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은 “보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말씀을 살펴보게 됐습니다. 오늘 읽은 잠언서 17장 18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맨 앞 구절을 보면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는다” 그랬습니다. 여기서 남의 손을 잡는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어리석은 자, 지혜 없는 자가 남의 손을 잡는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악수를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뒷구절과 연결시켜서 해석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영어 성경에서는, 그의 이웃을 “위하여” 보증이 된다라고 그렇게 번역해 놓기도 했는데요. 그러니까 남의 손을 잡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악수한다라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들과 반갑다고 손을 맞잡고, 기쁨을 표현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손을 잡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남에게 보증을 선다고 하는 그런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증을 서야 할 일이 있게 되겠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보증을 서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며, 보증을 선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바로 오늘 잠언서 17장 18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살아오시면서, 혹시 다른 분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증을 섰다가, 정말 낭패를 당하신 분이 계십니까? 아마 계실 것 같아요. 보증을 서줬는데, 그 사람이 돈을 갚지 않아서, 혹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서, 그래서 내 재산상의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그런 씁쓸한 경험들이 아마 우리 교우들 가운데도 아마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가족 중에도 있어요. 우리 친척들 중에서도, 우리 가족 중에서도 보증을 섰다가, 그것 때문에, 정말 어려움을 겪고, 평생 빚 독촉을 당하고, 경고장을 받기도 하고, 위협을 당하기도 하면서,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닌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빚보증을 섰다가, 그래서 평생 힘들게 살아가는 그런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 잠언서에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보증을 서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러니까 이렇게 보증을 서서, 그런 어려움 속에 빠져드는 것이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함부로 보증을 서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하는 게, 오늘 잠언서에서 들려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잠언서의 말씀을 읽어보면 보증을 서는 것에 대한 교훈들이 이 구절 한 구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강조해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본 잠언서 6장 1절에서부터 5절 말씀도 보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잠언서 6장 1절에서부터 5절 말씀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그런 말씀이 기록돼 있는 것이고, 우리가 잠언서를 강해하면서, 이 잠언서 6장의 말씀, <우매한 보증>에 대해서 보증을 서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고, 우매한 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잠언서 6장을 다룰 때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했어요! 했습니다! 기억이 안 나더라도. 그래서 만일 내가 보증을 섰다고 한다면, 잠언서 6장에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그 보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라. 네가 그런 보증을 섰다고 했다고 하면, 정말 내 인생이 잡히게 되는 것이고, 네가 노예가 될 수도 있고, 어려움을 당할 수 있으니까, 빨리 그 보증 섰던 것을 취소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말씀이, 잠언서 6장 1절에서부터 5절 말씀까지 있어서 그 말씀을 살펴본 적이 있고요.
뿐만 아니라 잠언서 11장 15절에서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남을 위해서 보증을 섰다가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남을 위해서 보증을 섰다가, 내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평안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 잠언서 11장 15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서 22장 26절에서부터 27절의 말씀에서도 보증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죠.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내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 하겠느냐?” 보증을 섰다가, 침상도 뺏긴다고 하는 말이 뭐예요? 집도 경매로 넘어간다. 이 말이에요. 나의 유일한 터전도 빼앗겨버린단 말이에요. 남을 위해서 보증을 선다고 했는데, 결국 그 일이 잘못되어서,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빼앗겨버리는, 아주 위험한 일이 바로 보증을 서는 것이라고, 잠언서에서는, 여러 번 몇 번에 걸쳐서 강조해 주고 있다고 하는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미 지난번에 잠언서 6장 1절에서부터 5절까지를 다룰 때, 충분히 보증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 말씀을 해 드렸기 때문에, 오늘 다시 새롭게 무엇인가를 추가할 내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늘 반복하는 게 중요해요. 한번 알려줬으면, 한번 들려줬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듣고 또 듣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은 또 들려주고 또 들려주어서, 그것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늘 생각이 나고, 늘 기억하도록, 자꾸만 반복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보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증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 잠언서의 말씀을 우리가 살펴보고 다시 한번 잘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보증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 우리가 다뤘는가 하고 날짜를 살펴보니까, 그 다룬 때가 벌써 3년 전이더라고요. 