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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참음인가?

– 이국진

참음은 사랑을 위한 참음이어야 한다.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것이어야 한다. 참고 또 참고 참았다가 복수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참음이라 할 수 없다.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머리 숙여 경배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던 하만 장군은 참았다(에스더 5:10). 당장 그 자리에서 모르드개를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참음은 자신의 체면을 위한 참음이었고, 철저하게 복수하기 위한 방법을 기다리는 참음에 불과했다(에스더 5:13-14). 현상적으로 참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결코 선하고 좋은 것일 수만은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결국 원수를 갚기 위한 정당한 이유를 축적하기 위해서 참고 있을 때가 많다.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화를 내야할 이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람보가 그 친구와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다. 두 사람이 맛있게 자장면을 먹는데, 단무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의 젓가락이 그 하나 남은 단무지를 동시에 잡았다. 그래서 친구가 제안했다. 서로 한 대씩 얼굴을 때리기 시합을 하는데, 얼굴을 세게 맞고도 눈물을 참는 자가 마지막 남은 단무지를 먹기로 내기를 하자고 했다. 힘이라면 자신이 있는 람보가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친구가 먼저 람보의 뺨을 가격했다. 람보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지만, 꾹 참았다. 이제 람보의 차례가 되었다. 얼굴을 대라고 할 때, 친구가 기권했다. “내가 졌다. 네가 마지막 남은 단무지 먹어.” 그리고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여기 단무지 한 접시 더 주세요!” 우리가 참으면서 바라는 것이 남은 하나의 단무지를 먹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참음이라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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