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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사 5강: 기독론 논쟁 – 한 분 예수님에게 인성과 신성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

오늘은 초대교회 강좌 다섯 번째 시간으로 기독론 논쟁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삼위일체 교리가 어떻게 교회 안에서 하나의 완성된 교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쭉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언제 그 삼 일제 교회가 전교회적으로 이렇게 확립되게 되었다고 그랬죠? 325년 무슨 회의? 니케아 회의에서 성립이 됐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 뒤에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다시 한번 재정립된,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가 교회 안에 공고하게 서게 되었다고 하는 것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으로, 구약 시대 때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왔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등장한 것이고, 성령 하나님을 또 보내어 주시고, 그래서 이 성부, 성자, 성령 3위가, 세 분이 어떻게 한 하나님일 수 있고, 한 하나님이면서 어떻게 세 분으로, 각각 독립된 세 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많은 논쟁을 통해서, 이런 325년 니케아 회의,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통해서 정립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논란이 이제 사그라들면 좋았겠는데, 논란이 쉽게 사그라든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런 교회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우리의 정말 한정적인 머리로, 정말 영원하시고 무한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그 하나님의 오묘한 존재 자체를 우리의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이죠.

특별히 어느 분야에서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었냐면은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더 어려움을 많이 겪은 겁니다. 예수님이 한 분이신 그 예수님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에요?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예? 삼위일체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이신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의 모습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이 어떤 인간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배가 고프면 시장하시고, 피곤하시면 주무셔야 했고, 등등, 또 어린아이 시절서부터 성장하셔야 했고, 또 슬픈 일을 보며 눈물을 흘리셔야만 했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셔야만 했었던 것, 또 죽음의 고통을 그대로 당하시며 실제로 죽으셔야 했던 것,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이신가? 인간인가?”라고 하는 그 문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한 존재 안에 신성과 인성이 공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뭐만 있어요? 인성만 있잖아요?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그래서 인간으로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예수님 안에는 신적인 모습도 있고, 인적인 모습도 있고, 사람들의 모습도 있고, 그러면서 이 둘이 어떻게 섞였는가? 분리되어서 두 개의 성품이 두 개 존재하는가? 등등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서, 초대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서, 논란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누구신가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초창기 시절서부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왔었고, 이단들 가운데, 이단적인 주장들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초창기 이단들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 초창기 이단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도표를 한번 보죠.) 초창기 이단들 가운데 “에비온파”라고 하는 이단 집단이 있었는데 그 에비온파에서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만 성부 아버지의 하나님만 진짜 하나님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며, 그 사람인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 때, 메시아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뿐이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이단 집단이 에비온 파입니다. “알로기파”도 비슷한데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강림하여서, 초자연적인 권능을 행사했을 뿐이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생각을 한 것이고요. “사모사타의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도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로고스가 임재하게 되어서, 그때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단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위에 세 개의 그 이단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은 아니다. 인간이다. 인간이신 예수님이라고 보았던 사람들이 바로 에비온파, 알로기파, 그리고 사모사타의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영지주의”라고 하는 이단이 있었는데, 이 영지주의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헬라 철학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죠? 플라톤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플라톤이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나요? 영육 이원론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영은 고상한 것이고, 정신적인 것은 좋은 것인데, 육체는 아주 더러운 것이고, 이렇게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그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일 수 없다. 그래서 인성을 부인한 것이 영지주의고, 가현설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냐면,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났는데, 성자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났는데, 진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다”라고 이야기를,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지, 실제 사람은 아니었고, “하나님이셨다”라고 생각한 것이 가현설 가짜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가현설이 더 발전된 것이 어떤 것이 있냐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인간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 성부께서 고난을 당하신 거다”라고 말하는 “성부고난설”까지도 가현설이 발전돼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요. “사벨리우스”라고 하는 이단도 예수님은 원래는 하나님인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다고 해서, 초창기 이단들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인간은 아니다”라고 주장한 이단들, 또 반대로 예수님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단들로 그렇게 나누어질 수가 있겠는데요. 그런 이단들의 이야기들이 계속 있었지만, 그래도 정통 교회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받아들여 왔었습니다.