굉장히 오래됐어요. 그래서 시간도 많이 꽤 지났고, 그때 했던 내용도 다 잊어버렸고 했기 때문에,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하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반복하고 또 묵상하는 차원에서, 이 보증 서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 보증을 서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까요?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증을 서주어야 할 바로 그 사람이 보증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증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죠. 보증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전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잘 되기보다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보증을 서게 된다고 한다면,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려서, 아무 문제가 없이, 모든 것이 잘 해결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죠. 누가 보증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부족한 사람이 보증이 필요한 것이죠.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사람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보증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명 인사 같은 경우에는 보증금이 필요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대통령이 예를 들어서, 어느 그룹 재벌의 회장님이 식당에 전화를 해서 “여보시오. 내가 그 식당을 예약하고 싶은데, 우리가 그 식당에서 100명이 모여서 밥을 먹을 텐데, 그 100명분을 준비해 주십시오.”라고 하면, 식당에서는 그런 주문을 받게 될 때, 일반적으로 무엇을 요구합니까? 보증금을 요구하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큰 행사를 치를 게 있어 가지고, 한 한 200명 정도 식사를 하는 그 일을 위해서 식당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한 200명 정도 와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자리를 좀 맡아주세요. 그랬더니, 그분이 저에게 뭐라고 하냐면 그러면 “예약금을 걸어주세요.” 그러면 “크레딧 카드를 맡겨 놓으세요.” 그런 것을 맡겨놔야, 보증금을 걸어놓고, 뭔가를 보증을 해야, 그래야 믿고서 그 시간에 200명의 자리를 확보하고, 그다음에 음식 재료도 다 준비하고 해서, 손해를 보지 않으니까, 최소한 아무리 못 와도 200명이라고 한다면, 한 120명 분은 무조건 팔아준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안 먹더라도 그렇게 보증금을 저한테는 요구하더라고요. 왜? 생판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만일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서, 어느 그룹 재벌 회장이 전화 걸어서 그런 한 200명은 먹겠다고 한다면 “저 예약금을 좀 걸어주셔야 될 텐데요”라고 말을 할까요? 그런 사람한테는 그런 말이 필요가 없어요. 누구에게 보증이 필요한가? 부족하기 때문에 보증이 필요한 것이죠. 뭔가 모자라기 때문에 보증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그 보증이 필요한 사람 자체가, 원래는 완벽하지 못하고, 뭔가 부족하고 뭔가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담보물을 요청하는 거죠.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에 가서 돈 좀 빌려주세요. 제가 이자를 잘 갚을 테니까, 돈 좀 빌려주세요 하면, 은행에서 빌려줍니까? 안 빌려줘요. 무엇을 보고 빌려줘요? 담보물을 주세요. 담보물을 맡겨놓아야, 그래야 등기도 하고, 어떻게 해가지고 그래서 돈을 빌려주지, 그냥 빌려주지 않는단 말이죠. 그래서 보증이 필요한 사람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보증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보증을 서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친구를 잃게 될 것이고, 친구만 잃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재산까지도 엄청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이러한 위험 속에 집어넣지 않는 것이 현명할 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잠언서에서 우리들을 향해서 반복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이 교훈의 말씀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정말 위험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어려움 가운데 들어가지 않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잘 살 수 있는, 그 비결이 무엇인가? 이 잠언서의 말씀 가운데서는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거든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된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함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증을 서주는 그런 위험한 일에, 자기 자신을 그냥 맡겨버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오늘 이 잠언서의 교훈이라고 하겠습니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제도가 많이 발달이 됐어요. 예전에는 제도가 잘 발달이 되지 않아서, 무조건 보증을 서주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가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보증을 돈으로 하더라고요. 그렇죠 신용보증보험 같은 것이 있어서, 회사에 취직할 때 다른 사람의 보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보증보험이라고 하는 그런 보험을 듦으로써, 그런 보험회사에서 나를 보증해 주는 것을 배경 삼아서, 취직을 할 수도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서, 굳이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보증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좋은 제도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개인 간의 보증을 부탁하고, 또 보증을 서주는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만 해도, 우리 사회가 많이 발달된 사회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만일 우리들 가운데,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같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 만일 누군가 찾아와 가지고, 우리에게 보증을 요청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장로님, 권사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권사님, 제가 돈을 빌려야 되는데, 보증 좀 서주세요. 