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머리말

솔직한 고백을 해야겠다. 설교자는 성경 전체를 골고루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교자가 되어 19년 동안 설교해 오면서,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 전서 13장을 별로 설교하지 않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사랑장 자체가 간결하고 분명해서 굳이 설명을 붙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J. D. 존스 목사는 설교자들이 사랑장을 설교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섣불리 설교하려다가 그 아름다움을 훼손할까 염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1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 될 것이지, 거기에 어설픈 설명을 붙이는 것은 오히려 사족을 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사실 성경 전체가 그렇듯이(cf. 신명기 30:11-14),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려워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장을 별로 잘 설교하지 못한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랑장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랑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사랑의 모습에 한참 모자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니 그 모습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사랑장에 대한 설교는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설교자는 말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대로 살아감으로써 설교할 수 있다는 신학교 시절 설교학 교수가 했던 말이 늘 내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느낌은 모든 설교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가장 많이 설교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설교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랑장을 설교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이제는 사랑장을 설교할 수 있을 만큼 사랑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내 모습은 사랑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사랑의 모습에 한 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사랑의 모습이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전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교는 내가 내 모습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설교대로 살아야 한다는 설교학 교수의 말은 여전히 진리이지만, 동시에 설교가 가능한 것은 결단코 내가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일 수는 없다. 만일 실천할 수 있는 것만을 설교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설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전하는 그 설교 앞에서 나도 채찍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때리시는 15대의 채찍을 먼저 맞겠다는 각오로 말씀을 펼쳤다. 하나님의 사랑의 매는 아팠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더더욱 아프셨을 것이다. 아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아들의 다리와 자신의 다리를 함께 묶고 채찍을 내리쳤다는 어느 아버지처럼…

2007년 15번에 걸친 사랑의 매를 함께 맞은 필라델피아 사랑의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15번의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설교 내용을 가지고 따져든 사람이 없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거라면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 무례합니까?”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면서, 왜 이 교회가 엉망입니까?” 이렇게 따질 법도 했다. 하지만 한 분도 그렇게 따져들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모습에 한없이 모자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깊이를 발견하면서 감동했으며, 위기에 처했던 가정이 참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그때 전했던 설교를 토대로 엮은 것이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하는 말씀의 매를 맞으면서도 기뻤던 그때의 감격을 독자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 설교를 토대로 했지만, 설교를 그대로 말투만 바꾼 것은 아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이지만 설교라는 특성 때문에 설교 시 전달하지 못했던 것도 이 책에는 포함되어 있고, 설교라는 특성상 포함했던 내용들이 단행본이라는 특성상 배제해야 할 것들은 배제했다. 이렇게 책으로 다시 엮어 내는 것은 다시 기억해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르쳐야 할 때보다 기억시켜야 할 때가 훨씬 더 많다고 했던 사무엘 존슨 박사의 말처럼, 이미 듣고 알고 있었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일깨우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2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3 나는 이 책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가를 그려보고 싶었다. 온전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사랑으로 도배되어 있어도,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신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홍수가 났을 때에 가장 부족한 것이 마실 수 있는 생수이듯이, 왜곡된 사랑이 넘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 그리워지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쓴 첫 번째 편지에서, 사랑을 15가지 언어로 제시한다. 무지개가 빛 속에 들어 있는 7개의 색깔을 드러내주듯이, 바울 사도의 사랑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15가지 채색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무지개의 색깔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분명하게 빨강색이고 어디서부터 주홍색이 시작되는 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바울 사도가 전한 사랑의 15가지 특성은 서로 그 특성을 분명하게 구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오버랩(overlap)된 영역이 있다. 자랑하지 않는 것과 교만하지 않는 것, 참는 것과 견디는 것 등등 어쩌면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약간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이 책을 써 내려가면서 중첩을 피하고 보다 더 쉽게 마음에 와 닿게 하기 위해 취한 방법에 불과하다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 마치 성경의 원어 사이에 의미상의 분명한 차이와 구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그 옛날 방주에서 나왔던 노아가 무지개가 떠오르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했던 것처럼(창세기 9:13), 오늘날 혼탁한 이 시대에 15가지 빛깔로 비추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통해서, 위로와 기쁨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 책의 초고를 읽고 일일이 비평해준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잠 27:6), 동역자들의 날카로운 비평을 통과하면서 원고는 부족한 부분들은 보완될 수 있었고, 사족과 같은 부분들은 감량하여서 오히려 더 멋있어진 것 같다. 혜안을 가진 강대순 목사님은 초고를 읽고 여러 가지 건설적인 제안들을 많이 해주었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오류들을 수정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상담학 겸임교수이신 김준 박사님은 용서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용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좀 더 깊게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필라델피아 항구를 방문하는 선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병은 목사님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고, 이성흠 목사님은 원고 구석구석까지 면밀하게 살펴주었으며, 브니엘 교회 정인원 목사님은 이 주제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다. 뉴욕에서 사역하고 있는 정주성 목사님은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이 책의 논지를 더 분명하게 해주었으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온두라스에서 목회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인 김인배 목사님은 친구의 입장에서 많은 건설적인 제안들을 해주었다. 또한 부족한 원고를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준 아가페 출판사의 단행본 팀에 감사드린다.

풍성한 사랑이 널려 있는 축복의 땅 필라델피아에서

이국진 목사

2011.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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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J. D. Jones, An Exposition of First Corinthians 13 (Klock & Klock Chrsitian Publishers, 1982), 11.[]
  2.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2001), 137.[]
  3. 레스 & 레슬리 패럿, [5가지 친밀한 관계] (이레서원, 2004),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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