하지만 니케아 회의와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거친 이후에, 동방의 안디옥 쪽에서 이 문제가 계속해서 논란이 되기 시작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아폴리나리우스”와 시리아 안디옥의 “네스토리우스” 사이에 서로 신성을 강조하고 인성을 강조하는 두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싸우고 논쟁을 하다가, 결국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냐?”라고 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칼케돈이라고 발음해도 되고 칼세돈이라고 발음을 해도 되고, 그런데 아무튼 이 칼케돈이라고 하는 회의에서, 451년에 양파를 양쪽 입장을 중재해 가지고,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만들어낸 것이 칼케돈 신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칼케돈 신조어가 어떻게 돼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글씨가 보입니까? 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거룩” 제가 읽어볼게요. “​우리는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모두가 일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주님이신 동일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고백하게 한다. 그는 신성과 인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완전한 분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이성적인 영혼과 육체를 가지신 참 사람이시다. 신성을 따라서는 아버지와 동일본질이고, 인성을 따라서는 우리와 동일 본질이며,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시나 죄는 없으시다. 그분은 신성을 따라서는 모든 세대 전에 성부로부터 나셨으며, 동일하신 분이 인성을 따라서는 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머니 (Deotokos)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한 분이시요 동일하신 그리스도요, 아들이시며, 주님이시요, 독생하신 자는, 양성(兩性)에 있어서 혼돈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음을 인정받으며, 성품의 구별이 연합으로 인해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각 성품의 특성이 보존되고,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실제로 작용한다. 그는 두 인격으로 갈라지거나 나누어지지 않고,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아들이시고, 하나님 말씀이시며, 독생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 처음부터 선언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우리들에게 가르치셨으며, 거룩한 교부들이 우리들에게 전하여 준 대로이다.”라고 하는 합의문을 작성하게 된 것이죠.

칼케돈 신조의 내용을 한번 쭉 읽어드렸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 뭡니까?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된 사람이다. 참 하나님이신데 그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동일본질이신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신데 어떤 인간이시냐? 우리와 동일본질을 가지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예수님에게 같이 있어서, 그 둘이 온전하게 있는데, 100퍼센트 하나님이시고 100% 인간이신데, 그 둘이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거나 나뉘거나 변질되거나 어떻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성품이 온전히 존재하면서, 그러면서 이것이 이렇게 서로 혼란되거나 서로 의지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예수님이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을 칼케돈 신조에서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됐는가? 먼저 “아폴리나리우스”라고 하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주장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한번 도표를 보죠.) 칼케돈 신조 전에 아폴리나리우스라고 하는, 알렉산드리아, 지금의 이집트 카이로 근처에 있는 교회의 감독인 아폴리나리우스는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사람이라면, 두 개의 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완전한 본질과 유한한 본질이 한 존재에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인간적 본능을 지닌 육신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신성을 가지고 오셨고,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지만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마리아는 통로였을 뿐, 예수님은 로고스 그대로 신성만 가지고 온 것이지, 그리스도는 외형상 사람이지만, “사실은 로고스다”라고, 예수님이 인성,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오로지 신성만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다가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게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과의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이 안디옥파의 “네스토리우스”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안디옥 파는 정반대로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듯 로고스가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이며, 로고스가 인간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 신성을 간직한 채 인간의 형체를 입은 것이고, 신성과 인성이 독립적인데, 활동과 목적에서는 연합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진정한 인간이었다고 주장을 했고, 그래서 이 아폴리나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와 이 두 학파가 서로 싸우면서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하다가 싸우다가, 결국에는 어 칼케돈 회의까지 가게 된 것이죠.