권사님, 우리가 돈을 빌려야 되는데, 보증 좀 세주세요. 만약 이렇게 부탁해 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 잘 지혜롭게 거절하는 방법도 배울 필요가 있겠죠. 죄송해요. 저는 보증을 서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증을 서줄 수는 없는데, 그거 말고 제가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더 좋은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라고 하면, 그런 것은 내가 도와줄 수 있겠지만, 이것은 도와주기가 어려워요. 이거 했다가는 친구도 잃고, 돈도 잃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지혜롭게 보증 서는 것을 하지 않기로, “제가 원칙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면서,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그런 훈련을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끝인가요? 그런데 이것으로 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잠언서의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보증을 선다고 하는 것이 아주 위험하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니까 절대로 보증을 서주지 마라고 말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증을 서줘야 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있을 수가 있습니까? 전혀 절대로 안 서주지 않아야만 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안타깝게도 살아가면서, 이것이 위험하지만, 보증을 서주어야만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을 하는 것이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라도, 도와주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라도, 사랑을 베풀어야 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이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냐면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여리고로 가는 그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강도 만난 자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로운 자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요? 강도 만난 자가 쓰러져 있어요. 그러면 잠언서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지혜로운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마 이런 말씀을 기억해 낼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잠언서 26장 17절의 말씀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그러니까 지금 일종의 뭔가 좀 문제가 있어 가지고, 쓰러져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볼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이 순간에 지혜로운 것인가? 무엇이 안전을 위한 지혜라고 한다면, 무엇이 안전을 위한 지혜예요? 참견 안 하는 게, 지혜예요 무엇이 나의 평안함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에요? 참견 안 하는 게, 그게 내 평안함을 추구할 수 있는 지혜인 것이죠. 그래서 내가 안전하고, 내가 평안함을 추구하기 위한, 그런 지혜가 있다고 한다면, 그 순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게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주셨어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너희가 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너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거죠. 어느 날 모세는 궁중을 떠나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구경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있었습니까? 애굽 사람과 히브리 사람들이 있는데,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만일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냥 지나가는 것이, 그게 잠언서에서 들려주는 지혜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세는 내 신분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내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가? 나는 바로의 궁정에서 살면서, 나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 내가 이런 삶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것은 저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언서의 교훈처럼,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그게 자신에게 제일 큰 지혜라고 생각하면서, 못 본 체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모세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바로의 궁전에서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한 모세의 선택이 있었던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이 잠언서의 교훈을 읽는다고 한다면, 이 잠언서의 교훈은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삶의 교훈이 맞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사람 저 사람 함부로 보증을 서면서, 그래서 뒷감당도 할 수 없으면서, 우리 가족의 안일함, 편안함 안위, 이런 것들을 다 위험에 빠뜨려가면서, 이 사람도 보증 서주고, 저 사람도 보증 서주고 하면서, 그래서 함부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 위험 속에 빠뜨리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 교훈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될 것이고, 함부로 보증을 서지 않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속에 결단이 분명히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절대로 보증을 서지 말아야 되는가? 어느 순간에도 보증을 서지 말아야 되는가?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우리 교회가 대출을 받아야 되는데, 건축을 해야 되는데, 장로님들 우리 보증을 좀. 장로님들 보증을 좀 서야 된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저는 보증을 못 서겠습니다.”하시는 장로님도 계시더라고요. 우리 교회 말고! 혹시 우리 교회 얘기가 하고 깜짝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데서 들었던 얘기예요. 어떤 목사님이 건축을 막 이렇게 하고 있는데, 장로님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래요. “저는 보증을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부하더라고.
