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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사 3강: 초창기 이단들 – 초창기 이단들은 어떤 양상을 가지고 있었는가

1. 이단에 대한 개념

오늘은 초대교회사 강좌 세 번째 시간으로, 초대교회에 있었던 이단들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어떤 이단들이 있었는가?”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기 전에, 이단에 대한 개념부터 먼저 정리하는 것이 옳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이단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리켜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죠? 끝이 다르다 끝이 다르다고 하는 게, 그 한자의 의미가 되겠죠.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인 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폐로 비유하자면 진짜 지폐가 있고, 위조지폐가 있는 것이죠. 두 모습이 똑같아 보이고, 정말 똑같아 보이지만, 그러나 진짜 지폐는 구매력이 있고, 그리고 지폐의 모든 기능이 가능한 것인 반면에, 가짜 위조지폐는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거죠. 파워가 없는 것이죠. 가짜인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위조지폐를 잘못 받게 되면, 큰 손해를 입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신앙도 참되고 바른 신앙이 있는가 하면, 그 신앙과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가짜가 있는 것입니다. 사이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이 가짜 이단 종교에 빠지게 되면, 그야말로 엄청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위조지폐는 위조지폐만큼의 손해를 보겠지만, 이단의 피해는 우리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그런 엄청난 심각한 폐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신앙과 가짜 신앙을 구분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우리 한국 사회를 아주 떠들썩하게 만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나는 신이다>라고 하는 그런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있었던 사이비 이단 종파 세 군데를 취재해서, 그들이 얼마나 사악한 집단이고,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그런 다큐멘터리가 반영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 가운데 집어넣고 있습니다. 정XX이라든가, 오XX이라든가, 또 단 하나가 어디죠? 이XX. 열심히 보셨나 봐요? 세 군데에 대해서 이렇게 취재를 해가지고, 그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그 취재된 대상이 전부 이제는 다 힘을 잃은 이단들이에요. 과거에는 맹위를 떨쳤지만, 지금은 다 구속되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많이 힘이 약해져 버린, 그래서 누구나 다 저 사람들은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는 이단들이 취재가 된 것이죠. 하지만 지금 가장 맹위를 떨치고 있는 그런 이단들은 건드리지 못해요. 예를 들자면 어딥니까? 신XX와 같은 이단은 엄청난 큰 피해를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들지 못하는 거죠. 그게 한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론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살아있는 권력에게는 찍 소리 못하면서, 죽어버린, 이 힘이 빠져버린 자들을 향해서는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는 습성이 있기 때문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게 되냐면,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고, 그리고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경각심을 주게 된 것이 큰 유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이단이나 정통이나 다 그게 그거라 해서, 종교에 대한 아예 관심을 끊어버리게 만들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단들에 대해서 보고 놀랐던 우리 일반인들이 정말 참된 신앙 정말 유익한 그런 참된 종교에 대해서조차도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든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성도들은 이단에 대해서 잘 알고 대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래서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인가? 어떤 곳이 정통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그래서 우리 교계에서는 늘 이단 대책위원회 같은 것들이 있어서, 잘못된 집단들에 대해서, 개인에 대해서 “여기는 이단이다. 여기는 정통이다. 여기는 이단이다.”라고 하는 그렇게 이단의 딱지를 계속 붙여나가면서,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이런 잘못된 집단들에 대해서는 가까이하지 말라고 경고를 계속 보내주고 있습니다.

2.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의 유용성과 위험성

그런데 이렇게 자꾸 이단에 대해서 경고를 발하고 있는, 이러한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유익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주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떤 점에서 유용한가요? 우리로 하여금 이단에 대해서 전혀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유용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신XX는 이단이다. 그러면 안 가면 되잖아요? 신XX에서 생난리를 쳐도 신XX에게 가지 않고, 듣지 않고, 교육을 받지 않고,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그런 이점이 있는 것이죠. 여호와 XX이 잘못됐다. 어디가 잘못됐다. 어디가 이단이다. 그러면 아예 관계를 끊어버려서, 그냥 우리끼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안전해질 수 있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이렇게 어디가 이단이다. “어디가 이단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상당히 유익한 면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유익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도 동시에 존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정통이고, 여기는 이단이라고, 그렇게 딱지를 붙여놓게 될 때, 라벨을 붙이는 거죠. “이것은 괜찮다. 이것은 나쁘다.”라고 딱지를 붙이게 된다고 하면, 그렇게 괜찮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정통이라고 하는 딱지가 붙여진 곳에 숨어있는 잘못된 그것들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에 딱지가 붙여져 있는데, 그 이단이 100% 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이단이 가지고 있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와 공유되는 것이 있고, 그리고 공유할 수 없는 아주 나쁜 요소들이 들어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여기는 나쁘다 여기는 좋다. 여기는 괜찮다. 여기는 나쁘다. 이단이다. 정통이다.”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딱지를 딱딱딱딱 붙여버리면, 결국은 “어, 여기는 이단이 아니구나.”라고 안심하고 그 교회에 들어갔는데, 그 교회 안에서 잘못된 사상을 주입받을 수도 있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받게 되기도 하는 등,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가 있는 겁니다.