5세기 초에, 그러니까 사백 년대 초반이겠죠. 네스토리우스 5세기 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한 번 (그다음 것을 한번 보여주세요.) 네스토리우스라고 하는 사람은 안디옥파에 해당하는데, 이 안디옥 장로 출신인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된 겁니다. 그래서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목회를 하려고 딱 봤더니, 교회 안에 두 가지 주장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어떤 주장이 서로 싸웠느냐? 마리아가 누구냐? 마리아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되느냐? 문제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막 서로 싸우고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마리아는 테오토코스(theotokos)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마리아는 안트로포토코스(anthropotokos)다. 즉 “사람의 어머니다”라고 주장을 해서, 하나님의 어머니파와 사람의 어머니파가 서로 막 싸우고 있는 겁니다. 그때 이 네스토리우스라고 하는 목사님이 이 두 파를 “어떻게 하면 중재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 라고 이야기를 해서, 두 파를 중재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당시 분위기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특별히 알렉산드리아 파에서는 마리아의 위상을 손상시키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고 하면서, 이 네스토리우스를 비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런 과정 가운데 “시릴”이라고 하는 그 목사가, 감독이 황제에게 고발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황제가 교회 신앙 문제로 고발을 당하니까, 이 시릴이라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네스토리우스 감독에게 시릴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보냈어요. 그랬더니 네스토리우스가 시릴을 이렇게 조사하면서, 시릴에 대한 고발은 사실무근입니다. 그러면서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하면서 시릴을 옹호해 주었어요. 그러니까 시릴이 네스토리우스에게 고맙다고 해야 되겠죠? 근데 고맙다고 한 것이 아니라, 시릴은 기분이 되게 나빴어요. 왜 같은 감독인데 이 사람이 나를 재판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재판을 내가 피고로서 받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나빠가지고, 시릴이 네스토리우스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한 크리스토토코스라고 하는 주장을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막 싸우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에베소 회의가 열려서,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고, 또 그 이후에 또 시릴을 파문하고 하는 그런 밀고 당기는 일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에 433년에 통합 신조를 작성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에베소 회의를 할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이제 황제가 에베소 회의를 한다고 모았어요. 에베소 회의를 한다고 모으니까, 모든 감독들이 다 에베소로 모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누가 먼저 도착했는가? 시릴을 지지하는 파가 먼저 싹 도착한 겁니다. 그러니까 시릴 파들이 모여가지고, 네스토리우스는 나쁜 놈이다 하면서, 이단이다 하면서, 정죄해 버렸어요. 근데 나중에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와가지고, 이번에는 알렉산드리아 파의 그 시릴을 정죄해 버렸어요. 그래 서로 막 서로 정죄하면서 그렇게 하자 나중에 이제 문제가 생겨서 결국에 칼케돈 황제가 칼케돈으로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결국 모든 것들을 다 중재하면서 결국

이 칼케돈 신조를 적립하게 된 것이죠. 통합 신조도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 통합 신조는 무엇이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인간이고 성부와 동일 본질이면서 우리와 동일 본질이다라고 하는 것을 서로 이렇게 해가지고, 기독론이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그런 기독론으로 정립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죠. 아무튼 이 과정 가운데서 계속 싸움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통합신조를 작성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교회 내에서 이 문제 가지고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다음 장면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칼케돈 회의가 지난 이후에 “유티케스”라고 하는 사람은 콘스탄티노프의 수도원장이었는데,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후로 하나의 신성만을 가지셨고 우리와 인성이 다르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성을 부인하니까, 결국 448년에 정죄를 당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정죄를 당해서 이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디오스 코루스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유티케스와 같이 합작을 벌이면서 콘스탄티노플 감독이었던 플라비아누스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황제를 끌어들여서 결국에는 에베소 회의에서 단성론을 확인, 예수님이 하나의 신성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을 확인하고 플라비아누스를 정죄시켜 버린 것이죠.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두 개의 본성을 가진 것이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만 가지고 있다. “인간은 아니다”라고 하는 그 주장을 폈던 사람들이 승리를 하게 돼버린 거죠.

