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오래 참으면서 갖는 착각

– 이국진

우리가 오래 참지 못하는 이유는 참는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만큼 참으면, 상대방이 개과천선해서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쉽게 깨어진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면, 남편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도 틀렸다. 그것은 동화책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악화되는 남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한 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동안 참다가, 나의 넓은 아량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대방을 보고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오래 참으면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린다. 지금은 비록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계속 참고 또 참으면, 언젠가는 문제아들이 변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언젠가는 문제 남편이 변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래서 기다림은 소망과 연관이 있다. 오랜 기다림은 때때로 좋은 열매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다림은 절망 가운데서의 기다림이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었다. 밭에는 식물이 없고,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었다. 그 상황 속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참았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래 참고 기다리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소망의 약속을 주셨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하박국 2:3).

계란이 부화되는 것을 참고 기다리면서, 우리는 병아리를 얻는 것처럼, 인내하는 자는 인내하지 않는 자보다 더 많은 결과를 얻는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오래 참을 것을 이렇게 권면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서 5:7-8).

시편 126편에서도,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노래했다. 아브라함도 길이 참았다. 하나님의 약속은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브라함은 길이 참음으로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았다(히브리서 6:15).

하지만 모든 참음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하기 어렵다. 한번 두 번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결과가 오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서 폴란드 출신의 작가인 스테니스로 레크(1909-1966)는 “인내를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는 우리가 회개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이 회개하기 전에 용서해야 한다고 한다. 1 만일 상대방이 회개할 것만을 기대하고 용서하려 한다면, 우리는 70번씩 7번은커녕 7번도 용서하기 어렵다. 모든 참음은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고 인내하고 용서하면, 회복의 가능성이 있지만, 참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면 아예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다.

* 목차로 돌아가기

* 다음 글 읽기 – 무엇을 위한 참음인가?

* 이전 글 읽기 – 참아야 하는 이유

Loading

--[註]---------------------------
  1. 대천덕,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1] (국민일보사, 1982), 115. 대천덕 신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은 우리가 회개하기 이전이지만, 용서의 효력은 우리가 회개할 때라고 한다(p. 11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