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진
교만은 사랑을 베푸는데 있어서도 걸림돌이 되지만, 사랑을 받는 데에도 걸림돌이 된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사랑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도 교만한 사람은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겸손한 자들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 전서 5:5)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다고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은 종종 오해될 때가 있다. 죄를 짓고 타락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길인 것처럼 오해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케 하는 것은 죄나 타락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겸손한 마음이다. 1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하여 일부러 타락의 길로 나서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 때에 어떤 선배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곤 하였다. 지금 나는 그 선배가 누구였는지 이름도 얼굴도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선배가 했던 말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자신이 너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잘 체험하지 못한다고 고민하던 그 선배는 자신의 의를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도록 죄를 지어야겠다는 각오를 하였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쩌면 C.S. 루이스가 간파했던 사탄의 전략(=그 어떤 종류의 미덕도 교만으로 바꾸어버리는 전략)이 그 선배를 괴롭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사탄의 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탄에게 항복하는 것(=죄를 짓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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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준, [고린도 전서 13장 묵상 사랑] (생명의 말씀사, 2004),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