하지만 어 이 과정을 보고 있던 레오 1세 교황은 이 에베소 회의를 보면서 저 에베소 회의는 “강도회의다”라고 주장을 했어요. 왜냐하면 에베소 회의를 할 때 그냥 온전한 정상적인 토론을 한 것이 아니라, 용역들을 동원해 가지고 상대방을 막 가두고 그렇게 하면서 협박을 하면서 그래서, 신성만 주장하는 파들이 승리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승리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강도회의라고 하면서, 이 레오 1세 교황은 지금 국가적으로 황제와 결탁해 있는 신성파가 “예수님이 신성만 있다”라고 하는 그 파가 지금 황제와 결탁을 해서 그래서 그 주장이 승리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레오 1세 교황은 편이 좀 약해졌지 않습니까? 황제가 자기편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레오 1세 교황이 굴하지 않고 계속 황제의 누이에게 계속 편지를 보낸 거예요. 계속 편지를 보내면서 “그리스도가 신성도 가지고 있고 인성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황제의 누이에게 계속 편지해서, 결국 황제의 누이는 레오 1세 교황 편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가다가 황제가 죽었어요. 그래서 그다음 황제가 누가 됐느냐? 황제의 누이의 남편인 마르키아누스가 등극하게 되면서, 갑자기 또 분위기가 정치적으로 바뀌어가지고, 결국에는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그런 분이다”라고 하는 칼케돈 회의로 정립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그 이후에도 역시 세베투스라고 하는 온건파와 그리고 강경파 그들이 서로 싸우면서 일의론 예수님이 하나의 의지만 가지고 있었다. 이의론, “예수님이 신성에 따른 의지도 있었고 인성에 따른 의지도 있었다”라고 하는 그런 논쟁으로 계속해서 벌어져서 그 논쟁이 계속 이어졌는데 아무튼 이 과정들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난 것이 무엇이냐면, 칼케돈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 “성경적인 가르침에 맞는 것이다”라고 하는 결론으로 내려져서, 지금까지 그 이론이, 그 교리가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신성은 하나님과 같고 인성은 우리와 같은데 그러나 죄는 없으시고, 그 성품이 서로 섞이거나 분할되거나 나뉘거나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다 하는 그런 개념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이런 과정들을 제가 잠깐 설명을 해드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좀 어떻습니까? 정말 중요한 교리를 아주 잘해서, 결국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이 드시나요? 결과적으로는 바른 교리가 세워지도록 만들어진 것 같기는 해요. 지난번 삼위일체 논쟁에 있어서도, 서로 막 다투고 싸우면서 결국에는 결국에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해서 삼위일체 교리가 잘 정립되게 한 것처럼, 기독론 논쟁도 이런저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성경적이고 바른 예수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동시에 다 있다고 하는 그 결론이 내려진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결국은 이게 하나의 정치적인 싸움이 교리 논쟁으로 비화했던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당시에 있던 교회가 사실은 초대교회가 박해받는 시절에는 이런 논쟁들이 사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생존하는 것이 문제였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회를 승인해 주고, 기독교를 승인해 주고, 그리고 완전히 로마 나라가 기독교 국가로 변하게 되면서, 공직에 나가는 것도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이, 교회에서 인정받은 사람들만이 공직에 나가고, 또 교회의 어떤 감독이 되거나 이런 것들이 하나의 특권이 되고 이권이 되어 버려서, 결국에는 서로가 교회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 그런 걸 가지고 교권적인 그런 싸움의 일환으로, 교리 논쟁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그 과거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 교회가 하나의 어떤 그 이권이 되고 특권이 되고, 하나의 권력이 되기 시작하면, 교리라고 하는 논쟁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결국은 사실은 그 밑에 이권을 가지고 그것을 차지하려고 하는 자들의 싸움이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서, 사실은 우리가 잘 분별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고 싸움이었지만, 그러나 교회의 논쟁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결국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무엇이 바른 신앙적인 관점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관점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결론이 맺어져서, 우리에게까지 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가?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셨다”라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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