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진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충실하게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행하려는 자는 자신의 계획이 방해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이 길을 걸어가고 싶은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일로 인하여, 그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한 계획에의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 강도 만난 자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은 그야말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은, 자신의 것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사랑을 실천할 수 없었던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그들은 강도 만난 자를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사랑을 가로막은 그 시급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본문에 제사장은 내려가는 중이었다고 했으니(누가복음 10:31), 제사 당번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막중한 임무는 이미 다 끝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렇게 급했을까? 아무튼 외면한 자들은 자신들의 계획 때문에,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자신의 계획을 충실하게 이행하려면,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길 수 없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는 일 때문에 자기의 여행 계획이 방해를 받았다. 자신의 여행 계획은 망가져 버렸고, 자신의 재정 지출 계획도 망가져 버렸다. 사마리아인의 여행계획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돕기 위해서 중단되었던 여행을 다시 재촉해서 걸어갔다. 사실 이 세상에 사랑을 베풀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랑을 베풀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남아도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사랑을 베풀려면, 자신이 하려던 일에 지장을 초래하고 원래 사용하려 했던 용처에 돈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사랑을 베풀어야 사랑의 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언제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할 수 있는 준비를 한 후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기회는 아직 준비 되지 않았을 때에 찾아온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원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된다. 빛과 생명의 교회 이종철 목사님은 이 본문로 설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갑자기 맡기시는 과제에 놀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1 정말 동감이 되는 메시지이다. 사랑은 누가 실천할 수 있는가?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계획에 차질을 빚으면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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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빛과 생명의 교회에서 2007년 4월 22일 전한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