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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의 재료와 겸손의 재료

– 이국진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서, 무엇인가 부족하신 하나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사도행전 17:24-25),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요케 하심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고린도 후서 8:9).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목적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단순히 어떤 목적을 이루시기 원하셨다면, 말씀이면 충분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처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셨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그 어떤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것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다고 한다면, 요나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갈 때 굳이 폭풍을 일으키시며 따라가실 필요가 없었다. 큰 물고기를 준비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박 넝쿨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피하는 요나 대신 순종적인 어떤 한 선지자를 세워서 니느웨 성을 구원하시면 될 일이었다. 아니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이, 바울 사도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하나님이 직접 하셔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요나를 끝까지 추격하셨다. 그리고 요나의 항복을 받아내서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시켰다. 그것은 하나님이 니느웨를 사랑한 것 외에, 요나라고 하는 욕심 많고 나약한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교만해질 수 없다. 아니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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