잠언서의 말씀은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혹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보증을 서면서, 그래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되는 그런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 특별히 어떤 경우가 되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보증이 필요할 때, 우리 부모님이 이런 일들을 하려고 할 때, 그때에는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도와줘야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아픔을 감수하면서, 보증을 서야 되는, 그런 케이스들도 생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는 그냥 너무나도 단편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그냥 천편일률적으로, 그냥 무조건 하나의 원칙을 정해놓고, 그래서 막 밀고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진실로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것이죠. 이 순간에 보증을 서지 않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입니까? 이 순간에는 보증을 서면서, 그래서 그 위험 부담을 내가 떠안으면서까지, 사랑을 베푸는 것이 더 좋은 일이겠습니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모든 케이스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뭐라고 얘기해 줄 수가 없어요. 이건 보증을 사야 된다. 이건 서지 말아야 된다. 그것을 우리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내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가운데, 정말 고민하는 가운데, 어떤 경우에는 보증을 서주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그렇게 보증을 서지 않는 것이, 친구도 잃지 않고 재산도 잃지 않고, 현명한 길이 될 수도 있는 반면에, 어떠한 경우에는 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도와줘야 될 필요가 있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그런 것을 잘 고민하면서, 결정해 나가는 그런 결단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번에 폭우가 많이 내렸는데요. 지난 7월 10일에는 대전에서 엄청나게 비가 내리고 그리고 뚝이 터졌다고 합니다. 대전 용촌동 정뱅이 마을의 뚝이 터져서, 그 마을이 완전히 잠기고 한 뉴스를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한 15일 전에 7월 10일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세상은 전혀 모르고, 오로지 기도만 하고 찬송만 하시나요? 그런데 그때 들었던, 어떤 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를 잠깐,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데, 김중훈 씨라고 하는 분이 대전에 사시는 분인데, 자기 어머니가, 대전 용촌동 정뱅이 마을에 사시는데, 그날 비가 많이 와서 마을이 잠겼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그 사람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그 마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보니까 물이 다 잠겼어요. 지붕만 겨우 나와 있는 그런 상태에서,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가 가지고, 자기 이웃집에 갔더니, 그 이웃집 아줌마들이, 물에 목만 내놓고, 막 거의 죽어가는 그런 상황에 있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들을 건져 놓고, 그리고 지붕을 건너서,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갔는데, 자기 엄마가 기둥을 붙잡고, 물속에 빠져서, 지금 목까지 잠기고, 겨우 얼굴만 나와 있는 상태에서 엄마가 지금 죽기 일보 직전에 있는 그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때 엄마가 아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그 엄마가 아들한테 얘기를 했대요. 뭐라고 얘기했을까요? “너 오지 마. 너 죽어!” 여기서 지혜는 뭘까요? 안 가야 살아남는 겁니다. 안 가야 살아남는 거예요. 하지만 이 아들은 그 엄마를 향해서 달려가서, 엄마를 꺼내 가지고, 그래서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그래서 나중에 구조선이 와서 이렇게 살아난 다음에, 나중에 라디오 인터뷰를 하는데, 엄마가 자기 오지 말라고 했다고, 펑펑 울면서 인터뷰를 하는 그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혜는 무엇입니까? 물속에 빠져가는 사람 있으면, 건져주는 게 지혜로운 거예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지혜로운 거예요? 건져주려고 했다가, 같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안 건져주는 게 지혜로운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죽더라도 건져주어야만 하는 일도 있는 것이죠.
어쩌면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보증을 서주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게 친구를 잃지 않는 일이고, 그게 위험에 빠지지 않는 길이고,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돕는 것에 대해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그게 가장 지혜로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순간순간마다 어떤 경우에는 내 자신을 던져서 건져야 될 필요도 있는 것이죠.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보증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을 때, 주님께서 우리들의 보증이 되어 주셔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도 아니 되겠고, 동시에 너무 무자비하고 사랑이 없는 자가 되지 않아야 되고, 그 어느 선에, 어느 정도에 우리가 맞춰야 될 것인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지혜로운 결정들, 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그런 결정들이, 우리들의 삶에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