예전에 우리 성도님들은 교단 마크를 보고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른 한 지역으로 가게 되면, 꼭 어느 교회를 찾아갔어요? 합동교단을 찾아간 거죠. 우리 합동교단 마크가 붙어 있고, 옛날에는 또 어떻게 했어요? 찬송가를 <새찬송가> 쓰면 거기를 찾아다녔어요. 왜? “여기는 믿을 만한 데다. 안심할 만한 데다.”라고 해서, 찾아가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합동 마크를 붙여놓은 교회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느냐? <새찬송가>를 쓰는 교회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교회냐 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양의 털을 입은 이리가 존재하듯이, 정통이라고 하는 간판을 걸고 있으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안에 잘못된 무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이단이다. 아니다”를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용하면서도, 굉장히 위험할 수가 있겠는데, 이것은 마치 유치원 아이들에게 경고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경고하는 거죠. “너는 절대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유치원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그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절대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면 안 되는구나를 알기 때문에, 유괴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되나요? 평생을 다른 사람을 따르지 않고 살아야 되나요? 그게 아닌 것이죠.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같이 대화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거래도 해야 되고,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쌓아가면서, 같이 살아가야 되는, 그런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 가야 되는데, 유치원 아이와 같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게 되면, 온 세상이 무서운 것이죠. 저 사람이 나를 잡아가지는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지는 않을까? 하면서 모든 사람들과 담을 쌓아버리고, 그저 집 안에만 머물게 되는, 그런 잘못된 결과를 나타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이단이라고 이렇게 딱지를 붙여버리면, 당장은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경우 보면, 복어는 독이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또 버섯은 어떤 버섯은 독버섯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독버섯이 있고, 복어가 있고 할 때, 어떻게 가르칩니까? 예쁘게 생긴 버섯은 다 독버섯이고, 별로 안 예쁜 버섯은 그건 식용 버섯이다 하고 이렇게 가르치면, 그게 맞는 것인가요? 아니요. 어떤 버섯은 예쁘지만 먹을 수 있는 게 있고, 어떤 버섯은 별로 안 예쁘지만 독이 있는 버섯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죠.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이단에 딱지를 붙여버리면, 신XX는 잘못됐다고 딱지를 붙여버리고, 여기가 잘못됐다고 딱지를 붙여버리면,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니까 괜찮은 것 같지만,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상황 때문에 더 잘 넘어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 무서운 곳이고, 나쁜 곳이라고 해서, 전혀 상종을 안 했는데, 나중에 들어가서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 교회에서는 나쁘다고 얘기했는데, 들어가 보니까 맞는 얘기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것과는 정반대가, “내가 지금까지 속았나?” 하면서 넘어가는 겁니다. 진리를 제대로 분별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단순히 “여기가 나쁘다. 좋다.”라고만 얘기를 들었다가, 나쁜 줄 알고, 전혀 상종을 안 했는데, 가서 접하니까 괜찮아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넘어가는 것이죠.

