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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로 가득 찼던 또 다른 사람들

– 이국진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납달리, 갓, 아셀은 요셉의 배다른 형제들이었다. 이들은 이복동생 요셉이 무척 싫었다. 이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무척이나 예뻐했는데, 그것이 더욱 그들의 마음을 시기와 질투로 채우게 하였다.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그들은 살인을 시도하다가, 마지막엔 이집트에 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먹고 만다. 시기와 질투가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지고,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법이란 없는 것 같다. 먹구름이 자꾸만 쌓이면 비를 뿌리고야 말듯이, 마음속에서 시기와 질투가 가득 쌓이게 되면, 기회가 다가왔을 때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기회가 와서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우리는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시기와 질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다가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시기와 질투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아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에 빠진 인생을 가인에게서도 본다. 최초의 살인자였던 가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동생을 죽였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첫째는 살인의 대상이 가장 사랑해야 하는 동생이었다는 점에서 놀라고, 둘째는 그 살인의 계기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는 점에서 놀란다. 그런데 살인에까지 이끌고 갔던 것은 “시기와 질투”였다. 가장 경건해야 하고, 가장 축복의 순간이어야 할 예배의 현장에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든 것도, 다름 아닌 “시기와 질투”였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바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 불쌍한 자들을 향해서 너그러운 자비의 손길을 내밀 수 있지만, 잘 나가는 사람을 보고 진정으로 축하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의 속마음을 너무나도 잘 반영한 말인지도 모른다.

앞장에서 사랑의 두 번째 특성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했는데,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나마 쉽다. 물론 그런 친절도 베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을 못 본채 지나쳐 버린 제사장과 레위인들처럼, 우리는 친절을 베푸는 일에 참으로 인색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친절을 베푸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친절을 베푼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사랑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연약한 자들에 대하여 가져야 할 자세가 친절이라면, 우리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가져야 할 자세는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대로 우리들은 연약한 자들을 위해 친절한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같이 기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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