조그마한 분노로 시작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문제를 없애기보다는 점점 더 커지게 만든다. 결국 물을 담아 둔 방축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신혼부부가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는 가라는 단순한 문제로 이혼까지 갔다면 믿을 수 있는가? 실제로 그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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