공산당에 대한 가르침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공산당이 나쁘다고 그렇게 교육을 받으면서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빨갱이면 무조건 나쁘고, 그리고 우리는 반대 진영에 있다고 하는 것을 늘 주입하면서 어 그렇게 진영 논리로 아이들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다 그런 것 같아요. 공산당은 싫다. 공산당은 나쁘다 하면서 자란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머리가 커서, 이제 공산 사회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접하게 되는데, 좋은 점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배워왔던 것이 전부 잘못이구나.” 하면서 넘어가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우리들이 그냥 무조건적으로 다 싫어하는 겁니다. 공산당과 관련된 것은 다 싫어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공산당에서 무료 급식을 했으니까, 우리들은 무료 급식 하면 안 된다. 공산당에서 또 사회복지를 잘하니까, “우리는 사회복지하면 안 된다.” 하는 식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죠. 공산당이 나쁜 것은 그게 나쁜 것이 아니고, 사유재산을 강탈하고, 빼앗고, 사람을 죽이고, 그것이 나쁜 것인데, 공산사회든, 자본주의 사회든 어느 사회든, 가난한 자를 도와줘야 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이고, 그래서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복지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은 전 세계 공통적인 그런 것인데, 무조건 나쁘다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마치 무료 급식을 하거나 사회복지를 하는 것도 그것도 다 나쁜 것인 줄 착각하게 되는, 그런 정말 잘못된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 기독교 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이 잘못됐다 하니까, 예를 들어서 천주교가 나쁘다 그래버리면, 천주교에서 유래된 것은 다 나쁜 줄 알아요. 천주교에서 유래됐다 그러면, 다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죠. 왜냐하면 우리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앙적인 특징의 90%는 천주교와 똑같아요. 천주교에서 우리가 나왔기 때문에, 천주교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어요. 성탄절도 똑같잖아요? 부활절도 똑같잖아요? 삼위일체도 똑같잖아요?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똑같잖아요? 다 천주교랑 다 똑같은 내용들이에요. 하지만 무엇이 다른가? 천주교에서 강조하는 것과 우리가 여기가 무엇이 잘못돼서 어떤 점이 잘못됐는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이것은 우리와 공통점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데, 우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목사님, 그러니까 좋다는 얘기입니까? 나쁘다는 얘기입니까?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여기는 가도 됩니까? 아닙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그러면 안 된다 된다. 이 얘기하고 그것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지금 당장은 편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사실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정통이면 안전한가? 아니에요. 아 우리 가족들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 그랬어요. 그런데 삼촌은 괜찮으니까, 따라가도 되나요? 우리 가족이니까 괜찮나요? 안타깝게도 가족에 의한 범죄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안전한 게 아니에요. 누구를 믿고 따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어떠한 행동이 좋은가, 나쁜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길러가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흑백 논리, 그렇게 따져서 이야기하게 되면, 결국은 궁극적으로는 바른 결과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정통 교단에 마크를 달고 있고, 정통 교단 안에 소속되어 있으면, 안전한 교회인가? 그렇지 않아요. 같은, 같은 교단의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성경적인 내용과는 정반대의 교훈을 말할 수도 있고, 그 가운데는 잘못된 사람이 숨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그냥 쉽게 딱지를 붙여버리고, 여기는 정통, 여기는 이단이라고 하는 그런 딱지를 붙여버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점은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이고, 어떠한 점은 우리가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구체적인 것을 제대로 잘 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3. 초대교회 이단들의 세 가지 양상

