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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은 주님의 사랑

– 이국진

예수님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로마서 15:3)라고 바울 사도는 전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님은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부족하여, 우리의 예배를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그때에야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예배가 없어도,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존귀하신 하나님으로, 스스로 충족되신 하나님이다. 전 인류가 멸망한다고 하여, 지옥 불에 망하게 된다고 하여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는 분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그렇게 멸망하도록 놔두지 않으셨다. 하늘에서 내려와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주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위스컨신 주 밀워키라는 도시에 한 십대 소년이 암에 걸렸다.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하느라, 그 소년은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버리고 말았다. 오랜 치료를 받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소년의 걱정은 자신의 건강보다도 대머리가 된 모습으로 친구들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소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학교 친구들 50명이 집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집으로 들어선 순간 그 소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든 친구들이 모두 머리를 밀고, 친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이것이다. 주님은 하늘에서 자신의 방식을 주장하지 않으셨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 그대로 머무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의 눈높이로 오셨다. 죄인의 몸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기꺼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생각해볼 문제 / 토론 문제

1. 자신의 유익과는 관계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사랑을 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기 만족감은 잘못인가? 유익인가?

2. 사업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업의 과정 중에서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3.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4.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여력이 없을 때,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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