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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삶 속에 깊이 드리워져 있는 시기와 질투

– 이국진

모든 사람들이 종종 빠지는 늪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기와 질투의 늪이다. 이것은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니다. 비교적 길지 않은 목회를 해왔는데, 이러한 시기와 질투의 질병에 깊숙이 빠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사실 어느 누구하나 이 병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나 신앙생활을 제법 오래한 베테랑 신자들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시기와 질투는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손쉬운 병법이다. 아무리 영적인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기와 질투의 작전이 발동되면 넘어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놀랍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현장에서, 헌신의 현장에서 시기와 질투의 늪에 빠지기 쉽다. 가인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현장 속에서 시기와 질투의 수렁에 빠졌던 것처럼,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시기와 질투의 수렁에 빠지는 모습이 많다. 이 늪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어 있다. 이 시기와 질투의 수렁에 빠지면, 아무리 좋은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어지고, 모든 것에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된다.

놀랍게도 전도의 현장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동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기록한다(빌립보서 1:15). 바울 사도는 이러한 잘못된 동기에 의한 전도라 할지라도,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기만 한다면, 기뻐하고 또 기뻐할 것이라고 하였다(빌립보서 1:18). 이 말은 시기와 질투로 이루어지는 전도행위(혹은 선한 행위)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동기로 시작된 일을 통해서도, 선한 열매를 맺도록 바꾸시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 선한 열매를 바라볼 때에 기뻐하고 또 기뻐하게 되지만(바울 사도처럼), 시기와 질투라는 잘못된 동기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 전서 10:12)는 말씀처럼, 혹시라도 치명적인 시기와 질투의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것을 곱게 보지 못하는 죄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박수칠 수 있는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다.

똑같아 보일 때에는 괜찮다가, 누군가 좀 더 뛰어나거나, 열심을 낼 경우, 시기와 질투에서 나오는 온갖 폭격이 가해진다. 희랍의 비극작가 애스킬러스(525-456 B.C.)는 아가멤논(Agamemnon)이란 글에서, 잘 되는 친구를 보고 시기하지 않고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것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성품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시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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