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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와 가짜 교회

종교개혁 504주년이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낙망하여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 주변에 위조지폐가 널려 있어도, 그 위조지폐 때문에 내가 가진 진짜 지폐마저도 버려야 할 것이 아니듯, 잘못된 교회의 모습이 있다고 해서 믿음을 버릴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무엇이 참된 교회이고 무엇이 가짜 교회인가를 분별하는 것이다.

종교 개혁 자들은 참된 교회인가 거짓된 교회인가를 판별할 수 있는 표지를 세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이것들은 참된 말씀의 선포, 바른 성례의 시행, 정당한 권징의 시행이었다. 이러한 기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16세기 상황에서의 기준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당시에 타락한 모습들에 대한 반응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를 제시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자동적으로 참된 교회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주 아쉬운 일이다. 신학자들이 이 세 가지만을 참된 교회의 표지로 제시한다면, 그것은 아주 게으른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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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오늘날의 교회가 어떤 면에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반성하고, 그 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개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안타깝게도 종교개혁자들이 제시한 참된 교회의 세 가지 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성찬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했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것과 같은 비슷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례의 시행이 참된 교회의 표지라고 한 것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찬식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성례를 “바르게 시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로마 천주교회는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성찬식을 시행했었다. 그래서 성찬식 빵과 포도주가 마치 예수님의 진짜 살과 피인 양 미신적으로 대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기드온의 에봇에 열광했던 것과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식의 잘못된 성찬식을 조장하는 교회는 잘못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 잘못된 종교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관점은 사라지고, 인간의 미신적인 열정만을 불러 일으키는 잘못된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는지 살펴야 한다. 사사기 시대에 늘 타락이 반복되었듯, 교회의 타락은 언제나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가 바른 길로 가도록 손 놓고 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좋은 신앙적 열정도 사탄은 왜곡하고 타락시킬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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