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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없는 관계가 무례하게

– 이국진

사랑하는 사이에는 허물이 없어진다. 그래서 무례하기 쉬워지는 데, 사랑은 무례한 것이 아니다. 허물이 없다는 것은 가식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식이 없이 만나는 것과 무례하게 만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집안 식구들끼리 있을 때에는 내복바람으로 있을 수도 있고, 세수하지 않은 얼굴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집안 식구들끼리라 하더라도,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그럼 허물이 없는 것과 무례한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히 정의하자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이 무례한 것이고, 무엇이 무례하지 않은 것인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례하지 않고 친근함의 표시가 될 수 있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무례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서 포체스트롬 대학교(Nord-wes Universiteit)에서 연구기간을 가진 바 있다. 그 연구기간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필자의 지도 교수는 만찬을 베풀고 나를 초대해 주었다. 그 자리에 신학교의 성경학부 교수들도 함께 초대되어, 함께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눌 때였다. 교수님의 자녀들이 모두 4명인데, 그 중에 늦둥이 막내아들이, 아마 6살 정도 되어 보이는데, 손에 따끔따끔하게 정전기를 일으키는 것을 가지고 온 손님들을 자꾸만 괴롭히곤 하였다. 서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뒤로 와서 또 장난치고, 또 장난치고, 어린아이가 하는 짓이니까 화도 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계속 그러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까, 자신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상대방을 전혀 생각지 않고 하는, 어린 아이니까 할 수 있는 무례한 일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탄 어머니 일행과 함께 자리를 같이 앉게 되었다. 그 중에 남자 아이가 옆에 앉았는데, 자면서 머리를 엄마 쪽으로 하고, 다리를 나에게 뻗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다리를 내 무릎에 뻗게 하였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고마워하면서도, 그 아이가 나에게 불편을 줄까봐 무척 조심하는 것을 보았다. 무례하지 않는 사랑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무례함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 있다 보니 농담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장례식에서 조차도 농담(joke)을 한다. 그래서 장례식은 마냥 슬픈 것이 아니라, 웃기까지도 한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많은 농담을 던진다. 대통령도 위트에 넘치는 농담을 많이 한다. 기자회견장에서 웃고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농담을 하면,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도 누그러져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될 수 있다. 어쩌면 미국 사람은 농담을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 같다. 학교에서 운율과 비유의 훈련을 하면서, 재치를 키운다. 미국 사회에는 운율(rhyme)에 맞춘 말들이 참으로 많다. “Buckle Up(안전벨트를 매시오).”라고 하는 딱딱한 말보다, “Click it, or Ticket (클릭킷, 오어 티킷: 매지 않으면, 벌금을 뭅니다)”라고 “킷”으로 끝나는 말로 이루어진, 위트 있는 표지판을 대할 때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예전 우리 선조들은 그래도 한자어를 사용하거나 시조를 사용하면서 위트를 즐길 줄 알았다. “하여가(何如歌)”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도움을 요청한 이방언에 대하여,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의 응답은 위트가 담긴 대화였다. 하지만 요즈음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위트와 농담이 없다. 윤활유가 마른 자동차 엔진은 고장 나기 마련인데, 우리에게 위트와 농담이 빠져 있어서 대화가 즐겁지 않다.

종종 우리는 대화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위트와 농담을 한답시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례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대화를 할 때가 있다. 농담이 위트와 재치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들의 농담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식으로 할 때가 많다. 더구나 친해지기 전에 함부로 던진 농담은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농담은 친해지기 위해서 던질 것이 아니라, 친해진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농담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깎아 내리면, 무례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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