초대교회에는 여러 가지 이단들이 있었는데, 주로 세 가지 양상의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성자 예수님을 어떻게 보느냐? 두 번째는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세 번째는 구원을 어떻게 보느냐? 그러한 것에 관해서 서로 이단들이 있었는데요. 제일 먼저 초대교회 상황 가운데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서 나누어진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보느냐 하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이 아닙니까? 하나님이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믿고 배우잖아요. 하지만 초대교회 상황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굉장히 껄끄러웠어요. 왜? 구약성경만 가지고 있었던 성도들이, 구약성경에서 어떠한 내용을 읽었습니까? 하나님은 몇 분이다? 한 분이다.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이시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경비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성경 말씀인 겁니다. 그 한 분이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에요? 여호와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우리들의 진정한 하나님이라고 배우고,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지금까지 철저하게 믿고 지내왔던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등장했습니다. 예수님이 등장했는데, 우리랑 똑같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는 그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처럼 행동하셨어요. 하나님처럼 죄 용서를 하셨고, 하나님처럼 기적을 행하셨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만드셨고, 순종하게 만드셨고,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율법을 예수님께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행동이 하나님 같은 행동을 하신 것이죠. 그리고 그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라고 하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믿던 하나님도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왜 예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 같은 예수님이 등장하게 된 겁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하나님 말고 또 예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 같은 분이 또 등장했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야 됩니까? 여러분들이 만일 1세기에 살던 성도들이었다고 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되나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야 되나요? 그 문제가 어려운 겁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자니,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 그 성경 말씀과 배치되게, 하나님이 아닌 또 다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그런 성경과 정반대의 행보를 해야 되는 모순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자니, 예수님이 하나님인 거예요. 하나님처럼 모든 걸 다 하시는 겁니다.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 여러 가지로 반응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불신자들이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한 분인데, 하나님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을 수 없다 하면서, 예수님을 거부해 버린 거죠. 이들은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잠시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것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저 지금 성부 하나님과 다른, 아버지 하나님과 다른, 아들 하나님이 아니라, 이 예수님은 사실은 아버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서 이 세상에서 나타나서 행동하신 것이지,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다. 안 보이는 하나님으로 계셨다가 “예수님의 옷을 입고, 예수님의 몸을 입고 나타나서 활동하신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겁니다. 그럴듯하죠?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중간 정도 되는 분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들과 똑같은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 능력을 부여받은, 그러나 하나님은 아닌, 하나님보다 못한 그런 분으로서, 그러나 “우리 인간과는 다른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죠. 이런 결론들은 다 오늘날 우리 삼위일체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 잘못된 견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먼저 한번 그 보십시다. 그림을 한번 봅시다. 유대적 기독교가 있습니다. 유대적 기독교에는 에비온파 나사렛파 등등이 있는데요. 이 에비온파는 예수님께서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로 탄생한 것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선지자였고, 교사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그대로 다 지킨 분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이런 에비온파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 율법교사 예언자 선지자 정도로만 본 겁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율법을 배반한 배신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사렛파는 비교적 온건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도 인정하고, 동정녀 탄생도 인정하고, 사도 바울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이 하나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유대적 기독교 에비온파 나사렛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 걸 한 번 보면요. 하나님과 같은 게 아니라, 신적 능력을 소유했을 뿐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인데, 우리와 다른 것은 신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라고 생각한 거죠. 테오도투스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태어나시기는 하셨지만, 사람일 뿐이며,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입양하셔서, 그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냥 신적인 능력만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모사타 출신의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옛날 모세와 선지자와 함께 했던 로고스가 예수님에게도 임했고, 그런 능력을 소유했지만, 그러나 이성이 인간에게 있듯 로고스가 하나님 안에 있는 그런 신성 신적인 능력인데, 그 신성을 신적인 능력을 예수님께서 받았을 뿐이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바로 데오도트스나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노에투스라고 하는 사람, 프락세아스라고 하는 사람, 사벨리우스라고 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인데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와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부 아버지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못 박힌 것도, 예수님이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와서, “그렇게 못 박힌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거고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사벨리우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벨리우스라고 하는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냐면, 모달리즘(modalism)이라고 하는데 “양태론”이라고 말하는데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을 뿐이지, 하나님은 한 분이고, 예수님이 다른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변장돼서 나타난 것뿐이다. 십자가에 달린 것도 하나님이 달리신 것이지, “아들이 달린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 게 이런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다음에 마르시온이라고 하는 이단이 있었는데요. 마르시온이라고 불러도 되고, 마르키온이라고 해도 되고, 발음은 이렇게 저렇게 해도 되겠는데, 이 사람은 성경과 관련된 이단입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 구약의 하나님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인 반면에,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우리가 믿어야 될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고, 구약의 하나님은 그런 나쁜 신이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은 거부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성경 중에서도 구약은 다 거부했고, 신약 중에서도 누가복음의 일부 바울 서신만 성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성경을 거부했던 사람이 마르시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누군가? “이러한 악의 통치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내려고 하는 분이었다.”라고 주장한 것이 마르시온이라고 하는 사람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영지주의라고 하는 이단이 있었는데요. 영지주의는 영육이원론에 근거한 이단입니다. 영육 이원론을 우리도 종종 많이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는 것인데, 이 세상 물질은 다 나쁜 것인데, 영혼은 소중하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는가? 이 물질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이 물질에 갇혀 있는 영혼이 벗어나는 게, 그게 구원인 것이고,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아주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소유해야, 그래야 해방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영지주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여기는 구원론에 관한 이단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 세계관에 관한 이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4. 이단과의 논쟁 결과

이런 이단들이 초창기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을 논박하면서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하다가 결국에는 우리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정통 교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정립이 된 겁니다. 성경 66권이 정경이라고 하는 것도 이렇게 사실은 성경이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기다.”라고 싸우는 이단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에 반해서 아니다. “성경 39권과 신약 27권이 성경이 맞다.”라고 하는 성경에 하는 교리가 나오게 된 것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변변장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는 주장 때문에 그게 아니고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각각 독립된 개별적인 하나님이신데 그 새 하나님이 결국에는 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신비의 교리가 수립된 것이 삼위일체 교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리들을 우리가 초대교회에 이런 이단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정통 교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오게 됐는데요. 이러한 내용들이 오늘날에도 종종 많이 등장하는 겁니다. 하나님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이 정말 참된 하나님이신가 참된 하나님이 아니신가 이 문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슈로 나오는 것이죠. 통일XX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예수님은 실패한 분이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신XX에서도 “예수님은 다 이루지 못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부정하고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이단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고, 여호와 XX에서도 예수님은 신적인 하나님, “신적인 분일뿐,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여러 가지 잘못된 이단들이 계속해서 또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있는 것이고, 오늘날에도 성경에 대해서 어떤 성경은 이것은 거부하려고 하는 그런 움직임들도 많이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다 잘못된 이단들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알아서, 이런 잘못된 흐름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않고, 참된 지식을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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